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봄이었나, 토요일 늦은 오후,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텅 빈 사무실에서 차 키를 가지고 회사 주차장으로 갔다. 주말에는 회사 업무용 차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차를 몰고 집으로 출발했다.

며칠 전 드디어 운전 면허증을 받아 들고 부서 선배를 조수석에 태우고 시내를 몇 바퀴 돌아봤지만, 드디어 대망의 결전, 나 혼자 차를 몰고 나가는 운명의 날이었다.

내가 혼자 자동차를 몰고 처음 세상으로 나간 차는 회사의 업무용 차인 포니, 그것도 픽업이었다.

해외 근무 중인 후배와 인터넷으로 채팅하면서 작년 현대자동차의 북미공장에서 출시한 싼타크루즈 이야기하다가 문득 입사해서 나의 운전 입문 파트너였던 부서 업무용 차 포니 픽업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포니2 픽업.

2021년, 싼타크루즈 출시 때 국내의 모 매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1990년 포니2 픽업을 단종한 후 31년 만에 내놓는 픽업트럭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두 차의 콘셉트나 구조는 차이가 크지만 적재함이 뒤에 따로 있다는 면에서는 포니2 픽업이 조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까마득한 조상 말이다.

입사해서 처음 배치받은 부품수출부에는 업무용 차가 두 대 있었다.

한 대는 부장님 전용으로 사용하는 엑셀, 다른 한 대는 직원들이 함께 사용하는 포니 픽업이었다.

타 부서들은 부서별로 관리하던 포니 픽업을 총무부에 일괄 반납하고 필요시마다 배차받아서 사용했는데 우리 부서는 계속 보유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고 참 선배가 총무부 차량 담당을 꽉 잡고 있어서 그랬다고 하기도 하고.

픽업은 배기량이 1,200cc에 공차중량이 800kg 정도로 승용 모델보다 100kg 이상 가벼워, 비록 출력이 80마력 정도였지만 적재함에 화물을 싣지 않으면 그야말로 날아다닌다고 할 만큼 기동성이 좋았다. 그 당시 느낌이지만 말이다.

긴급공수 할 수출부품이 있으면 서울 근처의 업체일 경우, 부품을 받아 픽업에 싣고 바로 김포공항으로 가기도 했는데 남태령 고개를 날아서 넘었다는 무용담도 있었다.

나를 포함해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들이 많다 보니 우리의 포니 픽업은 성할 날이 없었다. 다른 차와 접촉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운전미숙으로 자해(?)하는 경우도 많아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한번은 계동사옥의 지하 3층 주차장에서 올라오는데 지하 2층으로 올라오는 도중의 마의 좌커브구간에서 나 역시 좌측 펜더부터 도어까지 선명한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 벽에는 선배들이 남긴 선명한 흔적이 무수히 남아있었고.

여름날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가다가 멋지게 담배꽁초를 창밖에 던지고 주행 중이었는데 차 안에서 타는 냄새가 나 조수석 시트를 보니 담배꽁초가 등받이에 붙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선배들의 질책을 받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혼미했다. 특히 부장님보다도 무서운 고참 대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단 회사로 들어와 얼마 전 차량 담당 업무를 나에게 넘겨준 선배에게 음료수 한 병 사들고 가서 이실직고했다. 누구에게 알리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조금 있으니 고참 대리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역시 믿을 사람 없다고 생각하며 고참 대리에게 가니 싱긋 웃으면서 차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는데 왜 사고를 쳤냐고 했다. 그러면서 연락해 놨으니 시트업체에 가서 시트를 교체하고 오란다.

헐레벌떡 차를 몰고 시트업체에 가니 시트 한 대 분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 장착한 후 비용을 물어봤더니 그냥 가라고 한다. 며칠 지나 부서 회식하면서 고참들이 나에게 물었다. 픽업 시트가 새것으로 바뀌었는데 무슨 일 있었냐고. 옆에 앉은 고참 대리가 시트가 너무 때가 많이 타서 업체에 부탁해서 새것으로 교환했다고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선배님 감사.

운전면허를 따고 산전수전을 겪고 있을 때 드디어 후배들이 들어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운전면허를 따고 선배가 시내 연수시켜주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하루는 점심을 일찍 먹고 후배가 운전하여 삼청터널을 통과해 삼청동으로 시내 운전 연수를 나갔다. 삼청동은 낮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아 운전 연수하기에 좋은 동네로 그 당시 본사에서는 초보자들 운전 연수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혹시 요즘도?

나도 초보 때 점심시간에 삼청동으로 운전 연수를 많이 나갔었다. 한참 터널을 통과해 삼청동의 부촌으로 접어들어 갈 즈음, 뒤에서 경찰순찰차가 따라오면서 계속 정지명령을 내렸다. 차를 도로 우측에 세우고 후배에게 운전면허증 있는지 확인한 후 차 문을 여는데 메케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디 불났나? 차에서 내려보니 뒷바퀴에서 연기가 무럭무럭. 사이드브레이크가 완전히 안 내려진 상태로 계동에서 여기까지 왔나 보다. 운전면허증과 차량등록증등을 확인한 경찰은 연수 조심해서 잘하라며 웃으면서 떠났다.

포니 픽업 이야기하다 보니 관련 법규와 관련된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정부는 1972년 6월 1일부터 내무부장관 고시로 이륜차와 삼륜차의 고속도로 등의 통행을 금지했다.

이 고시가 발표되기 전달, 내무부 치안국(현 경찰청)에서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사고 가운데 삼륜차와 이륜차의 사고가 전체사고의 25%를 차지하며, 차량 소통에도 많은 지장을 준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것을 근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정부는 고속도로가 아닌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했다.

이륜차, 즉 모터사이클이 고속도로나 올림픽대로 등 자동차 전용도로의 통행이 금지되는 것이야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고 모터사이클 사용자들이 이의 부당함을 헌법소원 청구하기도 하고 해외 모터사이클 제조사들이 무역장벽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금지되고 있다.

그런데 삼륜차라니? 무슨 차를 말하는 것인가. 혹시 T-600이라는 차를 들어봤는지. 기아자동차와 마쓰다의 기술제휴로 생산한 삼륜 화물 차량이었다. 당시 ‘딸딸이’,‘삼발이’등으로 불리며 자영업자, 소상공인들로부터 ‘기름이 적게 드는 경제적인 차’로 환영받으며 충실한 발이 돼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 시장을 가거나 공사 현장 부근에서 짐을 나르는 삼륜 트럭을 많이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삼륜 차량의 특성상 회전할 때나 짐을 많이 실어 차가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경찰청의 발표와 같이 이륜차와 함께 고속도로 사고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결국 고속도로 통행금지 등 사용상의 제약으로 인해 삼륜 트럭은 인기가 급락할 수밖에 없게 되어 그 수요는 급격히 감소해 사라져갔다. 확인해보니 2019년까지 롯데제과 대리점에서 운영한 기록이 있었다. 이 당시 출시했던 포니 픽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대 적재능력이 400kg으로 웬만한 짐은 거뜬히 싣고 거침없이 주행했으며, 적당히 아담했던 차체 크기로 좁은 시장통이나 골목 사이를 거침없이 누비기에 좋은 포니 픽업은 그 당시 포니 승용차의 인기와 함께 오래 타다가 판매해도 높은 가격을 받는 장점에다가 화물로 분류돼 세금까지 저렴했으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사랑을 받던 삼륜트럭이 인기가 떨어지자 기아는 브리사를 이용한 브리사 픽업을 내놓기도 했지만 포니 픽업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고 그마저 1981년 정부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때문에 승용차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 단종되었다.

그런데 기아의 TK1이라는 차는 무슨 차인지? 브리사 픽업의 후손인가?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