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39]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자동차 안전

자동차 제작사들이 제품을 홍보하는데 가장 효과가 큰 방법은 무엇일까?

갤로퍼를 출시했던 90년대 초반, 정몽구 회장도 가족들과 주말 나들이를 할 때 갤로퍼를 즐겨 타곤 했다고 한다. 어느 월요일 아침, 출근했더니 회사가 비상이었다.
주말에 손자들을 태우고 나들이를 갔는데 3열 시트에 앉았던 손자가 실내에서 테일게이트를 여는 손잡이를 당기는 바람에 달리는 차에서 떨어질 뻔했다는 것이다.

만일 고속으로 달리다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겠다.
이미 공장의 본부장께도 연락이 갔다고 하니 설계팀은 난리가 났을 것이고.
결국은 차 안에서 테일게이트를 여는 레버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잠금장치를 레버 옆에 적용해서 문제점을 해결했다. 후문용 ‘차일드 세이프티’라고 할까.
요즘은 2열 좌석에 앉은 사람이 내리려고 해도 함부로 못 내리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싼타페가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는 안전하차보조(SEA, Safe Exit Assist) 기능 말이다.

안전만큼 그 홍보 효과가 직접적이고 큰 항목이 있을까?
2020년 7월, 인기 아나운서인 박지윤 아나운서 부부 가족이 탄 차량이 역주행하던 2.5톤 트럭과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지윤 아나운서의 차량은 보닛이 종잇장처럼 구겨졌지만 이렇게 큰 사고에도 본인과 가족들은 가벼운 상처만 입고 병원에서 치료 후 귀가했다고 한다.
그 가족이 탔던 볼보 XC90을 출고하려면 1년 이상을 기다리는 차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사고의 홍보 효과였을까?

요즘 안전하지 않은 차가 어디 있길래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볼보 칭찬이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철판 두께를 가지고 안전을 논하는 수준은 아닐 테니 말이다.
충돌사고가 났을 때 더 잘 찌그러지는 차가 더 안전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차가 종잇장처럼 찌그러졌다면 승객들의 생사는 물어보기가 민망했겠지만, 지금은 박지윤 아나운서의 경우와 같이 경상만을 입을 정도로 자동차의 안전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잘 찌그러지는 차가 더 안전한 이유인 ‘크럼플 존(Crumple Zone)의 원리에 대해서 자동차회사 홍보자료 및 언론 기사 등을 통해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런 원리에 관한 기술이 최근에 개발된 것은 아니다.
크럼플 존은 벤츠의 천재 엔지니어인 ’벨라 바레니‘라는 양반이 도입한 것으로 1950년대 중반에 자동차 충돌시험을 통해 그 효과를 사람들에게 입증했다.

최근 전기차가 대세인 것처럼 유명세를 타다보니 마치 판매되는 차의 절반은 전기차인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아직도 세상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10대 중 9대는 우리와 친숙한 내연기관 자동차다.
전기차의 배터리 화재가 뉴스의 주제가 되고 자율주행 능력이 자동차의 안전수준을 대표하는 기준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여전히 자동차의 안전이란 예방 안전 및 충돌 안전이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 판매되는 모든 차의 충돌시험을 하는 KNCAP 테스트 결과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현대자동차 그룹의 차들이 수위를 차지한 것을 보고 비난하는 말들도 많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시행하는 KNCAP 안전도 평가는 크게 ‘충돌 안전성’ ‘보행자 안전성’ ‘사고 예방 안전성’의 3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히 이 3가지 항목의 점수 합산이 높으면 안전한 차라고 하겠다.
충돌 안전성과 보행자 안전성은 차량, 물체 그리고 보행자와 충돌하는 상황에서의 안전성, 즉 차에 탄 승객의 안전뿐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을 측정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차량 안전성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3번째 항목인 ‘사고 예방 안전성’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 안전성은 차량이 주행시 전복되지 않도록 얼마나 안전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측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요즘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라고 총칭하는 운전자의 운전을 돕는 ’첨단 안전장치‘가 얼마나 적용되었나 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적용된 첨단장비의 작동조건 등도 평가항목이기는 하지만 일단 첨단장비가 적용조차 되지 않은 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요즘 안전하지 않은 차가 없다고 하듯이 어느 제작사나 차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안전 성능 확보는 필수적이고 특히 가장 기본인 충돌 안전에 대한 대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첨단 안전 장비 옵션을 잔뜩 기본으로 밀어 넣어서(!) 달성하는 1등보다는 역시 모든 차에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안전 장비로 차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게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그래야 “있는 놈만 살라는 말이냐!” 하는 키보드 워리어들의 먹잇감도 좀 줄어들 것이고 말이다. 세상에서 첨단 안전장치를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적용한다는 벤츠의 S클래스를 모든 사람이 탈 수는 없지 않은가.

굳이 자동차 안전에 대해 이슈가 되는 제작사들의 이야기를 하자면 당연히 큰 형님인 벤츠가 있겠지만 볼보 자동차의 안전에 대한 집념과 역사 또한 관심 있게 볼만하다.
(이쯤 되면 본격적으로 볼보 홍보 시작이냐 하겠지만 전혀 무관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벤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동차 안전 기술의 ‘백반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 앞에서 언급한 50년대에 이미 그 중요성을 확립한 ’크럼플 존(Crumple Zone)‘기술부터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ABS, ESP(Electronic Stability System, VDC라고도 하고), 통합 브레이크 시스템인 Adaptive Brake System등 무수한 안전 장비를 최초로 개발하고 적용해왔다.
또한 벤츠에서 2002년 S클래스에 최초로 적용해 벤츠 안전 기술의 상징처럼 단골로 홍보하는 프리-세이프(Pre-Safe)를 들 수 있다. 프리-세이프는 사고의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여 차량의 능동적 안전 시스템(안전벨트, 에어백 등)을 통제해 실제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탑승자를 미리 보호해준다.

볼보의 특징을 들자면 스웨덴, 즉 북유럽의 가혹한 기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볼보, 사브(SAAB)등 북구 제작사 차들의 특징은 고속주행이나 날렵한 코너링보다는 눈길에 미끄러져도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 기술이 많이 들어가면서 눈비와 제설제 등에 부식되지 않는 내구성이 차량개발의 포인트였다. (사브가 2011년에 문을 닫았던가?)
인터넷이나 옛날 책자 등에서 혹시 볼보 차를 7대씩 쌓아놓고 그 튼튼함을 강조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1982년에 있었던 일명 ’세븐업(Seven-Up) 테스트‘라고 했다는데 그 진위를 놓고 논란이 많아서 오히려 유명해졌다고 한다.
볼보는 50년대에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 차체를 세계 최초로 설계해 선보였다.
또 유리를 겹겹이 붙여 충격을 받으면 부스러지는 라미네이트 안전유리를 개발하기도 했으며 59년에는 세계 자동차 역사의 획을 긋는 3점식 안전벨트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3점식 안전벨트는 벤츠가 개발했느니 아니니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또 측면에어백, 커튼에어백 등 우리에게 친숙한 다양한 안전 시스템들도 개발했다.

충돌을 알아서 감지하고 정지하는 첨단 제동기능이나 핸들에 손을 댈 필요가 없는 자율주행 기능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소한 문제로 사고가 난다면 그 많은 첨단 안전 기능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작은 나사 하나 때문에 폭발한 우주선처럼 말이다.
혹시 놓치고 있을 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도 집중하고 꼭 필요한 안전 기술은 옵션이 아니라 모든 차에 기본으로 적용할 일이다. 적당한 가격으로 말이다.
복잡한 가격표도 단순하게 하고 얼마나 좋은가.

내 차에서 안전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