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차를 달랬더니 집 한 채를 보내왔다. 왜 이렇게 커? 우리에겐 낯선 1.5박스 세미보닛 스타일. 게다가 수동변속기다. 르노 마스터 L과의 조우는 당황스러웠다. 무대 위의 차를 볼 때와 직접 운전해야 할 상대로 만날 때의 느낌은 차이가 컸다.

이 큰 차를 내가 움직여야 한다. 좁은 주차장에 집어넣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지붕이 걸리지 않는지까지 내려서 직접 살펴야 했다. 살짝 후회도 했다. 타지 말걸. 그냥 편하게 운전석에 올라 ‘휙’ 하니 움직이기엔 많이 성가신 차다.


크기가 주는 부담이 확 다가왔다. 그 넓은 화물칸에 짐을 싣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누벼야 하는 차다.

르노 마스터 L. 현대기아차 독점 시장에 홀연히 등장한 이단아다. 3인승 화물밴. 길이 5,550mm, 너비 2,200mm, 높이 2,485mm. 어느 하나 만만한 곳이 없다. 길고 넓고 높다.

실내, 아니 화물칸은 3,015×1,705×1,940mm의 공간이다. 바닥은 레진 우드를 사용했고, 옆 벽면은 하드보드를 사용했다. 사람이 편하게 서서 움직여도 남을 정도의 높이다. 바닥면적을 따지면 1.5평이 넘는다. 텅 빈 그대로 두고 캠핑카로 써도 좋겠다. 캠핑카가 별건가, 차 안에서 잘 수 있으면 되지. 서너 명은 넉넉히 품어서 재울 수 있는 공간이다.

당연히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캠핑카로, 이동형 매장(푸드, 카페 등)으로 꾸밀 수 있다. 중소업체와의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고 르노삼성차는 밝혔다.

메탈 벌크헤드는 화물칸과 객실을 정확하게 분리해 실어놓은 화물이 객실로 밀고 들어가는 사고를 막아준다. 리어 게이트는 슬라이딩 방식으로 열리는데 마스터 L은 270도, S는 180도로 열린다.

사방이 탁 트인 화물칸에 적재물이 떨어질 위험을 안고 달리는 1톤 트럭에 비하면 실내에 짐을 싣는 화물밴은 훨씬 안전하다. 보기에도 좋다. 엔진룸이 튀어나온 세미보닛 스타일이라 운전자의 안전에도 유리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기보다, 그래도 사람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선진국형 화물차다.

탑승공간은 넓다. 대형 트럭처럼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실내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173cm인 몸을 넓게 펼쳐진 시트 3개에 맞춰 누워보니 발끝이 살짝 걸리는 정도다. 시트는 3개가 있고, 이중 가운데 시트는 접어서 테이블로 사용할 수 있다.

수납공간은 차고 넘친다. 손이 닿는 곳마다 있다. 머리 위에도, 왼쪽 도어 패널에도, 가운데에도 여기저기 이중 삼중으로 수납공간이 있다. 모두 15개라고 하는데 분류하기에 따라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센터페시아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모니터 하나가 있다. 조금 허전하지만, 그렇다고 이런저런 편의 장비를 채워 넣을 필요는 없다.

수동변속기는 오랜만이다. 운전하는 재미 때문에 수동변속기를 적용했을 리는 없다. 상용 화물차여서다.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이왕 수동변속기를 써야 한다면, 재미있게 그 맛을 제대로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터다. 피하지 못할 거라면 즐기라는 의미. 마스터에는 수동변속기만 있다. 자동변속기는 아직 적용하지 않는다. “조만간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라도 추가한다”에 500원 걸어본다.

슬라이딩 도어는 열리는 폭이 1m를 넘는다. 아주 시원하게 열린다. 책상이나 소파처럼 제법 큰 가구도 마술처럼 드나든다.
스틸 휠에 리프 스프링을 사용했다. 상용차의 공식이다. 스틸 휠에는 휠 커버를 덧씌웠다. 보기에 좋고, 휠을 보호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타이어는 225/65R 16 사이즈의 컨티넨탈 타이어를 사용했다.

상용밴, 화물차인 만큼 주행성능을 시시콜콜 따질 필요는 없다. 빈 차 상태여서 뒷부분이 다소 거칠게 반응했다. 화물을 싣고 지그시 눌러주면 상당 부분 완화될 터다.

2.3 리터 트윈터보 엔진의 힘, 145마력은 넉넉히 달려줬다. 물론 적재량 1,200kg을 다 채우면 그 힘의 느낌은 또 달라진다. 화물을 싣고 달릴 때 중요한 건 제동, 즉 브레이크다. 제동거리가 길어지는 만큼 여러 번에 나눠 미리 제동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닥 조용하진 않지만, 의외로 노면 잡소리가 들어오진 않았다. 통통 튀는 느낌, 철판에 반사되는 소리의 공명 등 실내에서의 느낌이 세단과는 확연히 달랐다.

시트 포지션이 버스 운전석 높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데 운전자의 눈높이가 비슷했다. 높은 위치는 실제로 운전자를 조금 거만하게 만든다. 옆에서 함께 달리는 다른 차를 내려다 보게 되고, 또한 멀리 내다본다. 여유 있게 달리는 맛을 알게 된다.

가속페달을 조금 깊게 밟았다. 마지막 순간에 걸리는 느낌, 가속페달에 킥다운 버튼이 느껴진다. 속도를 올리는데 답답함은 없다. 2.3 리터 트윈터보 엔진의 145마력은 부족하지 않다. 물론 화물을 가득 채우면 그 느낌은 또 달라질 것이란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승합차는 110km/h에 속도제한을 걸어놓지만, 화물차는 그렇지 않다. 그 이상으로도 달릴 수 있다. 가끔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을 만나면 통통 튄다. 미세하게 충격을 조절하는 승용차와 달리 서스펜션은 거친 편이다.

바람 소리는 속도에 비례에 커진다. 그래도 세미보닛 스타일이어서 수직의 ‘벽이 밀고 가는 느낌’과는 다르다.

수동변속기와 엔진 오토 스타트/스톱 시스템의 조합은 낯설다. 차가 멈추면 시동이 꺼지고, 클러치를 밟을 때 재시동이 걸린다. 재시동은 그렇게 거칠지도, 아주 부드럽지도 않다. 적당한 반응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동변속기 조작 미숙으로 시동이 꺼질 때다. 운전자가 당황스러운 순간인데, 전혀 당황할 필요가 없다. 클러치를 밟으면 다시 시동이 걸렸다. 시동키를 다시 돌려 시동을 거는 게 아니라, 클러치를 밟아주면서 재시동 걸고 자연스럽게 계속 움직이면 된다. 동승자는 조작 미숙으로 엔진이 꺼지는지, 꺼질 때가 돼서 꺼지는지 잘 모른다. 재미있다. 시동 꺼짐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다.

마스터의 가장 큰 매력은 텅 빈 공간에 있다.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가에 따라 이 차의 가치는 달라진다. 아주 고급스러운 캠핑카로 만들 수도 있다. 이동식 매장으로 꾸미면 생계수단으로 훌륭한 도구가 된다. 물론 빈 상태 그대로 안전한 화물차로도 쓰임새는 훌륭하겠다. 자동차가 아니라 빈방이다.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것도 이 차가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화물차가 아닌 승합차, 즉 소형 버스도 있다. 르노삼성차는 시장의 반응을 보며 도입을 검토할 것이라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마스터의 진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공인 복합연비는 10.5km/L, 마스터 S는 10.8km/L다. 판매가격은 마스터 S가 2,900만 원, 마스터 L이 3,100만 원이다. 스타렉스 3인승 디젤 밴이 2,110만 원~2,195만 원이니 이보다는 비싸다. 하지만 공간의 활용성을 감안하면 비싼 이유에 수긍이 간다. 쏠라티 3인승 밴은 6,390만 원. 비교가 의미 없을 정도로 가격 차이가 크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15곳에 달하는 수납공간은 때로 불편할 수도 있다. 어디에 물건을 넣어뒀는지 찾을 때 더 많은 곳을 헤매며 찾아야 한다. 수납공간이 너무 많아 그 많은 곳을 찾아야 하는 건 때로 짜증 나는 일이다. 수납공간은 조금 줄여도 좋지 않을까 싶다.
수동변속기에 대해 개인적 불만은 1도 없다. 하지만 일반 운전자들이라면 가장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다. 옵션으로라도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판매량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