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자동차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행됐다.

자동차 제작사가 결함을 알면서도 은폐하거나 시정하지 않아 소유자등이 생명.신체.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발생한 손해의 5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말도 많던 BMW 화재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마련한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이 개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뿐 아니라 자동차의 결함을 은폐.축소 또는 늑장 리콜시 자동차 제작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이렇게 강화된 법규의 압박 때문일까?

2019년 1월의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중 자동차의 교환 또는 환불 조항, 일명 레몬법 시행이후 2년만에 처음으로 공식 환불절차가 이루어지는 사례가 나왔다고 한다. 2년만에 말이다!

대상차량은 벤츠의 S클래스 2020년식 S350d 4매틱으로 국토교통부 자동차 안전.하자심의위원회는 해당 차량이 ISG(Idle Stop and Go)기능이상으로 하자가 있음을 인정하고 제작사에 교환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국내에서 레몬법 시행이후 지난 1월까지 2년동안 심의위원회에 교환.환불 중재신청된 574건중 심의위원회가 차량 결함을 인정한 사례는 한건도 없었기에 이번 벤츠의 사례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 기사들을 찾아 보던중 2019년 1월~2020년 9월까지 한국교통안전 공단에 중재를 신청한 사례는 모두 528건 이었고 그중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사례는 5%(26건)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5%라니? 요번 벤츠의 경우가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 26건은 심의위원회 중재 진행중에 모두 제조사와 별도의 합의를 통해 개별적으로 교환이나 환불을 받았다는 것으로 결국 심의위원회의가 공식적으로 중대하자를 인정한 사례는 이번 벤츠의 사례가 처음인것이 맞다.

자료출처 신차교환환불 e만족 홈페이지.(www.car.go.kr)

하지만 이번 벤츠의 하자 인정내역이 다른것도 아닌 ISG 기능이상 이라고 하니 갑자기 김이 빠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벤츠에서 발생한 수많은 시동꺼짐등 소비자의 생명에 직접 위협을 줄 수 있는 중대 하자는 다 어디가고 고작 ISG 하자라니.

ISG는 차량의 연비향상 및 정차시의 불필요한 공회전에 의한 배기가스 배출을 막기위해 차량이 정차시 브레이크를 밟으면 시동이 꺼졌다가 출발하기 위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시동이 걸리는 편리한 기능이다. ISG 하자라면 정차를 했는데도 시동이 안꺼지거나 아니면 출발하기위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일텐데 불편하기는 하겠으나 안전상의 문제는 아니라 볼 수 있다.

심의위원회도 ISG 결함이 차량운행의 안전과는 무관하지만 경제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판단했단다. 차량구입시 약속한 연비가 향상되지 않아 소비자가 기름값을 손해봤다는 것이니 대단한 판단이다! 레몬법 무용론이 쏟아져 나오니 심의위원회가 체면치레를 위해 마지못해 한건 처리한 듯 느껴진다.

레몬법은 2017년 일부 개정된 자동차 관리법 내용중 제 5장의 2 자동차의 교환 또는 환불의 조항이 신설된 내용으로 미국의 자동차 레몬법(Lemon law)과 같이 자동차에 하자가 있을 경우 제조사에서 소비자에게 보상(교환.환불)하도록 하는 법이어서 미국과 같은 레몬법이라는 약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레몬법은 일단 미국의 레몬법을 복붙(!) 하듯이 만들기는 했으나 그 실효면에서는 이번 벤츠가 1호 사례임을 보듯이 갈길이 멀고도 멀다.

일단 비사용업 자동차에 한해 차량을 인도한 날로부터 2년내에 교환.환불 중재신청을 해야한다. 또한 교환.환불이 보장되는 서면계약서를 통해 판매된(구입한) 자동차에 한한다. 이게 또 황당한게 계약서에 교환.환불 조항을 넣는 것은 제조사의 선택이며 강제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제했다가는 수입차의 경우 천조국(!)의 압력를 받을까 우려한 것은 아닐는지.

하자의 기준은 더욱 황당하고 모호하게 설정해놨다. 안전 우려 또는 가치가 현저하게 훼손되거나 사용이 곤란한 자동차여야 한단다. 인도 1년이내(2만km 이내), 중대하자 2회, 일반하자 3회 또는 누적 수리기간 30일이 초과된 경우여야 한단다.

우리의 레몬법은 2017년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된 시점부터 그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꼬리를 물고 있다. 까다로운 자동차 교환.환불조건, 입증책임의 전가, 소비자 보호법과 같은 법제가 아닌 자동차 관리법 개정을 통한 레몬법의 도입은 소비자를 돕기위한 것인지 제작사에게 합법적인 면죄부를 주기위한 것인지 혼란스럽기 까지 하다.

레몬법은 품질보증 관련법으로 소비자보호법에 해당하는데 우리의 레몬법은 자동차 행정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법률이라고 볼수 있겠다. 이런 법을 자동차관리법 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시행령과 같이 운영하는 것은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법률본래의 입법취지에도 맞지않는다.

(미국 레몬법을 읽어보시기를 : 미국 캘리포니아주 품질보증법에 대한 특별조항- 캘리포니아 민법 제 1793.22 (b) 조항에 있는 태너 소비자 보호법(the Tanner Consumer Protection Act)

레몬법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도 그 설이 여러 가지다. 미국에서는 레몬이라는 단어가 과일이라는 의미말고도 오래전에는 불친절한(unfriendly) 또는 가치없는 것(worthless thing)이라는 은어로 쓰이기도 했단다.

북미에서는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고장이 잦은차를 레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반대로 성능에 문제가 없고 가격도 저렴한 소위 알짜 차량을 peach(복숭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레몬을 오렌지인지 알고 잘못사서 바꿔달라고 했지만 거절을 당했고 여러번 항의를 해서야 비로소 오렌지로 바꿔줬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차 바꾸는것과 똑같다.)

현대자동차는 오래전에는 차량의 하자로 인한 환불.교환 여부를 해당 차량을 판매한 지점장이 판단하고 결정해서 처리하곤 했었다. 아무리 정비부문의 조언을 참고한다고 하지만 엔지니어도 아닌 지점장이 결정을 하라니 결국 알아서 바꿔주지 말고 몸으로 떼우라는 이야기가 아니었겠는가.

교환.환불해 주자는 지점장은 역적이 되고 어떻게 해서든 차량을 바꿔주지 않고 버텨서 처리한 지점장은 영웅이 되는 상황이었으니 소비자들의 불만이 어땠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요즘은 동일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고객이 직영정비사업소에 차량을 입고 시키고 점검한 정비담당자가 차량교체 보고서를 작성해 본사로 보내 승인을 받아 처리하고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교체나 환불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현대차가 그렇게 욕을 먹고 있겠는가?

다행인지 요즘은 힘들게 찾아가서 드러눕지 않아도 SNS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SNS는 언론에도 널리 알릴수 있으니 공개적으로 제작사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으려나.

불량자동차를 구입해 위협받고 고통받는 소비자들을 위해 레몬법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소비자가 보호받는 법이 되기위해서는 자동차관리법이 아닌 자동차 교환.환불법(가칭)을 입법해야할 일이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