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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넘어라”

EQ900에게 내려진 특명. 단단함을 잃지 않고, 부드럽게, 잘. 과속방치턱을 넘어야 한다. 특명을 내린 사람, 알버트 비어만. BMW의 M 브랜드를 총괄하던 그가 현대차로 옮겨 탄 건 일 년 전이었다.

현대차가 전하는 비어만의 얘기다. “독일에서보다 평생 동안 넘은 것보다 한국에서 한 달 사는 동안 넘은 과속방지턱이 더 많다” 도로에 깔린 그 많은 과속방지턱을 없앨 수는 없는 법. 개발팀은 그 턱을 가장 잘 넘을 수 있도록 EQ900을 조율해 냈다. 과속방지턱을 가장 잘 넘을 수 있는 차라면 적어도 도로 위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충격과 쇼크를 훌륭하게 넘어설 수 있다.

압구정의 어느 아파트 뒷길, 수많은 과속방지턱이 버티고 선 길을 시속 60km 넘는 속도로 달렸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도록 하고 뒷좌석에 앉았다. 턱 앞에서 속도를 줄이며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정반대로 가속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며 그 턱을 넘었다. 충격이 전해옴을 느꼈지만 그 뿐이다. 충격을 넘을 땐 서너 차례의 미세한 잔진동이 따라오게 마련이지만 EQ900은 딱 한 번의 흔들림으로 마무리 했다. 깔끔했다. 자랑할 만하다.

알버트 비어만에게 과속방지턱은 EQ900이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였다. 한국의 도로 환경을 가장 잘 말해주는 상징물이었고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공격지점을 확보한 셈이다. 포병에겐 정확한 타격 지점을 알려주는 관측병이 필요한 법. 현대차는 최고의 관측병을 데려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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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GACS)의 힘이 크다. 유압식 쇼크업소버의 밸브를 내장형으로 만들고 하나의 구멍으로 압력을 조절하는 방식을 압축과 팽창이 각각의 유로를 통해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댐핑 스트로크도 15mm 더 늘었다. 하드웨어의 변화다. 하드웨어의 변화를 궁극적으로 완성시킨 것은 이를 작동시키는 로직. 한국지형에 최적화한 로직을 개발해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을 완성해 냈다.

고속주행에서 사륜구동 시스템과 함께 작동하는 GACS는 차체를 완벽하게 장악한다. 시속 100km에서 조금 거칠게 핸들을 좌우로 잡아채는데 거뜬하게 이를 받아준다. 불필요하고 불쾌한 흔들림을 잘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엔진룸을 마름모꼴로 지지해주는 스트럿바도 차체의 강성을 높여주는데 일조한다.

그 이상의 극한적인 속도에서도 안정감은 여전히 유지됐다. 속도계를 보지 않으면 실제 속도를 30km/h 이상 낮게 느껴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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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통합제어시스템은 코너에서나 위급상황시 엔진출력, 변속기, 제동에 더해 서스펜션의 압력까지 제어해 훨씬 더 정교하게 차의 움직임을 교정해낸다. 서스펜션의 진화는 EQ900의 가장 큰 변화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시스템은 3.3T GDi 모델에만 적용된다.

주행모드는 스마트, 스포츠, 에코, 인디비듀얼 모드로 구분된다. 에코 모드와 스포츠 모드는 그 차이가 확연하다. 느슨한 여유가 에코모드라면 스포츠모드는 꽉 조여진 긴장감을 보인다. 개별 시스템의 느낌을 운전자가 직접 선택하는 게 인디비듀얼 모드. 스마트 모드에 맞추면 차가 주행 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주행모드를 자동전환 시킨다.

시승차는 제네시스 EQ900중 사륜구동 기능을 갖춘 3.3T-GDi 프레스티지 트림에 VIP 시트가 적용된 모델이다. 1억1,100만원에 VIP 시트를 추가하는데 300만원이 더 든다. 3.8 GDi보다 3.3T-GDi가 더 비싸다. 어지간한 수입차들을 발아래에 두는 가격대. EQ 900이 타깃으로 삼았다는 벤츠 S 클래스보다는 최고가 기준 절반이 채 안 된다. E 클래스 최고가 보다 조금 더 비싼 편. 거칠게 정리하면 E 클래스 가격에 S 클래스 수준의 품질을 노렸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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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의 플래그십, 길이 5,205mm에 휠베이스가 3,160mm다. 웅장한 사이즈는 초대형 럭셔리 세단의 위용을 자랑한다. 옆에서 볼 때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나파 가죽과 나무 장식, 스웨이드 가죽으로 마감한 천장까지, 실내는 최고급 재질로 뒤덮었다. 모든 재질의 고급감은 손끝이 먼저 느낀다. 꼼꼼한 만듦새는 야무졌다.

핸들은 2.5회전한다. 반발력은 조금 있는 편. 묵직한 느낌이 그동안 알던 현대차의 조향감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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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이탈경고장치를 묶어 기초적인 자율주행 시스템을 구현하는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을 완성시켰다. 0-150km/h 구간에서 작동하는 HDA는 스스로 차선을 인식하고 조향장치를 조절해 정해진 속도로 달린다. 운전자는 핸들을 쥐고 있기만 하면 된다. 잠깐 핸들을 놓고 있으면 속도에 따라 최대 15초 후에 핸들을 잡으라는 메시지가 뜬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방향지시등을 켜거나,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강제로 차선을 바꾸면 해제된다.

2초 룰. 전방을 주시하는 운전자의 시선이 최대 2초를 넘겨선 안 된다는 것으로 이에 맞게 운전석의 모든 부분이 조정돼야 한다. HDA 시스템이 있다면 1초는 더 시선처리에 여유를 가져도 좋겠다. 차선을 유지해주고, 비상시에 긴급제동까지 해주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편리하지만 이를 믿고 아예 운전을 맡겨선 안 된다. 운전의 책임은 결국 운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른 차들에서처럼 제네시스의 HDA역시 옆에서 끼어드는 차가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옆차가 끼어드는 동안 속도를 줄여줘야 하는데 완전히 이를 인식하지 못해 운전자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끼어드는 차를 어떻게 빨리 인식하느냐가 향후 HDA 기술 개선의 포인트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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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함은 수준 이상이다. 제네시스 최고의 차답게 최고 수준의 정숙함을 맛볼 수 있다. 차 안으로 기어이 비집고 들어온 소리는 실내가 조용해서 더 잘 들린다. 뒷좌석에서 들리는 노면소리가 그것. 없앨 수 없는 이 소리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유리창의 필름, 3중 실링 등 이런 저런 차단막을 뚫고 기어이 실내로 파고든다. 물론 전혀 시끄럽지 않다.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소리다. S 클래스에서도 만날 수 있는 정도의 외부 소음이다.

제네시스는 ‘중공휠’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소개했다. 알로이 휠 내부에 구멍을 뚫어 타이어 공명음을 일부 흡수하고 무게도 줄이는 효과를 노린 신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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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공간은 1억 원 넘게 지불한 오너 몫이다. 뒷좌석에서 만끽하는 호화로운 공간. VIP 시트는 비스듬히 기대서 다리를 꼬고 앉아도 공간이 남는다. 조수석 시트를 앞으로 밀고 접으면 다리를 쭉 펴도 된다. 발받침이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다. 다리를 쭉 펴면 접혀진 조수석 뒷부분에 다리를 걸치게 된다.

핸드폰 무선충전기능, 뒷좌석 좌우 모니터, 오디오와 비디오를 따로 즐길 수 있는 장치 등이 여유로움을 더한다.

안마기능은 없다. 물론 자동차 시트의 안마기능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최고급 세단이라면 어떻게든 그 기능의 완성도를 높여 채택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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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량 3,342cc V6 GDi엔진은 터보가 결합해 370마력, 52.0kgm의 힘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는 어느 속도에서도 탁월한 가속을 보여준다. 속도가 높아져도 가속감은 죽지 않는다. 손에 가득 차게 들어오는 변속레버의 그립감도 마음에 든다. 변속 느낌도 고급이다. 주차 위치인 P레인지는 변속레버에 없다. 변속레버 위에 자리한 P 버튼을 눌러야 한다. 급하다고 변속레버를 제일 위로 올린 채 내리면 안 된다. P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는 거 잊지 말자.

시속 100km에서 1,500rpm의 여유 있는 엔진은 일상 주행할 때 최고 수준의 편안함을 보여준다. 일단 가속 페달을 킥다운 상태까지 밟으면 rpm이 바삐 움직이며 속도를 높인다. 레드존인 6500rpm을 터치하고 5,000rpm, 때로는 4,500rpm까지 후퇴한 뒤 다시 빠르게 상승한다. 재미있는 건 rpm이 빠르고 절도 있게 움직인다는 것. rpm게이지의 바늘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것 같다. 보기만 해도 즐겁다.

메이커가 밝힌 이 차의 공식 복합 연비는 7.8km/L. 남춘천에서 서울 워커힐까지 약 67km를 연비 신경 쓰지 않고 마구 달린 결과 계기판이 알려준 연비는 5.4km/L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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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에쿠스와는 전혀 다른 차다. 확실히 단단해졌고 한 차원 높은 고급스러움을 구현했다. 고객층도 낮아졌다. 사전 예약을 분석해보면 57.3세에서 55.1세로 평균 연령이 낮아졌다는 얘기다. 그래도 고민은 남는다. “고급차는 이런 맛이지” 하며 상대적으로 말랑한 느낌을 좋아하던 기존 에쿠스 고객들이 이름조차 낯선 EQ900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또 하나, 완성도 높고 단단한 독일차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최고급 세단 고객들은 제네시스 EQ900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조금 상반된 성향의 이 두 고객군을 제네시스가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아닐까.

제품은 제대로 만든 것 같다. 지금까지 현대차와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차의 수준이 일취월장했음을 EQ900이 말하고 있다. 자신감을 가져도 좋겠다. 격려의 박수 짝짝짝!

오종훈의 단도직입
스마트 자세제어시스템이 추천하는 자세는 그동안 알아왔던 운전자세와는 거리가 있다. 핸들이 조금 아래로 내려오고 허리는 한 클릭 뒤로 가는 자세가 된다. 척추의 편안함, 혹은 바람직한 자세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안전운전을 위한 바람직한 운전자세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뭔가 새로운 시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유용해보이진 않는다. 그냥 운전자 스스로 시트를 조절하고 이를 메모리 시트에 저장하는 게 좋겠다.
전방추돌 위험이 있을 때 경고음과 함께 빨간 경고등이 운전자 앞창에 뜬다. 경고등 아래 ‘전방주의’라는 글씨가 써 있다. “뭐라고 쓴거야?” 위험한 상황에 눈은 본능적으로 그 글씨로 향한다. 주의하라는 글씨가 더 위험하다. 경고음과 번쩍이는 경고등이면 충분하다. 글씨는 빼는게 맞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