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MZ세대 사무직들이 기존 노동조합에 반기를 들고 사무직 노조를 결성했다는 소식이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인재 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이다.

올들어 LG전자와 금호타이어에서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졌고 노조설립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IT업체나 게임업체에서도 노조설립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현대자동차 사무직은 노조가 없었다는 말인가?’

맞다. 현대자동차 사무직 노조는 없었다. 그동안 사무직 노조를 결성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으나 사측의 강력한 저지로 모두 무산되고 말았었다.

타사도 마찬가지겠지만 현대자동차는 사업장(공장, 정비,연구소,영업점 등)별로 노동조합이 별도로 있다. 물론 그 중심은 조합원 수로 볼 때 가장 막강한 공장의 생산직 노조가 되겠다.

울산과 아산 공장으로 입사한 사무직은 생산직 노조에 자동 가입되고 급여에서 조합비도 공제한다. 물론 본인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면 탈퇴가 가능하다. 팀장을 맡고 있던 시절, 울산에서 본사로 발령은 받은 직원이 의미 없이 계속 조합원으로 조합비만 내는 것이 싫어서 울산 조합에 탈퇴하겠다고 신청을 하자 탈퇴 사유가 무엇인지, 혹시 팀장이 강제로 탈퇴하라고 강요한 것은 아닌지 꼬치꼬치 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6.29 선언으로 민주화 바람이 불던 1987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그 당시 공장, 영업소, 정비 등 각 사업장에서 매일 깃발을 휘날리고 노동가를 부르며 노조 발대식을 하고 사측에서는 이를 막느라 애쓰는 광경이 흔하게 보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그 당시 본사에서 광화문 지역본부로 명령이 나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지역본부 산하 10여 개의 영업지점에서는 지점별로 영업직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명동 인근에 있는 지점의 지점장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지점의 전시장과 사무실 출입구를 막고 지점 노조 결성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담당과장과 함께 헐레벌떡 달려가 보니 지점장은 망연자실, 노동가가 들려오는 2층의 사무실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 있었고.

현대자동차의 최강 생산노조에도 부족해 ‘사무직’까지 노조를 만들면 마치 회사가 곧 망할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무직 노조의 출범은 기존 노동조합에 반기를 들고 출범하는 것으로 우려하는 바와 같이 생산직에 사무직까지 똘똘 뭉쳐 대책 없는 존재가 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요즘 어떤 분야이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로 IT에 능하고 그중 젊은 세대(1990년 이후 출생자)는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특성이 있으며 2019년 기준 약 1,700만명으로 국내 전체인구의 34%(15~39세)로 그야말로 현재와 미래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무직 노조출범을 선언한 현대자동차 사무직 노조 직원 중 나이가 30세인 직원이라면 평균적으로 입사 3~4년 차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만큼 다른 세대에 비해 조직의 합리성, 공정성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2018년부터 정기공채가 아닌 수시채용으로 직원을 채용하게 됨에 따라 경력직 직원들이 많이 입사하게 되고 이들의 가치관이나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은 갓 대학을 마치고 입사한 파릇파릇한 새내기들과는 다를 것이다.

금호타이어의 사례는 직원들 불만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는 경우였다. 신종 코로나로 경영상황이 악화되어서 노·사가 임금동결을 합의하면서도 생산직에만 격려금 100만원을 지급키로 합의하면서 결국 그동안 쌓였던 사무직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MZ세대가 아니라 60대 노인네라도 그렇지 사무직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아니 그동안 사무직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고 말을 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태라면 가만있는 게 더 이상하겠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경영악화 및 시장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등을 이유로 급여동결 및 연말 보너스도 대폭 축소되는 추세로 변화했다. 작년 평균 연봉이 전년 대비 800만원 정도 줄었다고 하는데 연봉이 최소한 동일하거나 소규모라도 인상되는 것이 상식인 상황에서 이렇게 줄어들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경영자의 연봉은 더 올라가고. 몇 년 전만 해도 단 얼마라도 더 급여를 인상하고 보너스를 받아내려고 파업도 불사하던 노조에서 과연 이런 사실을 묵인한 걸까?

아니다. 현대자동차 노조집행부와 조합원들의 가장 큰 관심 사항은 급여보다 고용 유지에 있다. 노조원들의 연령대가 높아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들이 많아짐으로써 그들의 퇴직 후 일자리 확보와 몇 년 전부터 이슈인 전기차로 전환 등으로 인한 생산 인원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측에 요구하는 사항이 달라진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는 특히 모듈화하는 부분이 기존 내연기관 차보다도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산 라인의 인원 축소를 막기 위해 모비스에서 모듈화해서 들어올 수 있는 부분을 일부러 모듈화 하지 않고 현대자동차 라인에서 조립하는 등 인원 축소를 최소화 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생산노조가 연봉의 감소를 감수해가면서 인원 축소를 최소화하는 소득을 얻어내는 동안 사무직이 얻어낸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사무직은 여전히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대상인가? 이런 것들이 MZ세대를 주축으로 사무직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가 된 것 같다. 조직 내의 일방적인 지시라든가 불합리한 조직환경에 대한 개선 욕구 등의 이유도 더해졌을 것이다.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고심을 하던 때가 80년대 후반 50대 초였고 그룹 회장에 오른 건 60대 초반이었다. 정의선 회장이 올해 50이 넘었다.

그 입지는 정몽구 회장이 50대였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넓고 크다. 정의선 회장이 명실상부한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끌어가는 총수의 자리에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선언한 방대한 계획들을 성공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그와 함께 이제 자신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노사관계다.

선대가 노조에 대해 갖고 있던 의식이나 가치관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노조를 떠나 직원을 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그들이 노조를 만들든 만들지 않든 정당한 요구를 하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회사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조언으로 듣고 같이 고민해야 한다. 기왕 사무직 노조도 결성되었으니 이제 사내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대표할 창구가 모두 만들어졌고 회사와 직원들 간의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