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42]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선택은?

차를 육지에서 섬으로 운반하는 차를 ‘차도선’이라고 한다. 그 차도선의 동력을 내연기관이 아니 전기모터로 쓴다고 해서 ‘전도선(전기추진 차도선)’이라고 부른단다. 차 전체가 배터리인 트럭을 통째로 충전해서 배에 싣는 방식이다. 휴대전화 보조배터리처럼 말이다. 유튜브에 나온 연구용 선박은 이런 트럭(배터리) 2대로 2시간, 30km 정도를 운항한단다. 배터리에 불이 나면 그냥 배터리를 바다에 던져버리면 된단다. 대단한(?) 아이디어다. 당장은 배터리 몇 개 바다에 던진다고 환경오염 운운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온 세상이 환경오염 및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탈것을 만들고자 애를 쓰고 있는데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인 자동차는 어찌하여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전기차가 수그러드는 요즘 화두가 하이브리드인 만큼 토요타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사진은 렉서스 RX 500h. ©autodiary

전기차가 수그러드는 요즘 화두가 하이브리드인 만큼 토요타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이쯤에서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는 건 또 왜일까?

전기차의 수요 감소 추세에 따라 GM, VW 등 대형제조사들이 전기차와 관련된 투자 및 합작개발 계획 등을 취소, 혹은 연기하고 있다. 전기차의 심장인 주요 배터리업체에 대한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토요타의 아키오 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단지 전기차만이 아니라 하이브리드, 가솔린, 전기자동차 및 다른 분야에도 계속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고 회피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고 한다. 어찌 보면 토요타의 예지능력을 입증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이브리드 1위 업체로써 상대적으로 전기차개발에 늦었던 토요타의 입장을 변명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물론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화는 와중에도 토요타가 하이브리드 중심의 전략을 수정하지 못한, 아니 하지 않은 것에도 이유는 있다. 핵심기술을 선점해 시장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토요타의 여러 기술 중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핵심 요소인 직병렬 시스템을 선점하고 특허 출원해 타 메이커가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전기차로 급히 전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한해 30만 대 이상 팔아치우는 캠리(하이브리드/가솔린)는 픽업/SUV를 제외하고는 미국 시장 승용차의 절대강자로 사랑받고 있다.

비록 올해 초, 토요타의 사토 고지 신임 사장이 “전기차 퍼스트라는 발상으로 사업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라고 했지만, 토요타가 지난해 판매한 자동차 1,050만 대중 하이브리드가 260만 대, 전기차는 10만 대에 불과하다. 사토 고지 사장의 발언이 신임 사장의 의례적인 발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아키오 회장이 ”내 말이 맞잖아, 늦은 것이 늦은 것이 아니야“ 하는 것 같은 상황으로 가는 것인가?

일본, 특히 토요타의 반등 분위기가 국내에서도 느껴진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그것도 렉서스 하이브리드 모델의 높은 인기로 일본 차 불매 분위기를 타파하고 그동안 수입차 시장을 장악해 온 독일계 메이커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2019년, 토요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이브리드차의 특허 2만여 건을 무상으로 공개하겠다고 해서 관심을 모았던 것이 생각난다. 전 세계의 자동차 업계가 친환경 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차 시장 선점을 위해 처절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토요타가 자신들도 피땀 흘려 쌓아온 기술을 아무 대가 없이 공개한다는데 이유가 뭐였을까?

토요타는 2015년에는 수소차의 특허 기술을 공개한 바도 있다. 2019년에는 친환경 차의 특허 기술을 공개한 것이다.

그들의 표면적인 이유는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시장을 인위적으로 키우자는 것이었다. 마치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개발해 소스 코드를 공개함으로써 삼성, LG 등 스마트폰 생산업체는 개발비용과 시간을 줄였고 수많은 앱 개발업체는 함께 성장했다.

좀 더 토요타의 근본적인 목표를 따지자면 아마도 표준화 경쟁에서 유리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여러 기술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기술은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기술이다.
여러분도 기억날 것이다. 1970년대 소니와 JVC의 “비디오테이프 표준화 경쟁”에서 기술적인 면에서 우세한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과 JVC의 VHS 방식이 격돌했다. 시장의 소비자는 기술에 대한 독점적인 사용권을 고집하는 소니보다는 일정 수수료만 내면 VHS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JVC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JVC의 VHS 방식은 ‘표준’이 되었고 소니의 베타맥스는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테슬라에도 그런 예가 있다.
기술 특허의 개방은 아니지만 최근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충전설비를 각자 만들던 것을 포기하고 테슬라의 슈퍼차저를 쓰기로 했다는 것도 일종의 ‘표준’화 단계가 아닐까.

선박에서도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선박을 개발하고 있듯이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가 전기모터 차량으로 바뀌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전기차로 바로 가던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단계를 거치던 말이다.

그러나 그 완성 시기는 그동안 우리가 몇 년 동안 전망하고 목표로 해왔던 것보다는 좀 더 뒤로 미뤄질 것이고 또 그동안 전기차를 중점으로 하는 어떤 보완제가 발명, 발견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현대자동차도 지난 5월, 전제품 하이브리드화를 일컫는 ‘토요타 스타일’을 완성하는 차원에서 팰리세이드 2세대 모델 하이브리드화를 발표했다. 언뜻 대단한 전략처럼 보이지만,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는 예술가가 생계를 위해서 막노동도 겸한다는 모습이 떠오른다.

토요타의 아키오 회장이 전기차 시대에 일본산업의 강점은 “장기간에 걸친 실제적인 차량제작과 실패 경험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무엇일까.

최근에 하이브리드 차로 바꿨다는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내 대답은 이랬다.
“어쨌든 선배님 이번에 하이브리드로 바꾸신 건 잘하신 겁니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