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전 중이던 현대자동차 코나 전기차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여 이슈가 되고 있다. BMW의 화재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이후 BMW의 520d를 중심으로 발생한 화재는 엄청난 사회적 관심을 받았고 또 제작사의 대응 태도 등에 대해 소비자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도대체 차를 제대로 만드는지 확인도 안 하고 판매하도록 허가를 내줬다는 말인가? 하고 흥분하는 분도 있을 수 있지만 설마 사람의 생명을 맡기는 자동차를 만드는데 그렇게 허술하게 놔두기야 하겠는가?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 개시하는 단계에는 인증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인증이라고 하고 그 절차나 방식은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세계 각국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인증제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형식승인’이다. 제작된 자동차를 판매개시 하기 전에 국가가 사전확인을 하는 제도로 EU, 일본 등에서 채택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자기인증’이다. 이는 제작자의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제작. 판매하고, 정부가 사후에 안전기준 적합 여부를 확인하여 부적합하면 시정(리콜)하는 방식이다. 바로 우리나라와 미국, 캐나다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어느 제도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도 2003년 이전까지는 EU, 일본 등에서 운영하는 ‘형식승인’ 인증제도를 채택해왔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소득증가로 자동차 판매가 급증했고 그 당시 일본과 통상마찰을 겪고 있던 미국이 한국에도 자동차 시장 개방 확대를 요구해 수입차의 특소세, 등록세, 관세 등이 인하되던 시기였다. 미국의 또 다른 요구가 ‘자기인증’ 제도였다.

국내 제작사들 역시 신차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형식승인에 소요되는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제작사의 자율성 보장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작자 자기인증’제도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결국, 그 당시 통상산업부는 1995년, ‘자동차 형식승인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1998년 10월 ‘한·미 자동차 협상’ 시 2002년 말까지 자기인증 제도 도입 시기를 합의, 결국 2003년 1월부터 우리나라는 기존의 ‘형식승인’ 제도를 ‘자기인증’제도로 바꾸게 된다. 미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앞서 언급한 데로 ‘자기인증’제도는 정부가 사후에 안전기준 적합 여부를 확인하여 부적합하면 시정(리콜)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제작사에 자율을 주되 엄격한 사후관리를 전제로 한다. 자기인증제의 표본인 미국은 제조자나 판매자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되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또한 엄격하게 묻는다는 점을 제도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03년 ‘자기인증제’를 도입하면서 제작·수입사의 자료 제출 의무를 강화하고 안전기준을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사후 관리책을 마련했지만 17년여간 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보면 현재 정부의 대책이 과연 자기인증제를 도입할 당시 고려한 관리·감독 계획으로 충분한지 살펴볼 일이다.

2014년, 미 법무부는 2009년 토요타 자동차의 렉서스 차량에서 발생한 급발진 사고에 대해 차량 결함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사가 급발진을 부정하고 소비자들을 기만했다는 이유로 자동차업체 역사상 최고 벌금인 12억 달러, 한화로 1조 3천억 원을 판결했다. 이미 그 이전에 도요타는 이 문제로 1,000만대를 리콜 했다.
또, 폭스바겐은 그 유명한 디젤게이트로 인해 미국에서 48만대 이상의 대규모 리콜과 함께 최대 180억 달러, 한화로 21조 4,000억 원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보다 보니 미국 차는 없고 남의 나라 차들이네!)

형식승인, 인증 이야기하다 보니 기억나는 일이 있다. 사원 시절 중대형 차량 상품기획을 담당했고 차종은 스텔라, 쏘나타, 그랜저였다. 차종마다 할 이야기도 많지만 그랜저, 특히 1989년 출시한 V6 3.0 모델은 그야말로 처음 보는 첨단 장비도 많아 공부할 것도 챙길 것도 많았다. 특히 6기통 엔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그랜저 V6 3.0은 86년 출시한 2.0 모델과 라디에이터 그릴, 투톤 보디컬러 등으로 차별화하고 편의 장비도 대폭 적용되었다. 국산차 최초로 적용한 ABS 브레이크, 차고 조절이 가능한 에어서스펜션 방식의 ECS는 3.0 모델의 장점을 더해주는 첨단 장비였다.

그 당시 신차를 판매하기 위해 형식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울산 연구소의 인증주관팀에서 형식승인 서류에 들어갈 데이터를 만들어 보내주면 본사 상품 팀의 담당자가 정부의 형식승인 양식을 채워 교통부를 담당하는 대정부 담당자에게 주고 교통부의 자동차 관리과에 제출하여 검토를 거쳐 승인이 나는 절차였다.

서류를 준비해주고 교육자료 제작 등 다른 업무에 정신이 없는데 교통부에 들어갔던 대정부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통부 형식승인 담당자가 찾으니 빨리 뛰어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교통부는 서울역 뒤 서부역 인근에 있었다. 선배들은 서류에 문제가 생겨 형식승인이 늦어져 판매개시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닌지 걱정이 많았다. 헐떡거리며 교통부 자동차 관리과에 들어서니 담당자가 물어왔다.

“자동차 브레이크에 ‘ABS’라는 형식이 어디 있소? 빨리 수정해 오도록 하시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