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 랩터를 시승했다.

크고 높다. 한 개 차선을 꽉 채우고 도로를 내려다본다. 5,380×2,030×1,920mm 크기에 휠베이스는 3,270mm다. 대단한 덩치지만 미국의 픽업 크기로는 중형 정도다.

픽업트럭, 즉 화물차인데 더블캡으로 5인승이다. 셋이 앉을 수 있는 제대로 된 2열 시트가 있다. 픽업을 승용차처럼, 그러니까 보통의 SUV처럼 사용할 수 있다. 화물차여서 자동차 세금은 2만 8,500원. 대신 3차선 이상 도로에서 1차선 주행은 안된다. 무심코 1차선 주행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조심해야 한다.

레인저에는 와일드 트랙과 랩터, 두 개 트림이 있다. 와일드트랙에는 포드 엠블럼이 얌전하게, 랩터에는 FORD 네 글자가 크게 쓰여있다. 랩터가 와일드보다 더 와일드하게 보인다. 랩터에는 와일드트랙에 없는 게 몇 개 있다. 패들 시프트, 폭스 쇼크업소버, 바하 모드 등이다. 와일드트랙에는 랩터에 없는 트레일러 스웨이바와 트레일러 토우 패키지가 있다. 와일드트랙은 6,350만원, 랩터는 7,990만원이다.

고강도 프레임에 2.0L 바이터보 디젤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를 올렸다. 최고출력은 210마력이다. 힘을 볼 때 엔진 출력과 함께 봐야 할 게 무게다. 공차중량 2,480kg이니 마력당 무게는 11.8kg으로 10kg를 훌쩍 넘는다. 시속 100km를 끊는데 12초 전후를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화물차답게 천천히 움직이면 된다.

숫자만으로 보면 차는 무겁고 엔진 배기량은 적어서 힘이 충분하지 않다.

몇 개의 보완 장치가 있다. 10단 변속기, 디젤 엔진의 저속 토크 등이다. 낮은 rpm에서 좀 더 강한 힘, 고속에서 더 좋은 효율을 보이는 10단 변속기 덕에 배기량이 2.0에 불과한 엔진이 이 큰 덩치를 무리 없이 끌고 달릴 수 있다. 엔진보다 변속기가 더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디젤 엔진의 특징이기도 한 저속 토크도 한몫하고 있다. 1,750~2,000rpm 구간에서 나오는 최대 토크 51.0kgm의 힘이 인상적이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높다. 노멀모드에서 시속 100km 정속주행을 하면 변속기는 9단, rpm은 1,700 정도를 보인다. 속도를 유지하며 수동 변속으로 낮추면 4단까지 낮아지는데 rpm은 4,200까지 높아진다. 차체 무게에 비해 엔진 배기량은 낮은 편이어서 엔진 회전수를 조금 더 끌어올려야 시속 100km를 커버할 수 있었다.

숫자만 보면 조금 걱정스러운데 실제 움직임은 괜찮았다. 힘 있게 치고 달리는 반응은 아니지만 꾸준히 속도를 높여 충분히 빠른 속도까지 올라간다.

차체가 높아서 노면 충격은 어느 정도 들어오고 차체의 흔들림도 느껴진다. 대신 눈이 호강한다. 도로를 내려다보는 맛, 멀리 보이는 시야가 만족스럽다.

모두 7개의 주행모드가 있는데 온로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노멀, 스포츠에 눈비 올 때 선택할 수 있는 ‘슬리퍼리’ 정도다. 나머지 4개 모드가 오프로드용이다. 고속 오프로드인 바하, 록 크롤, 샌드, 머드 모드가 준비되어 있다. 주행 상황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선택할 게 또 있다. 구동모드다. 2H, 4A, 4H, 4L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포장도로에서는 2H가 좋겠다. 포장도로지만 상태가 좋지 않다면 4A, 오프로드에서는 4H, 4L 중에서 택하면 된다. 4L을 선택하려면 차를 멈추고 기어 중립 상태에서 4L로 옮긴 뒤 움직이면 된다. 나머지는 움직이면서 구동 변환이 가능하다.

여기에 리어 디퍼렌션 락 기능이 있다. 뒤 차축 좌우 구동력을 일체화시켜 험로 탈출을 쉽게 해주는 기능이다.

주행모드와 구동모드를 하나하나 운전자가 선택해서 움직이는 게 이 차를 타는 맛이다. 이 차를 제대로 타려면 그 기능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랩터의 인테리어는 빨간 포인트를 곳곳에 배치해 힘을 주고 있다. 12인치 대형 모니터를 센터패시아에 세로로 배치했고 뱅앤올룹슨 오디오를 적용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픽업트럭이지만 보통의 SUV보다 더 고급이다.
스티어링 휠 가운데 빨간 선을 넣는 센스도 눈에 띈다. 스티어링휠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줘 운전하는 재미를 살리는 요소가 된다.

주행보조 시스템은 이 차가 화물차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충분하게 적용했다. 액티브 파크 어시스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링 시스템및 전방 감지 시스템이 장착된 360도 카메라 등이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차간거리와 차선 유지를 충실히 해내고 있어 운전자가 잠깐 한눈을 파는 정도는 커버해준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 차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동차의 안전 책임은 여전히 운전자 몫이다.

공인복합 연비는 9.0km/L. 파주-서울 55km를 달리며 살펴본 연비는 12.5km/L였다. 10단 변속기가 디젤 엔진의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2.0 엔진으로 2,480kg을 끌고 달리는데 이 정도 연비를 보이는 건 칭찬받아 마땅한 결과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작은 엔진에 큰 몸. 우리가 생각하는 아메리칸 픽업트럭의 호쾌한 주행과는 거리가 멀다. 2.0 디젤 엔진의 한게계다. 포드 픽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눈높이와는 어긋나는 부분이다. 미국산 픽업으로 정면승부를 걸었으면 어땠을까?
음성명령 시스템은 제한적이다. 음성으로 목적지 설정도 안 된다. 픽업트럭에 음성명령 기능이 있는게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8,000만원을 호가하는 수입차라면 얘기는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