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의 핵, 911이 7세대 모델로 탈바꿈했다.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해온 포르쉐 911이 이제 7세대 모델을 앞세워 한국을 찾은 것이다.
911은 여전히 포르쉐를 대표하는 모델이다. 카이엔과 파나메라가 판매량 면에서는 911을 훨씬 능가하지만 어느 누구도 포르쉐의 대표 모델을 카이엔이나 파나메라 라고 하지 않는다. 여전히 건재한 911이 포르쉐의 뿌리이자 맏아들이기 때문이다. 판매에 좌우되지 않는 911의 권위는 카이엔이나 파나메라가 넘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포르쉐의 이념 덕이다. 포르쉐는 스포츠카 브랜드이고 911에 그 진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신형 911은 커졌다. 차체 길이는 56mm가 길어졌고 휠베이스는 이보다 더 긴 100mm가 늘어났다. 차의 안정감이 조금 더 좋아지는 비례를 갖춘 셈이다. 긴 보닛, 쿠페 스타일로 짧게 떨어지는 뒷모습은 다른 차들과는 완전히 다른 포르쉐만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포르쉐 디자인의 강점은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다는 점. 7세대를 거치며 디자인이 변화해왔지만 1세대 911의 흔적을 7세대 모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몇 세대 모델인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 봐도 한 눈에 911임을 알 수 있다는 점은 다른 브랜드에서는 찾기 힘든 포르쉐 911의 특징이다. 전체 길이는 4.5m로 측면에서 차를 보면 운전석 시트포지션이 차의 중앙보다 뒤로 배치됐음을 알 수 있다. 차의 조향 특성을 보다 더 다이내믹하게 느낄 수 있는 배치다.

휠 하우스를 꽉 채우는 20인치 대형 알로이 휠은 차의 역동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포인트다. 앞은 245/35 ZR 20, 뒤는 295/30 ZR 20 사이즈를 끼워 911 카레라 S에서 터지는 400마력의 극한적인 성능을 뒷받침하게 했다.

지붕을 스웨이드 가죽으로 덧댄 인테리어에서도 스포츠카의 특성은 그대로 드러난다. 계기판이 그렇다. 운전석에 앉으면 다섯개의 원으로 구성된 계기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 가장 큰 원은 속도계가 아니다. 엔진 회전수를 보여주는 rpm 게이지다. 속도보다 엔진 상태를 보며 운전하는 스포츠카다운 배치다.

연비, 주행가능거리 등을 알려주는 정보표시창에는 G포스까지 표시된다. 가속, 감속, 코너 등에서 차가 어느 정도의 힘을 견디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줘 재미있다.

센테페시아 방향으로 전진배치된 변속레버 옆으로는 몇 개의 버튼이 나열됐다. 서스펜션의 강도 조절, 선루프 개폐 등을 버튼 한 번 조작으로 마무리한다. 원샷원킬이다. 하나의 버튼으로 모아둘 수도 있지만 빠르게 달리는 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동작 한 번으로 간단하게 조작하는 게 편하다.

911카레라 S 운전석에 올랐다. 포르쉐를 탈 때 명심해야 할 것, 키 박스는 왼쪽에 있다는 사실이다.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911은 사나운 소리를 한 번 내지른다. 헛기침을 내뱉듯 강한 금속성의 카랑카랑한 소리를 한 차례 내지른다. 솔직하게 야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좀 더 조용히, 얌전하게, 부드럽게, 다듬어져가는 요즘의 자동차들과 확연히 다른 차임을 시동거는 첫 순간에 확실하게 드러낸다. “조심해, 난 달라” 라고 말하고 있다. 잘 다뤄야 하는 차다. 긴장을 풀고 어리버리 차를 다루다간 낭패를 피할 수 없다. 품안에 있던 고양이가 손등을 할퀴는 순간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묘한 것은 그런 거친 면에 사람들이 녹아 난다는 사실이다. 다른 차들이 포르쉐 정도의 거친 면을 보이면 “뭐가 이래” 하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상대가 포르쉐라면 다른 반응을 보인다. “역시 이맛이야” 혹은 “그래 포르쉐는 이래야지”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포르쉐 911은 거칠다. 하체는 제법 단단하다는 다른 세단들조차 911에 비하면 물렁거린다는 느낌을 줄만큼 단단하고 도로에서 모래가 튀는 잡소리가 거의 걸러지지 않은 채 실내로 파고든다. 거친 도로의 굴곡은 타이어와 서스펜션을 거쳐 시트에 걸친 엉덩이로 솔직하게 전달된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더 밟아도 차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튀어나가고 엔진 소리는 귀를 자극한다. 다른 차에는 금기인 사항들이 포르쉐 911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친 면들이 드러난다.막무가내식 야성이라고 판단하면 오해다. 오히려 매우 정교하게 계획된, 기술이 뒷받침된 야성이다. 있는 그대로의 거친 야성이 아니라, 독일 기술의 정수가 빚어내는, 한계를 끌어 올리는 야성이다.

911을 탄다는 건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다. 덜 길들여진 거친 야성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다. 시시콜콜 이유를 댈 필요가 없다. 남자들의 로망 포르쉐 아닌가.

신형 911에는 독일 특유의 짠돌이 정신이 있다. 3.8 리터의 가솔린 엔진은 400마력의 힘을 만들어 낸다. 같은 배기량을 얹은 이전 모델보다 15마력을 높인 힘이다. 새로 적용된 열관리 시스템은 엔진과 변속기 냉각을 통제해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이를테면 차를 처음 시동걸어 엔진 냉각이 필요없을 때 냉각수는 서머스탯에서 차단돼 엔진으로 보내지지 않는다. 흔히 회생제동 시스템으로 부르는 제동력을 전기에너지로 저장하는 기능도 갖췄다.

오토스타트 스톱 기능을 911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거친 숨을 토하며 야수의 울부짖는 소리를 만들던 엔진은 차가 멈춤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지해버린다. 숨소리도, 쇳소리 섞인 엔진 작동음도 사라진다. 시끄럽던 실내는 어색한 적막이 덮어버린다. 포르쉐와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조용함이다. 그런데도 포르쉐는 이 기능을 받아들였다.힘 세고 강한 차를 만들지만 그렇다고 연료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성냥 하나도 켜지 않았다던 독일 사람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토스타트 스톱이 포르쉐 마니아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911에 이런 적막은 없었기 때문이다.
직선로에서 바닥까지 가속페달을 밟으면 환상적인 가속이 살아난다. 수평대향 박서엔진이 터질 듯 만들어내는 파워는 순간적으로 0.5G를 터치하는 가속을 실현한다. 시트가 몸을 밀고 나간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차창을 열어 팔을 쭉 뻗으면 날아오를 것만 같은 짜릿한 가속감이다. 시속 100km를 넘어 200km 까지 가뿐하게 속도를 올린다. 박서엔진은 터지기 직전의 심장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지른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택하면 엔진 소리는 한결 더 강해진다. 고회전에 강한 쇼트 스토로크 엔진이어서 속도를 높여도 엔진은 여유있는 반응을 잃지 않는다.

놀라운 건 코너링이다. 경기도 양평과 가평을 잇는 중미산 도로는 와인딩 코스가 이어지는 재미있는 길이다. 그 길에서 911은 드라이빙 성능을 유감없이 뽐냈다. 직선에서의 안정감은 코너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1G에 가까운 횡가속도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감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마치 돌을 실에 매달아 돌리는 것처럼 강한 코너에서 바깥으로 빠지는 몸을 안쪽에서 잡아 당기는 듯한 느낌이다.

코너에 강한 이유중 하나는 포르쉐 토크 벡터링이다. 코너에서 스티어링을 조작하면 안쪽 뒤바퀴를 제동해 바깥쪽으로 구동력을 더 많이 전달한다. 그만큼 안정적인 코너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시승차에는 적용돼지 않았지만 신형 911 카레라 S에는 액티브 롤 억제 시스템도 적용할 수 있다. 유압 실린더를 사용해 코너에서 기울어지는 쪽에서 차체를 들어올려 롤을 억제하는 시스템이다. 가혹한 코너링에서도 차체는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셈이다.

강한 섀시에 토크벡터링 만으로도 911은 환상의 코너링을 구사한다. 매우 공격적인 코너링을 구사해도 진입부터 탈출까지 한치의 미끌림없이 마무리했다. 중력을 거스르며 고난도 동작을 연기하는 체조선수를 닮았다. 최고 수준의 코너링을 맛볼 수 있었다. 여기에 액티브 롤 컨트롤까지 더해지면 체조선수의 만점 연기같은 코너링이 펼쳐지리란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거친 야성을 똘똘 뭉친 것 같은 포르쉐 911은 이처럼 따지고 보면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계산된 야성’으로 무장했다. 고성능 스포츠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단, 적어도 911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간단한 드라이빙 교육 정도는 받아두는 게 좋다. 차의 각 부분의 기능과 작동 방식에 대해 공부를 해두면 더 좋다. 적어도 그런 자세로 포르쉐를 대하는 게 이 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가격은 비싸다. 7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기본 모델이 1억4,700만원이다. 더블클러치, 여기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이나 스포츠 섀시, 가죽인테리어 등 옵션을 더할 때마다 몇백만원씩 가격이 뛴다.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는 소형차 한 대 값인 1,310만원이나 한다. 포르쉐가 내세우는 기술들을 맛보려 옵션을 더하다 보면 가격은 2억을 쉽게 넘긴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팔린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포르쉐 911 정도의 스포츠카에는 비싼 가격 조차도 매력으로 작용하는지 모르겠다.

400마력의 힘을 내는 이 차의 연비는 고속도로 11.4km/L, 도심 8.0km/L, 복합연비는 9.2km/L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윈드실드에 반사되어 어른 거리는 잔상이 거슬린다. 대시보드 위로 윈드스크린까지 자리한 넓은 바닥이 차창에 반사돼 어른거린다. 길게 뻗어내리는 A필러와 윈드실드의 구조상 차창에 반사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면 반사되는 면의 불필요한 굴곡만이라도 정리하면 아른거림은 덜하겠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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