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듯 복잡한 머리를 튼튼한 헬멧 안으로 구겨 넣었다. 큰 얼굴에 가해지는 강한 압박감. 헬멧을 쓰고 있는 한, 어쨌든 머리 터질 일은 없겠다. 라이딩 재킷을 걸쳐 입고 글로브를 꼈다.

바이크에 오르기 전엔 이처럼 거쳐야할 과정이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내 몸을 보호해야할 라이딩 기어를 착용하는 것. 절대 건너뛰어서는 안 될 경건한 의식이다.

파트너는 F800 GT. 수랭식 798cc 4스트로크 2기통 엔진을 얹어 89마력의 힘을 내는 투어러다. 이 모델을 택한 건, 적당한 시트 높이 때문이다. 시튼 높이가 800mm로 서 있을 때 다리로 지탱할 수 있다. 초보 라이더를 겨우 면한 처지에 높은 바이크는 아무래도 부담이 크다.

만사 제치고 인제로 달려간 건, 첫 경험을 위해서다. 첫 경험은 언제나 설렌다. 바이크를 타고 서킷을 달려본 적이 없다. 전에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 행여 넘어지면 다치는 건 둘째 치고 이런 망신이 없을 텐데. 그래도 첫 경험을 원하는 욕심이 더 컸다.

네 바퀴 자동차로는 수없이 경험했던 인제 스피디움. 두 바퀴에 몸을 맡기니 무서웠다. 대열의 제일 뒤로 슬쩍 자리 잡았다. 길을 막는 존재이긴 싫었기 때문이고, 정 안되면 도망칠 요량이었다.

안 그래도 살짝 더운 날씨, 삐질 대며 땀이 흐르고, 입이 바짝 마른다.

출발.

기어를 넣고, 스로틀을 당겼다. 하늘을 보며 기어오르다 뚝 떨어지는 인제스피디움의 고저차, 수시로 나타나는 코너.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코스지만 바이크에겐 더 가혹한 길이었다.

n 형태로 이어지는 헤어핀에선 속도를 바짝 낮춰 설설 기어야 했다. 속도를 올릴만하면 나타나는 코너 앞에서 변속은 거칠었다. 깨질 듯 치솟는 rpm. 3단 이상을 쓸 수 없었다. 서너 번 코너를 돌아나가는 동안 앞서 달리는 이들은 점점 더 멀어진다.

두 세 바퀴를 도는 동안 조금씩 겁이 없어졌다. 코너에서 살짝 몸을 누여보고, 속도도 조금 더 올려본다. 가끔은 아뿔싸, 제동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몇 차례 지나가며 바이크와 서킷에 조금씩 몸이 적응을 해 간다.

괜찮아, 조금 더. 조금 더. 어금니 깨물고 최면을 걸며 속도를 올려갔다. 앞 차와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지만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졌다. 겁쟁이를 벗어났다.

2단으로 강하게, 혹은 3단으로 부드럽게 코너를 건너고, 직선로에선 4단 이상으로도 올려본다. 재미있다. 터질듯한 머리 속의 온갖 고민과 잡생각은 사라졌다. 바이크와 드라이버, 트랙 3위 일체의 몰아지경, 까지는 아니지만 그 근처까지는 달려간 것 같다. 오직 달릴 뿐. 아무 생각이 없다.

서너 바퀴를 돌고 나서야 계기판의 속도와 rpm, 기어단 수 등이 눈에 들어온다. 어깨와 팔의 긴장도 많이 풀렸다. 코너에서 움직임도 훨씬 부드럽고 빨라졌다. 그래봐야 큰 차이 없지만 기어 변속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달리는 재미가 차곡차곡 쌓였다. 코너에서 조금 더 빠르게 달려보고 싶은데, 시간이 다 됐다. 1시간 가까이 서킷을 달렸을 뿐인데, 한 1년 쯤 탄 것처럼 일취월장 했다고 스스로 칭찬해 준다. 잘 했어. 넘어지지 않은 게 어디야. 끝까지 달린 게 어디야.

세상의 온갖 잡념과 걱정으로 꽉 차있던 머리 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갰다. 단단한 헬멧과 스쳐지나간 바람들이 머리 속을 깔끔하게 정돈해 냈다. 2017 BMW 모터라드데이에 바이크 타고 서킷 주행 첫 경험은 그렇게 끝났다.

정작, 영종도에 있는 BMW 드라이빙센터에선 아직 바이크를 탈 수 없다. 이제 곧 그 제한이 풀릴 전망이다. 기회가 된다면 바이크 타고 서킷 주행 2차 도전에 나서보자. 그나저나 바이크는 고속도로를 달릴 수 없는데, 영종도까지는 천상 뱃길을 이용해야 하는 건 함정.

서킷 주행을 마치고 두세 시간 지났을까. 등짝에 스멀거리는 기운이 있어 손을 넣었더니, 큼지막한 나방이 나온다. 라이딩 재킷의 목 틈새를 파고들어 몸 안으로 기어들어간 녀석이다. 첫 경험의 파트너였으니 죽이지는 않는 걸로…….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