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45] 엔진과 전기차의 희비쌍곡선

요즘 자동차 관련 기사를 보다 보면 머리가 복잡하다. 뭘 믿어야 하는지, 뭐가 핵심인지.

‘유로7’ 규제가 완화되면서 2025년이면 사라질 것이라던 내연기관 자동차가 당분간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단다. 꼭 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성장곡선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전기차 시장은 초상집 분위기 같다.

중국 1위 전기차 업체인 BYD는 2년 만에 가장 낮은 분기 실적을 냈고, 한때 제2의 테슬라가 될 것이라던 전기차 스타트업인 ‘피스커’는 상장 폐지가 되었단다. ‘피스커’는 ‘카르마’라는 모델로 ‘테슬라’보다 더 일찍 빛을 본 제조사였다.

정확히 2년 전 이 칼럼에 ‘2025년 유로7, 자동차 시장에는 무슨 일이 생기나?’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당시 자동차 업계는 2025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사실상 내연기관의 마지막 규제 등급이 될 유로7의 규제 수준과 테스트 조건 등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을 비롯한 여러 내연기관 생산메이커가 유로7을 ‘내연기관의 종말’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 유로7 규제를 연기하거나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자동차 소비자 중에 유로5니, 유로6니 하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몰라도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하는 자동차, 즉 내연기관 자동차가 뿜어내는 배출물(일산화탄소 가스나 매연물질 등)을 줄이라는 규제를 부르는 말인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유로 1에서부터 시작되어 단계별로 그 규제를 강화해 오다가 2025년, 유로7이 발표되면 내연기관차는 ‘종말’을 맞이할 만큼 강한 규제가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이었고 내연기관 생산메이커들은 그에 생사를 걸고 유로7을 연기하거나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30년 넘게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면서 그놈의 ‘유로X’는 회사의 고민거리 중 항상 윗자리를 차지하는 애물단지였다. 연구소의 파워트레인 부문 담당자들은 무슨 대단한 지식이나 되는 것처럼 “요번에 강화되는 유로X는 뭐가 어쩌고저쩌고”하는데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와 수치들이었다. 내용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결국 핵심은 “새로운 유로X 규제를 맞추기 위한 비용과 재료비 상승이 엄청나다”는 것이었고 결론은 “투자비 상승과 차 가격 인상”이라는 것이다.

“상품개선이라는 것은 소비자에게 더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 발전하는 신기술을 차량에 적용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선배들에게 배웠다. 이를 위해서 모든 관련부문들의 개발이 완성되는 시점과 시장의 변화, 경쟁사의 상황 등을 고려해 이벤트(발매) 시점을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벤트, 즉 모델 이어, 풀체인지, 마이너 체인지, 페이스 리프트 등은 새로운 유로X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엄청난 재료비의 부담을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소비자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 시점은 당연히 새로운 유로X 규제가 적용되는 시점이다. (시장 상황에 대응한다는 말은 그저 말뿐이었고)

다른 제품개선이나 신기술 적용 등은 절충과 조정을 거쳐 초기 제시안 대비 50%도 남아나지 않고 그나마라도 살아남은(!) 것이 감지덕지하기도 했지만, 이놈의 유로X는 에누리도 조정도 없는 절대강자(!)였다. 평상시 신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재경 부문과 상품팀 설득에 갖은 애를 쓰던 연구소가 유로X 대응 관련 회의에서는 그야말로 절대강자여서, “이거 대응 안 하면 차 못 파는데 그래도 되면 하지 맙시다” 하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연구소에서 이런 파워트레인 부문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앞서 EU는 2022년 말 사실상 내연기관차의 종식을 의미하는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7’의 초안을 내놓았다. 이 초안은 2025년까지 유럽에 판매할 모든 승용차는 질소산화물 배출을 유로6 기준 80mg/km에서 60mg/km로 줄여야 하는 것이었고 이 기준을 지킬 차량의 내구기간을 최대 10년에서 2배 이상으로 늘렸다. 또, 기존 규제가 없던 브레이크 입자 배출, 타이어 미세플라스틱 배출기준도 추가되었다. 이 규제 초안은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가 “완성차업체가 투입할 막대한 투자를 고려할 때 효과가 무용지물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유로7 초안을 강력히 비판했다. 여기에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도 “유로7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규제”라며 완화를 요구했고.

결국 두들기면 통한다고 EU는 승용차 배출가스 부문에서 유로6 기준을 크게 넘지 않는 수준으로 완화된 유로7을 내놓았고 의회의 최종 의결을 거쳐 완성차업체는 다시 오랜 기간 내연기관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미국 정부도 온실가스 감축 적용 기한 연기 및 목표치 하향을 골자로 하는 내연기관차 규제안을 내놓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차량 배기가스 규제 적용 시기를 2027년에서 2030년으로 연기했다. 또 2032년 수송부문 전기차량 비중 목표도 67%에서 35%로 대폭 낮췄다.

이는 제조사들이 수소, 하이브리드, 대체 연료 등 다양한 대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말이 그렇지, 전기차 안 써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비록 이번 규제가 올해 말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이라고 할지라도 자동차 업계의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유로7이니 내연기관을 죽이네 살리네 하지말고 전기차를 싸고 좋게 잘 만들면 굳이 유로7이니 뭐니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당연히 우리가 생각하고 예상했던 것만큼 전기차의 기술, 소재, 생산, 가격 등 여러 면에서 발전이 못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물론 거기에는 거대 내연기관 생산업체들의 투자효율 등 계산기 두드리기도 한몫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동안의 투자를 덜 뽑았다는 이야기다)

조만간에 내연기관 세상에서 전기차 세상으로 자동차산업의 주축이 뒤바뀌는 줄 알았다. 나를 포함해 모두 그렇게 당연한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기존과 같이 전기차는 우리가 판매하는 여러 파워트레인중의 하나인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충전 인프라가 적다는 불만도 그리 엄청나게 커지지는 않겠다.

그동안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투자가 늦다고 두들겨 맞던 토요타의 아키오 회장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전기차 세상이 곧 온다는데, 엔진 개발을 계속한다니 그 배짱이 대단하다 싶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