40년 넘은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한 모습이다. G 클래스로 이름을 바꿨지만 여전히 G바겐이라는 옛 이름이 더 좋다. 메르세데스 AMG G63을 타고 G바겐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G바겐은 40년도 훨씬 더 지난 1979년 처음 등장했다. 벤츠 SUV의 시작이었다. 그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으니 그 세월을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온 셈이다. 직선이 살아있는 박스스타일, 90도로 벽처럼 세운 라디에이터그릴, 둥근 헤드램프, 바깥으로 노출시킨 스페어타이어. 향수를 자극하는 익숙한 모습이다.

1979년의 그 모습으로 2021년의 도로를 달린다. 여전한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최신 기술들이 촘촘히 스며있다. 헤드램프에는 84개의 LED 모듈이 들어간 멀티빔 LED 방식이 적용됐고 12.3인치 디스플레이 2개를 연결한 와이드 스크린에 담겨있는 다양한 편의 및 안전장비들….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기가 죽는 건 내 차가 아니어서다. 이게 내차라면 기죽을 이유가 없다. 최고급 가죽, 빨간 인테리어 컬러, 손끝이 느끼는 질감, 눈으로 확인하는 호화스러움. 럭셔리는 이런 것임을 G63이 잘 얘기해주고 있다.

G63은 소리에 특히 집중했다. 도어 닫히는 소리, 도어락 작동하는 소리가 유난하다. 엔진 배기 사운드를 들으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살아있네! G바겐”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달리면 바람 소리가 먼저 반긴다. 바람을 다스리며 달리는 게 아니다. 맞붙으며 달린다. 바람의 저항이 거세지만,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바람 소리 좀 나면 어떤가. 어차피 남는 힘으로 밀고 달린다.

스포츠카처럼 빠르게 고속주행 구간에 진입하는데 의외로 흔들림이 덜했다. 옆 차선으로 달리는 카니발이 낮아 보일 정도로 차체가 높은데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AMG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과 사륜구동 시스템이 주행안정감을 높이는 데에도 한몫하고 있다.

AMG가 만든 V8 4.0 바이터보 엔진은 585마력, 86.6kgm의 힘을 낸다. 이쯤 되면 슈퍼카다. 이런 고성능이 순둥이처럼 말을 잘 듣는다. 다루기 쉽다. 고속에서도 불안감이 덜해 운전자가 비교적 편하게 다룰 수 있다.

9단 변속기는 주행 질감을 다양하게 연출한다. 시속 100km에서 9단 1,400rpm의 느슨함과 3단 5,100rpm의 팽팽한 긴장감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패들시프트를 툭 치면 변속기가 힘을 놓으며 튕기듯 변속이 일어난다.

스포츠와 스포츠+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지만 변속은 빠르고 부드럽다. 더블 클러치 기능을 작동해서다. 수동변속기에서 사용하던 드라이빙 테크닉을 자동변속기에서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 직각 보행을 할 것 같은 모습의 전통적인 SUV이지만 도로 위에서 스포츠카를 따돌릴 성능을 보여준다. 고성능 SUV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행모드에 에코 모드는 없다. 컴포트 모드가 에코 모드를 대신한다고 보면 된다.

오프로드에선 또 다른 진가를 만난다. 3개의 디퍼렌셜락 버튼을 통해 앞뒤는 물론 좌우 구동력까지 섬세하게 조절한다. 디퍼렌셜락 버튼은 1, 2, 3번 순서로 작동하면 된다. 센터-뒤-앞 순서로 작동한다. 구동력을 직결할 것인지 직결을 해제할 것인지 판단해 조작하게 된다. 1번 버튼을 누르면 전체가 해제된다.

인근 야산의 가벼운 오프로드를 택했다. 시승차로 빌려 타는 입장이라 아주 험한 오프로드는 부담스러웠다. 워낙 비싼 차라 차가 다치기라도 하면 책임지기도 버거워서다.

오프로드에서 제대로 움직이기 위한 몇 개의 장치들을 확보하고 있다. 우선 3개의 드라이빙 셀렉터를 갖췄다. 트레일, 샌드, 락 모드다. 정통 SUV의 상징과도 같은 저속 사륜주행 모드인 L 레인지도 있다. 여기에 3개의 디퍼렌셜 락 장치를 더했다.

몸도 오프로드 주행에 최적화된 체형이다. 최대 70cm 깊이의 물을 건널 수 있다. 최저지상고는 24.1cm. 접근각 30.9도, 이탈각 29.9도 뱅크각 25.7도 등의 체격조건을 갖췄다. 로 레인지에 트레일 모드, 3개의 디퍼렌셜 버튼을 모두 작동시키고 움직이니 어떤 길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끈적한 힘을 드러낸다. 오프로드 타이어가 아니지만, 차근차근 길을 밟고 움직이는 반응은 제대로 만든 오프로더임을 말해준다.

고성능 온로드 주행에 맞춘 295/40R22 사이즈의 굳이어 타이어였지만 오프로드 주행에 문제는 없었다. 물론 좀 더 거친 길이었다면 제대로 된 오프로드 타이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굳이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오프로드는 거뜬히 움직일 수 있는 체격과 기능을 갖추고 있다.

0-100km/h 가속 테스트를 했다. 메이커가 밝히는 이 차의 100km/h 가속 시간은 4.5초. 직접 테스트한 9차례의 결과 중 가장 빠른 기록은 4.47초로 메이커 공식 기록을 앞섰다. 흔치 않은 일이다. 가장 늦은 기록도 5.08초에 불과했다. 큰 편차 없이 고른 기록을 보였다는 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파주-서울간 55km를 움직이며 측정해본 실주행 연비는 7.9km/L를 보였다. 주행시간 1시간 19분, 평균 속도는 42km/h였다. 공인복합 연비 5.9km/L보다 리터당 2km를 더 가는 효율을 보였다. 역시 연비는 아쉬운 부분이지 공인 연비보다 더 좋은 연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무심코 움직이는데 도어락 걸리는 소리가 벼락 치듯 들린다. 소리에 집착하는 차이지만 그래도 너무 큰 소리다. 야성을 강조하는 이 차의 매력 포인트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넋 놓고 있다가 이 소리에 깜짝 놀란다. 소리 좀 줄이면 어떨까. 모르겠다. 그 소리가 조용해지면 또 매력이 없다고 타박할지도. 어쨌든 허를 찌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연비는 아쉽다. 하지만 이 차에는 의미 없는 지적이다. 판매가격 2억 1,480만원. 이 차를 사는 부자들에게 리터당 몇 킬로를 달리는지는 큰 의미 없는 일이어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