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의 시대를 지나, 너나없이 미친 듯 전기차로 달려가는 시대지만 혼다는 이를 거슬러, 신형 파일럿에 6기통 엔진을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물론 혼다가 수소차를 만들고 소니와 함께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동네에서 모르는 이는 없다. 물밑으로 경천동지할 ‘물건’을 준비하고 있으나, 우직스러운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처신하는 행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막 국내 판매를 시작한 파일럿을 만났다.

근육을 잘 다듬은 모습. 부드럽고 매끈하게, 하지만 맺고 끊음이 분명한 선이, 살아있다. 육각으로 정리한 리어램프는 인테리어의 송풍구와 맞닿는다. 힘 있는 모습, 잘 정돈했다.

인테리어는 그대로인 듯 새롭다. 2+3+3, 8인승으로 구성한 실내는 충분히 넓다. 2열 시트를 영리하게 구성했다. 세 개의 시트를 4:2:4 비율로 배치했고 가운데 시트를 아예 들어낼 수도 있다. 2열을 좌우 분리된 캡틴 시트로 연출하는 것. 이때 떼어낸 가운데 시트는 트렁크 하단 수납공간에 넣어둘 수 있다. 2열 시트는 앞뒤 슬라이딩, 등받이 각도 조절이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열선 시트까지 적용되어 있어 쇼퍼드리븐 카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쓰임새 많은 SUV다.

이전 대비 85mm가 길어졌다니 공간이 아쉬울 일은 없겠다. 길이 5,090mm, 너비 1,995mm, 높이 1,805mm에 휠베이스가 2,890mm다. 도로에 나서면 한 개 차선이 꽉 차는 느낌이다. 3열 공간도 앞뒤로는 좁지 않다. 다만 좌우로 셋이 앉기에 조금 빠듯해 보인다.

트렁크의 확정성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오토 캠핑, 차박 바람이 불면서 더 그렇다. 신형 파일럿의 트렁크 기본 용량은 527L다. 3열 시트를 접으면 1,373L, 2열 시트까지 접으면 2,464L까지 확장된다. 두 사람이 누워 자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은 이전 대비 향상된 15W 성능으로 충전 속도가 약 3배 정도 빨라졌다. 또한 on/off 버튼이 있어 끌 수도 있다. 2열 센터 콘솔 하단, 3열 양측에 C 타입 충전 포트 등 총 6개의 충전 포트로 전 좌석에서 고속 충전이 가능하다. 컵홀더는 14개나 있다. 어디서나 손을 뻗으면 최소 두 개 이상의 컵홀더를 만나게 된다.

다운사이징과는 거리가 먼 파워트레인. V6 3.5L 직분사 DOHC i-VTEC 엔진이다. 전체 알루미늄 구조의 최신 엔진으로 최고출력 289마력, 최대토크 36.2kg.m의 힘을 가졌다. 10단 자동변속기가 그 힘을 더 효과적으로 쓰게 한다. 10단이면 다단변속기의 최고봉이다. 낮은 회전수로 최고 수준의 효율을 보이고, 회전수를 끌어올려 강력한 성능을 드러낸다. 10단 변속기는 양수겸장의 카드다.

3.5리터 6기통 엔진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달리는 반응은 짜릿하다. SUV여서 노면 굴곡을 따라 살짝 흔들리는 움직임을 숨길 수 없지만 불안할 정도는 아니다. 사륜구동 시스템이 주행 안정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속도를 높여 급하게 몰아붙여도 거뜬하게 따라준다. 위급상황에서 강한 코너링 혹은 거친 조향으로 다그쳐도 화내거나 주저앉는 법 없이 끈기 있게 따라온다.

구동 시스템은 2세대 i-VTM4 AWD 시스템이다. 상시 사륜구동이다. 흙길, 빗길, 눈길 등 다양한 오프로드 주행 상황에서 후륜에 최대 70%의 동력을 전달한다. 한발 더 나아가 좌우 한쪽 축으로 힘을 완전히 보내는 ‘트루 토크 벡터링’을 구현한다니, 풀타임 사륜구동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밟을 때 드러나는 엔진의 거친 숨소리는 매력이 있다. 으르렁거리는 단계를 넘었지만, 그렇다고 포효하는 것은 아닌, 힘찬 호흡이다. 대배기량 엔진의 여유 있고 확실한 힘을 느끼게 되는 소리다.

4인치 크기에 구현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두고, 차근차근 속도를 올리면 제법 짜릿하고 다이내믹한 주행 질감을 만나게 된다.

주행 상황에 따라 여닫는 셔터 그릴을 적용했다. 이는 공기저항과 엔진룸 열관리에 효과적이다. 가변 실린더 제어 시스템은 정속 주행할 때 엔진의 일부 실린더를 작동하지 않게 해 효율을 끌어올린다.

주행 모드는 모두 7개다. 스포츠, 노멀, 에코 3개는 온로드용, 스노우는 미끄러운 길, 트레일과 샌드는 오프로드용이고, 토우는 견인할 때 사용한다.

주행보조 시스템인 혼다 센싱은 이전보다 훨씬 더 완성도를 높였다. 트래픽 잼 어시스트와 저속 브레이크 컨트롤까지 추가했다. 90도 시야각의 광각 카메라와 120도 광각 레이더를 새롭게 탑재해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ACC),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LKAS),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CMBS), 도로 이탈 경감 시스템(RDM), 후측방 경보 시스템(BSI)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도 스스로 조향과 가감속을 해낸다. 운전에 개입하는 수준이 초보 운전자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다. 하지만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선 안 된다. 운전의 최종책임이 아직 운전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에어백은 8개를 배치했다. 전면 에어백은 야구 글러브 모양으로 만들었다. 몸을 튕겨내는 에어백이 아니라 받아주는 에어 글로브인 것. 2열 사이드 에어백도 용량을 키워 더 넓게 탑승객을 보호한다.

12개의 스피커로 구성한 BOSE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은 높은 수준의 음질로 실내를 꽉 채운다. 실내가 조용한 편이라 오디오의 음질이 더 잘 느껴진다. 속도가 높아져 바람 소리가 커질 때 실내로 파고드는 잡음을 덮어버리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NC)이 적용되어 있다.

공인복합 연비는 8.4km/L다. 배기량이 크고, 공차중량 2,130kg으로 덩치가 있다 보니 연비가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올 뉴 파일럿은 저공해차 3종으로 인증을 마쳤다. 공영 주차장 주차요금 50% 할인, 전국 공항 주차장 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혼다는 오래 묵을수록 진가를 드러내는 브랜드다. 고장으로 속 썩이는 일이 많지 않아서다. 간과하기 쉽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혼다코리아는 신형 파일럿의 판매가격을 6,940만원으로 정했다. 7,000만원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제 시장의 반응을 볼 차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내비게이션이 없다.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이용해야 한다. 아차 하고 핸드폰을 두고 나온 날, 곤란할 수 있다. 낭패일 수 있다. 안드로이드 폰은 유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애플 카플레이는 무선 연결이 가능한데 안드로이드는 무선 연결이 안 된다. 유선 연결은 아무래도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