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이성을 함께 마주한다. 페라리를 탄다는 게 조금 특별한 경험인 이유다.

뜨거운 감성이 먼저다. 도로의 끝으로 빨려 들어가듯 내달릴 때 경험하는 경이로운 몰입감은 보통의 차에서는 느끼기 힘든 짜릿함이다. 피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몸 밖으로 터질 듯 나댄다.

그 요염한 자태는 또 어떤가. 도로를 덮어 눌러버릴 듯 낮은 곳으로 바짝 내려간 몸은 파도치듯 넘실대는 우아한 곡선을 휘감으며 농염한 자태를 뽐낸다.

뜨거운 감성을 만든 건 차가운 이성이다. 차체를 감아 도는 공기의 흐름, 한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엔진의 작동, 감량을 위한 소재선택, 열관리 등등.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과정을 꼼꼼히 마무리한 건 엔지니어의 차가운 이성이다.

페라리 F8 트리뷰토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만났다. 488 GTB의 뒤를 잇는 2인승 베를리네타다. 베를리네타는 쿠페라는 뜻.

V8 4.0 트윈 터보 엔진은 8.000rpm까지 치솟아 720마력의 힘을 토해낸다. 도대체 이 큰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 서킷 말고는 방법이 없다. 3,250rpm에서 터지는 78.5kgm의 토크는 또 어떤가. 그 큰 힘이 밀고 가는 차체의 무게는 고작 1,435kg에 불과하다.

메이커가 밝히는 이 차의 0-100km/h 가속 시간은 2.9초. 7.8초가 지나면 200km/h를 돌파한다. 가속페달을 오래 밟고 있을 수가 없다.

720마력의 힘은 놀랍도록 부드럽게 조율된다. 서킷을 두 바퀴 도는 동안 휠스핀은 없었다. 코너에서 코너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잠깐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을 뿐이다. 전체 구간에서 본다면 엑셀 오프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 듯.

기회는 있다. 용인스피드웨이의 가장 긴 직선 구산인 6코너와 7코너 사이. 완만한 6코너를 빠져나오자마자 과녁을 향해 발사된 화살, 아니 총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속도를 올렸다. 심장을 두드리는 엔진 소리, 빠른 속도감에 맨정신일 수 없다. 계기판을 확인하기보다 전방 주시하기도 벅차다.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젖어 들면 머릿속 잡념이 사라지고 몰입감에 빠진다.

변속 모드를 오토에 넣고 출발. 시트는 몸에 맞춘 듯 엉덩이와 허리 어깨를 감싼다. 스티어링휠과 분리된 채 큼직하게 배치된 패들시프트가 자연스럽게 손에 걸린다. 이를 통해 7단 DCT를 조율한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건 원할 때 속도를 제대로 줄일 수 있어서다. 과한 속도와 그리 무겁지 않은 차체를 브레이크는 수월하게 감당해낸다. 코너를 이탈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빠른 속도에서도 과감한 제동을 걸면 순식간에 얌전하게 명령에 복종한다. 말 잘 듣는 맹수, 아니 페라리니까 ‘종마’다.

몸이 느끼는 건 놀라운 차체 균형이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 쏠림 없이 균형을 유지한다. 앞뒤 무게 배분을 41.5대 58.5, 이상적으로 설정하고 사이드 슬립 앵글 컨트롤, 페라리 다이내믹 인핸서 등의 기술이 뒷받침한 결과다.

스티어링휠은 사이즈를 조금 더 작게 만들었다. 코너에서 조작감이 좋다. 회전반응은 빠르고 확실하다. 조향각이 크지 않아도 차체는 크게 반응한다.

엔지니어들의 차가운 이성이 빚어낸 화려한 기술들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일일이 설명하기가 어려운 기술들은 동작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제어하며 최고의 성능을 끌어내고 있다. 그중에는 F1 레이싱에서 이식된 부분도 제법 있다. 7단 DCT가 대표적이다. 720마력이라는 괴력을 겨우 7단 변속기가 조율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F1 경기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 양산차에 옮겨 놓았다.

퍼포먼스 론치 기능은 가속시 그립을 제어해 엔진 토크를 낭비하지 않고 최적화해 타이어로 전한다. 엔진 회전은 경우에 따라서 8,000rpm으로 곧바로 직행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전력 질주를 해야 할 때 엔진 출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다.

이전 대비 40kg 가볍고 50마력, 1.02kgm 더 세고, 에어로다이내믹 효율을 10% 개선하는 등 이전 488 GTB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좋아졌다는 부분이 작지 않다. 이미 최고 수준의 경지에 오른 전작 488 GTB보다 더 강하게 거듭난 F8 트리뷰토다. 만족을 모르는 페라리의 행보에 늘 기대를 갖는 이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굳이 토를 달자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 3억5,000만 원 정도로 짐작되는 가격(페라리는 공식적으로 이 차의 가격을 밝히지 않았다)도 가격이지만, 720마력의 힘을 서킷이 아니면 도대체 어디서 제대로 쓸 것이며, 도로와 맞붙어버릴 것 같은 낮은 차체로 저 많은 과속방지턱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서킷에서 두 바퀴, 꿈같은 주행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며 뱉어보는 독백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