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36] 전기차 시대의 과제들

오래전, 누군가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미국에서 전기차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부유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첨단기술 애호가들이나 선택하는 차라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미국에서는 판매되는 신차 100대 중 5대가 전기차라고 한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거의 2배로 늘어난 수치로 미국 시장의 전기차 증가추세를 잘 보여준다. 그나마 반도체, 배터리, 기타 부품 등의 부족으로 인해 생산제약이 없었다면 더 많이 팔렸을 것이다. 세계적인 에너지 시장조사 기관인 블룸버그 NEF는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하위법인 기후법 시행 후,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승용차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작년 동기 대비 전기차 등록 대수가 15만대, 73%나 증가해 올해 10월, 이미 36만 대를 돌파했고 년 말까지는 38만 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를 113만 대까지 늘리겠다고 적극적으로 목표를 잡기도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대비 50% 증가한 1,000만대로 전 세계 자동차시장의 13%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중 600만대 이상이 중국 전기차다. 이를 제외하면 전년 대비 증가율은 16% 수준이다.

중국은 2022년 자동차 전체판매량이 2,600만 대를 돌파할 것이면서 전기차의 비중도 20%가 넘으니 결국 중국이 세계의 전기차 통계를 갈아치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2030년이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희망이자 꿈인 전기차 비중 50% 목표 달성이 어렵지 않을 듯이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030년 전기차 점유율은 30%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를지 모르나 지금과 같은 성장세가 한풀 꺾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글로벌 에너지 정보분석 기업인 S&P 글로벌 플래츠(S&P Global Platts)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희망을 달성하기에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충전 인프라 확대, 전기차 생산비용 인하, 부품 공급망의 안정적 확보 등을 선결과제로 뽑았다.

결국 소비자들이 다음 차로 망설임 없이 전기차를 선택하려면 사용이 편해야 하고 내연기관차와 가격 차이가 작아야 한다. 또 배터리, 반도체 등 전기차의 핵심부품에 대한 공급망이 유연하고 안정적이어서 생산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차 하나 계약해놓고 1년 넘게 기다리는 상황이 정상인가?)

미국에서도 전기차 사용의 가장 큰 단점은 충전소 부족이라고 한다. 동부나 서부의 대도시 밀집 지역을 벗어나면 충전소가 매우 부족하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수백만 명이 개인 충전시설이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전기차 증가의 한계점이라고 한다. 인구가 3억이 넘는 나라에서 몇백만 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 문제라면 인구 5천만에 전체주택 중 아파트가 60%가 넘는 우리나라는 어쩌란 말인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전기차 충전 인프라 조사자료에 의하면 국내 충전 인프라는 충전기 한 대당 전기차 대수가 2.6대로 조사 대상국 중 1위란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집밥’이라고 부르는 ‘가정용’보다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보급된 충전기가 더 많다.

우리 정부의 목표대로 올해 38만 대인 전기차를 2025년에 113만 대까지 늘린다면 앞으로 매년 전기차를 20만 대 이상 판매해야 한다. 과연 이 차 중에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차는 얼마나 될까? 아니면 아파트에 사는 대다수 운전자가 ‘백반(공공충전소)’을 먹고 출근할 수 있을는지. 신차판매의 50%가 전기차라는 노르웨이는 단독주택이 99%라고 하지 않는가.

배터리팩은 전기차 원가의 30%를 차지한다. 배터리팩의 가격은 리튬 등 주요 원자재의 가격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배터리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NCM(니켈, 코발트, 망간) 배터리 팩의 가격은 25% 이상 상승해 결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가격을 올리거나, 원가를 절약하고 정부의 지원강화를 요청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코발트, 니켈, 리튬의 가격이 폭등해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이 광산 사냥에 나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갈빗집 사장이 아예 한우농장을 직접 하겠다는 이야기인가?

부품 수급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는 ‘내재화’에 관심을 두는 메이커들이 많아졌다.

내재화의 목적이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인 부품공급이지만 더 큰 목적은 가격 인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재화한다고 가격이 반드시 낮아지나?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한 GM·포드는 이미 호주 등 현지의 광산업체들과 직접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테슬라도 광산사업에 눈독을 들인다는 이야기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유럽의 에너지 대란으로 유럽연합이 내세워온 ‘탈탄소’와 그 실현 방법인 ‘친환경 차로의 전환’ 사업도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테슬라 모델3와 가솔린차인 혼다 시빅의 100마일 주행에 드는 충전/주유비가 18유로(약 2만 5,000원) 수준으로 같아졌다고 한다. 전력난이 계속되면서 스위스, 독일은 꼭 필요한 일정이 아니라면 전기차의 주행 자체를 금지하거나 권고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70년대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로 차량 운행 2부제, 3부제 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주위의 상황을 보고도 전기차를 구입하겠다고 결심하기는 쉽지 않겠다!

후배 지점장에게 물어보니 지자체들의 전기차 보조금 예산이 남아돈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전기차는 지자체마다 매해 보조금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예산이 떨어지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니 빨리 출고를 해야 하는 차가 아닌가? 정부의 예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나?

알고 보니 아이오닉5, 6는 출고까지 12~18개월이 소요되고 제네시스의 전기차인 GV60, 70도 12~14개월이 소요되어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주고 싶어도 출고하는 차가 없으니 지원을 못 해주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단다. 이러다 보니 전기차가 안 팔려서가 아니라 출고가 안 되어서 정부의 원대한 전기차 보급 목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충전이 불편한 아파트에 사는 아저씨도 차만 출고되면 전기차를 사겠다고 줄을 서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S&P 글로벌 플래츠(S&P Global Platts)의 예측과 같이 전기차의 성장이 한풀 꺾이는 것과는 관계없는 나라일까?

이미 지난 9월부터 전기차 충전요금 특례 할인이 종료되어 공공급속 충전요금이 10% 이상 인상되자 전기차 소유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한전의 만성적인 적자 해소를 위해 내년 전기요금이 20% 넘게 인상될 예정이라니 전기차 충전요금이라고 안 오를리 없을뿐더러, 출고적체가 완화되어 전기차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우려했던 충전난이 바야흐로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집밥’ 먹는 충전기가 아파트에 갑자기 샘솟듯이 생길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폭풍 성장해온 전기차 시장이 바야흐로 지뢰밭에 접어드는 상황이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