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스타렉스 4세대(?) 모델인 ‘스타리아’ 사전계약을 개시했다. 신차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 사전계약 첫날 계약대수가 1만대를 넘어(1만 1,003대) 기존 아반떼, 투싼의 기록을 돌파했다.

스타리아를 스타렉스의 4세대 후속모델이라 소개했지만 사실 1세대는 1986년 처음 나온 그레이스(AH)로 보는게 맞겠다. AH를 제외하고 스타렉스의 계보를 따지자면 1997년 나온 A1, 2007년에 나온 TQ(그랜드 스타랙스)에 이어 스타리아(US4)로 세대 구분을 할 수 있겠다.

세대를 초월해 오랜동안 판매되는 차종을 사골차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주로 상용차에 많다. 폭스바겐의 전설적인 미니밴인 트랜스포터가 대표적이다. (마이크로 버스라 불린 T시리즈의 T1~T2로 1950년~2013년 63년간 판매!)

현대자동차에서 사골에 해당하는 차가 스타렉스라고 할수 있다. 스타렉스는 1997년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한 후륜구동 1.5박스 타입의 다목적 차량이다. 차체형태가 버스에 가까운 원박스카인 그레이스에 비해 보닛이 앞으로 나와 승용감각을 지닌 새로운 스타일의 스타렉스는 주로 영업용 승합차로 분류되던 그레이스와는 다른 고급 RV형 승합차임을 내세워 영업용시장과 레저시장 양쪽 모두 공략을 목적으로 탄생했다.

외환위기로 IMF의 관리체제 기간이었던 1997년부터 2001년 사이 국내시장은 미니밴의 춘추전국 시대였다. 1998년부터 카니발, 카렌스, 카스타, 레조등 승용 미니밴이 연이어서 출시되면서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현대자동차도 유럽 진출을 염두에 두고 그랜저 XG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고급 유럽형 MPV로 트라제 XG를 개발했다. 그 트라제 XG의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이야기를 이제야 해보자.

1999년 10월 출시를 앞두고 정신없이 발매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제가 터졌다. 차량은 초기 개발 단계부터 생산공장에 맞춰 설비를 준비하고 시험용차를 라인에 흘려가면서 점검하고 수정한다. 새로 만든 총을 영점조정을 해서 정확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현대차의 풍운아 트라제XG.

트라제 XG는 개발단계부터 아산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모든 것이 아산공장에 맞춰 준비되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는 과정중 갑자기 생산공장을 울산으로 바꿨다. 회사 창립때부터 근무했던 반장급들도 양산준비를 하는 도중에 생산공장을 바꾸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고 황당해 했다.

문제는 초기 여러 용도에 쓰일 시험차들은 일정상 아산공장에서 만들고 실제 양산을 위한 시험차는 울산공장에서 만들어야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해외광고등을 위한 촬영용 차를 일찍 받아야 하는데 아산공장에서는 울산으로 공장을 옮길것이니 촬영차도 울산가서 만들어 달라고 하라는 것이었다. 수없는 회의와 협의 끝에 간신히 일부 용도차는 아산공장에서 생산해 먼저 받고 나머지는 울산에서 받는 것으로 거의 누더기 같은 일정이 마련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0월, 트라제 XG는 에쿠스를 능가하는 각종 첨단 편의장비를 대거적용하고 그랜저 XG의 스티어링 휠까지 그대로 적용하는등 고급차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시장의 관심을 받으며 등장했다.

이런 관심에 힘입어 계약개시 첫날에만 1만 5,342대의 계약을 기록했다. 계약 첫날 1만대 계약달성은 지금도 대단한 기록인데 20년 전에, 그것도 IMF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경이적인 기록이었다.

기쁨도 잠시, 차량이 출고되면서 트라제 XG의 흑역사도 시작되었다. 주력 엔진인 2.7리터 V6 LPG 엔진에 적용된 점화코일 불량으로 운행중에 엔진이 부조하고 시동이 꺼지는 사태가 발생해 소비자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부랴부랴 점화코일 업체를 바꾸고 리콜을 했지만 국내자동차를 통틀어서 공식/비공식적으로 리콜을 가장 많이한 자동차가 되었다. 점화코일 뿐 아니라 각종 전자장비의 결함, 오작동, LPG 연료의 누출, 써스펜션 문제로 인한 승차감 문제, 심각한 차체부식 등 트라제는 종합병원이 되어버렸다. 자동차가 이렇게도 종합적으로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그 와중에 소비자의 민원으로 감사원의 감사까지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소비자가 자신이 필요한 옵션만 단품으로 선택하지 못하게 해서 소비자 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민원을 제기해 감사원에서 감사가 나온 것이었다. 감사원이 국민의 자동차 구입에도 관심을 가진다는걸 그때 알았다! 결국 패키지로 묶인 옵션을 풀어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생산할 수 있게 조치하기도 했다.

그 난리를 치루면서도 처음에는 판매가 잘 되었지만 그 다음해인 2000년 6월, 파격적인 디자인의 SUV 싼타페 LPG가 출시되면서 트라제 LPG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사내에서는 싼타페에 치이고 외부적으로는 카니발, 카렌스에 뜯기는 등 트라제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시간이 흘러 2007년부터 국내 자동차의 안전도 평가프로그램인 K-NCAP에 ‘보행자
보호 평가‘가 추가 되는등 안전법규가 강화되어 현대자동차도 차종별로 강화된 법규에 대응준비를 해야했다.

스타렉스는 유럽의 세미보닛 밴들과 같은 디자인으로 풀모델 체인지를 하면서 ‘그랜드 스타렉스’라고 이름도 바꿨다. 트라제 XG도 법규대응을 위해서는 적지않은 투자비를 들여 제품을 개선해야 했다. 하지만 제품 이미지, 카니발과의 경쟁관계, 스타렉스 수요층과의 관계, 투자, 생산공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규에 대응하지 않고 내수는 2007년, 유럽은 2008년에 단종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7년이라는 짧은 제품주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 가장 큰 걸림돌은 생산할 공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아의 카니발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했다.

트라제는 비록 문제 덩어리에 말도 많은 차였지만 매력도 많았다. 특히 국내에서는 카니발과 많이 비교되었는데, 북미형으로 설계된 카니발이 2열 슬라이딩 도어를 적용한 반면, 트라제 XG는 유럽형 MPV로 스윙도어를 적용했다.

또한 한국의 실정에 가장 적합한 미니밴으로 전장, 전폭 등이 가장 적당했다고 한다. 카니발은 너무 크고 카렌스, 레조등은 너무 작고, SUV는 시트 패키지가 단순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속을 썩인 차가 중고시장에서는 인기가 많은 차가되어 한때 중고시장 거래량 순위에서 순위권에 들기도 했고 꾸준히 중고차 오너들이 모여 동호회 활동도 차량의 연식에 비해 매우 활성화 되기도 했다.

스타리아가 일반모델인 투어러, 밴 모델인 카고에 기아 카니발을 겨냥했다는 라운지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다고 하는데 과연 트라제 XG같은 승용 미니밴의 이미지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스타리아가 카니발에 비해 취약한 스타렉스의 승용 미니밴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아니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생겼으니 널찍하고 평평한 플로어를 활용한 트라제 전기차를 기대해 보는게 빠르려나? 전기차는 점화플러그도 필요 없으니 말이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