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41] 전기차냐 하이브리드냐

오랜만에 회사 선배를 만나 막걸릿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이번에 차 바꾸려면 전기차로 하는 게 맞지?” 하고 선배가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작년만 되었어도 “아 당연한 말이죠. 이제 차를 바꾸면 몇 번이나 바꾸겠어요. 당연히 전기차로 가야죠”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한 전기차의 성장곡선이 예상보다 완만해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시장에서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물론 전기차 국가지원금이 남아도니 뭐니 해도 아직은 전기차를 출고하려면 차종에 따라 대기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차도 그동안 전기차의 출고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 이탈하는 고객들이 많다 보니 직원들의 전기차 구매를 만류하는 처지였다. 아직도 퇴직 직원에 대해서는 전기차 구매를 허용하지 않고 있고 말이다.

작년 기아의 노사협의에서 사측이 현재의 ‘평생 사원’ 제도를 손봐서 퇴직 직원에게 평생이 아닌 ‘75세까지 25%’로 할인하는 축소안을 제시했다가 협상이 결렬되는 난리를 치르면서 결국은 2025년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무마시켰었다. 현대차 노조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올해 단체협약 요구안에 ‘평생사원증’ 발급 대상을 25년 이상 근속직원이 아닌 모든 정년 퇴직자로 확대해 달라는 내용을 포함해서 난항이 예상되지만 말이다.

전기차 사는 이야기 하다가 왜 ‘평생 사원’ 제도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전기차의 급성장 속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전기차 충전설비의 부족, 아직도 부족한 주행거리, 배터리 생산을 위한 소재 물질의 공급 문제, 전기차용 반도체의 공급 문제, 탄소 제로화에 전기차의 기여도가 예상보다 낮은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러시아발 유럽 에너지 대란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유럽연합이 내세웠던 탈탄소화와 그 수단이었던 친환경 자동차로의 전환, 즉 기존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도 있지만 제작사마다 전기차 전환에 대한 철학도 다르다. 토요타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작년 말 세계 최대의 자동차기업 토요타의 아키오 최고경영자(CEO)가 전기차가 미래 자동차 업계의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기차도 자동차시장의 일종의 트렌드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전기차가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안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제작사들이 전기차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아키오 CEO의 발언과 관련해 자동차 업계에서 전기차 전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배터리 생산을 위한 원자재 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기차 전환이 예상보다 느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2030년을 기준으로 순수 전기차의 비중 목표를 절반 이상으로 잡아 왔으나 현실적으로 전기차의 판매량 점유율은 2030년까지 30% 정도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현재 10% 수준이니 그래도 3배지만)

심지어 토요타가 새로운 4기통 엔진 생산을 위해 미국 내 공장에 3억 8,300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신규 엔진은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순수 내연기관 모델에도 사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제작사들은 더 이상의 내연기관 개발은커녕 조기 단종계획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는데 이런 토요타의 행동은 ‘역주행’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물론 완전한 내연기관의 단종을 선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2017년 토요타가 선언한 ‘내연기관 제로’ 선언과도 조금 동떨어진 느낌도 든다.

이렇게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인 토요타의 행보를 두고 일부에서는 자동차 시장에서의 ‘토요타의 패착’이라는 말까지 있었지만, 전기차의 성장이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현재 상황을 보고도 과연 토요타의 실패라고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이었다고 하지만 요즘 전기차 하면 화두로 떠오르는 ‘전고체배터리’를 토요타는 1990년대부터 연구하기 시작해 배터리의 구조부터 재료, 제조공정까지 다양한 분야의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2위인 파나소닉의 3배 이상인 1,300여 건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내연기관을 기본으로 성장해온 메이커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기존 내연기관을 활용한 차량(하이브리드, e-fuel등)으로 채울 것이고 전기차를 기본으로 성장해온 테슬라, BYD, 샤오펑(X-peng)등은 더욱 성능이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전기차를 만들어서 기존 내연기관 업체와 경쟁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전기차 생산비의 절감에 가장 큰 장벽은 원자재 공급난으로 인한 배터리 팩의 가격상승이다. 배터리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팩의 가격은 수산화 리튬, 탄산리튬, 황산 코발트와 황산니켈의 가격이 오르면서 25% 이상 상승했다.

전기차 전문업체로써 많은 장점과 노하우를 가진 테슬라, BYD, 샤오펑(X-peng)이 이렇게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하여도 경쟁력 있는 가격의 전기차를 지속해 내놓을 수 있을까?

최근 ‘4천만 원대 테슬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가 급상승하는 모델Y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하고 있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100% 보조금 혜택을 받는 전기차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5, 6, 기아의 EV6 등으로 제한적이었고 테슬라를 비롯한 수입 전기차는 가격대가 높아 국고보조금을 전액 받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테슬라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가던 모델Y에 중국 CATL이 만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하면서 출고가격을 5,699만 원으로 설정함으로써 국내 보조금도 100% 지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올 초 환경부는 보조금 전액 지급 차량의 기본가격을 5,500만 원에서 5,7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물론 지난 17일 환경부에서는 테슬라의 전기차 보조금 수준과 지급 여부가 결정된 건 아니라고 발표했고 업계에서는 모델Y가 최대 지원 가능 금액인 680만 원은 다 받지 못하고 최대 520만 원 정도일 것으로 전망하기도 해 구매 희망자들의 볼멘소리를 듣기도 있기도 하다.

어쨌든 비록 이번 내놓는 모델Y가 4륜→후륜, 리튬이온→리튬인산철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7,000만 원대에서 5,000만 원대로 2,000만 원 가까이 가격을 인하한 것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도 남는 것은 사실이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에서 전기차를 충전 스트레스 없이 이용하려면 소위 말하는 ‘집밥’을 먹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전체 주택 중 단독주택의 비율이 30%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모든 단독주택이 집안에 충전시설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니고. 나머지 70%는 아파트, 연립 등 공동주택에 거주한다는 것인데 이곳에 충분한 충전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전기료가 올라 충전 비용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집밥을 먹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면 전기차를 권하고 싶지 않아요” 하던 전기차 사용자의 말이 떠오른다. 전기차의 생산 문제도 있었겠지만, 작년 하이브리드차의 판매량이 전기차의 2배 이상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차가 2배 이상 판매되는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전기차는 퇴직 직원 할인도 안 되고 선배님 집도 아파트니, 이번엔 하이브리드차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