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F를 만났다. 3년여만의 재회다. E 클래스와 5시리즈 틈바구니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지키고 있는 영국산 프리미엄 중형 세단이다.

XF는 2.0 디젤과 가솔린, 2WD, AWD를 각각 조합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고 V6 3.0 가솔린 엔진을 얹은 S AWD 트림이 최상위 모델로 자리하고 있다. 시승차는 20d AWD 포트폴리오 모델이다. 판매가격 7,650만 원.

여전한 모습. 쿠페 라인을 살짝 입힌 4도어 세단의 모습.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 보디에 인제니움 2.0 디젤 엔진과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했다. 무려 190kg을 감량해 공차중량이 1,875kg이다.

신경을 많이 쓴 인테리어다. 실내에 들어서면 몸이 먼저 안다. 편안하게 몸을 받아주는 가죽 시트, 가죽과 금속, 나무 등의 인테리어 소재는 손끝이 먼저 고급스러움을 알아차린다. 스웨이드 가죽으로 마감한 천정은 압권이다. 손으로 쓰윽 쓸어넘길 때의 느낌이란……. 운전석과 조수석 앞 공간을 감싸는 인테리어는 멋스럽고 포근하다.

뭔가 다르다. 기어 셀렉터 레버가 그렇다. 시동을 걸면 스윽 올라오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원형 기어 레버. 운전 좀 한다고 거칠게 조작할 수가 없다. 부드럽고 여유 있게 다룰 수밖에 없는 기어 레버다. 대신 스티어링 휠 아래 패들시프트가 있다. 수동 변속은 패들 시프트를 거쳐야 한다.

센터페시아에는 10.2인치 터치스크린이 적용됐다. 인컨트롤 터치 프로 시스템이다. 내비게이션 지도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주행 상황, 에너지 효율 등 다양한 정보가 올라온다. 깔끔한 화면이 보기 편하다.

계기판은 12.3인치 풀 HD 가상 계기판이다. 계기판 전체에 내비게이션 지도를 띄울 수 있고, 운전자 취향에 맞춰 각기 다른 4개의 계기판 디자인을 제공한다. 주행보조, 트립미터 등 운전자가 필요한 정보를 선택해 띄울 수 있다.

뒷좌석은 편하게 앉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세단의 뒷좌석은 시트 포인트가 낮아서 몸이 접혀져 앉는 느낌을 주는데, XF의 뒷좌석은 마치 의자에 앉은 듯 편한 자세가 나온다. SUV의 시트와 비슷했다.

도어는 힘차게 닫지 않아도 된다. 살짝 걸쳐놓으면 차가 알아서 닫아준다. 소프트 클로즈드 도어다. 프리미엄의 가치를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다.

180마력의 힘은 어중간하다. 중형 세단의 힘으로 부족하지 않다 싶지만, 재규어의 중형 세단이라면 이보다는 좀 더 강한 힘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실제 주행에 들어가면, 놀랄 만큼 힘찬 모습을 보여준다.

디젤 엔진의 진중한 반응으로 중저속에서 편안한 주행을 이어가고 속도를 끌어올리면 한계 속도까지 치고 나간다. 흔들림에 강했다. 더블 위시본과 인테그럴링크 타입의 앞뒤 서스펜션이 AWD와 맞물려 탁월한 안정감을 선보이는 것. 고속주행에서 특히 안정감이 빛났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도 엔진 사운드는 들리는 듯 마는 듯 조용했다. rpm을 높여도 엔진소리는 바람 소리에 묻힌다. 다이내믹 모드를 유지하고 변속레버를 S로 돌리면 비로소 엔진 사운드가 살아난다. 이 상태에서 rpm을 끌어올리면 자동 변속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어를 끝까지 물고 가는 것. 다이내믹하게 적극적으로 차를 다룰 때 유용한 조합이다.

힘의 효율이 놀랍다. 마력당 무게비를 계산해 보면 10.4kg으로 무거운 편이다. 출력과 무게를 따져볼 때 일반적인 차라면 제로백 10초 전후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8.5초 만에 시속 100km를 주파한다는 게 재규어의 설명이다. GPS 계측기를 이용한 실제 테스트에서도 가장 좋은 기록은 8.5초였다.

랜드로버에서 이식한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이 적용됐다. 시속 3.6km부터 30km 사이에서 작동하는 저속 크루즈컨트롤 기능으로 보면 된다. 중형 세단에 굳이 이런 기능까지 필요할까 싶지만, 경쟁차에는 없는 재규어만의 특징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이해해 본다.

245/45R18 콘티넨털 타이어와 서스펜션, 그리고 사륜구동 시스템은 특히 코너에서 빛을 발했다. 반경이 짧은 코너를 빠르게 진입했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재규어 XF는 여유 있게 코너를 공략해 나갔다. 흔들림은 크지 않았고 조향은 정확했다. 필요에 따라 안쪽 바퀴에 제동을 가하는 토크벡터링도 한몫을 한 결과다.

시승차에는 크루즈컨트롤만 적용됐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이탈경고장치 등은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수입 중형 세단 시장은 E 클래스와 5시리즈로 대표되는 거물들이 포진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 재규어 XF는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름의 존재감을 확보하고 있다. 프리미엄 니치마켓을 파고드는 재규어의 전사가 XF다.

선택의 폭이 넓다. 엔진, 구동 방식의 조합으로 다양한 트림을 선보이고 있다. 가격대도 6,000만 원대 중반에서 1억 원대까지 그물을 넓게 폈다. 소비자들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차종들을 많이 갖췄다는 의미다. 적어도 소비자가 재규어를 사야겠다고 한다면 이것저것 고민하며 선택할 수 있는 모델들이 많다.

파주에서 서울까지 55km를 에코 모드로 달리며 측정해본 연비는 21.1km/L를 기록했다. 메이커가 밝힌 이 차의 공인 복합 연비는 12.4km/L. 계기판에서는 가속페달, 브레이크 페달, rpm 사용 등의 효율을 보여준다. 이를 참고하면서 운전하면 공인복합연비 이상의 연비를 만날 수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센터 콘솔은 손바닥만 하다. 겉보기에는 제법 넓은 공간을 가졌을 것 같은데 콘솔 커버를 열면 깊이가 거의 없는 손바닥 정도의 공간이 드러난다.

주행모드를 선택하는 버튼은 직관적이지 않다. 다이내믹 노멀 에코 등을 알리는 아이콘 위를 손으로 눌러도 반응은 없다. 나열된 아이콘들의 좌우에 배치된 화살표를 눌러 조작해야 한다. 직관에 거스르는 버튼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