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40] e퓨얼 등장의 의미

얼마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내연기관 차량 폐지를 둘러싼 독일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합성연료(e퓨얼)만으로 운행하는 차량은 2035년 이후에도 허용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를 봤다.

내용인즉, 오랫동안의 협상 끝에 EU 국가들과 유럽의회는 지난해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에 합의했다. 그러나 독일이 이 법률의 발효를 결정할 최종 투표 처리 전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수개월 전부터 합성연료(e퓨얼)로 운영되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허용할 것을 요구해왔다는 것으로,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법안에 독일이 찬성표를 던지게 하려면 2035년 이후에도 e퓨얼로 운행하는 내연기관차는 판매를 허용해야하는 모양이다.

유럽의 한 도시 풍경, 2035냔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에 합의했지만 독일이 합성연료를 이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휘발유이던 e퓨얼이던 내연기관차 아닌가?
e퓨얼(e-fuel)은 ‘Electric-based Fuel’의 약자로 ‘전기를 이용해 만드는 연료’라는 뜻이다. e퓨얼은 물을 전기분해 하여 생산한 그린수소와 이산화탄소를 결합, 가공해 만든다. 탄소 포집(Carbon Capture) 기술을 활용해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기 때문에 연소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더라도 사용된 탄소의 양과 배출된 탄소의 양이 같으면 자동차가 만들어져 폐차할 때까지의 총탄소 배출량을 볼 때 탄소배출이 ‘0(제로)’에 가까워진다고 해서 ‘탄소중립 연료’라고 불린다.

자동차의 생애주기를 ‘연료탱크부터 바퀴까지(Tank to Wheel, TTW)’라고 하듯이 현재 자동차의 환경규제는 주행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에 대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즉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질소산화물(NOx), 입자상 고형물(PM) 등에 대해서만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동차의 생애주기 전체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단속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바로 에너지 및 원료생산, 제품 사용, 부품교체, 그리고 폐차·재활용까지 전체를 포괄하는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를 말한다. 자동차에 LAC가 도입되면 고효율의 하이브리드카가 재조명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배터리의 재활용 산업 또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용한 자동차의 배터리를 에너지저장 장치(ESS) 등 재사용 및 재활용해 폐배터리에 의한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는 산업이 부상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고려되는 것이 e퓨얼이다.

e퓨얼 제조의 기본이 되는 공정은 1920년대 독일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의 프란츠 피셔와 한스 트롭시가 개발했다. 수소(H2)와 이산화탄소(CO2)를 일정한 압력에서 반응시켜 탄화수소(H+C)를 만드는 이 공정을 ’피셔트롭시 공정(Fischer-Tropsch synthesis)’, 즉 FT 공정이라고 부른다.

독일이 개발한 합성연료 기술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값싼 석유가 보급되면서 점차 잊혀졌다. 세계의 패권을 잡은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의 풍부한 석유를 놔두고 합성연료 개발에 힘을 쏟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던 합성연료는 1970년대 중동전쟁으로 인한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독점에 대한 불안감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 등 친환경 기술에 대한 요구 때문에 다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간단히 모든 차를 전기차로 빨리 바꾸면 될 것을, 이제와서 철 지난 옛 기술을 다시 불러내는 이유가 뭔가? 국내도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 정책에 맞춰 전동차(전기자동차)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기차의 친환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기차에 탄소 배출량 전과정평가(LCA)를 적용하면 친환경 효과가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의 양이 내연기관의 평균 배출량보다 많다는 것이다. 결국 운행 중에는 탄소배출이 없지만 생산하는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더 많다는 이야기다.

생산과정에 탄소배출이 많다는데 무슨 말일까? 전기차에 사용하는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탄소가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로 사용하는 리튬이온 전지에 들어가는 원료를 채취하고 제련하는 과정에서 유해 물질도 많이 배출된다. 전기차를 폐차할 때 나오는 배터리의 폐기와 재활용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이쯤 되면 그동안 탄소제로를 위해, 지구 온난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라고 믿어왔던 내연기관을 전동차로 바꾸는 계획이 거짓말(?) 이었다고 봐야 하나? 그 훌륭한 연구자들과 언론들이 우리를 현혹하고 바보 취급해 왔다는 말인가?

e퓨얼이 친환경 연료의 미래로 떠오른 것은 e퓨얼의 재료가 되는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인공적으로 채집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다. e퓨얼은 완전연소 비율이 높아(e퓨얼 90%, 가솔린 60%) 기존 디젤차 대비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며 항공기나 선박의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고 기존 석유 연료의 운송·보관시설 등의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각 나라, 각 메이커에서 전기차의 판매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판매되는 차량의 90%는 내연기관 차다. 전기차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오랜기간 전기차보다 더 많이 생산될 내연기관차를 현재의 엔진 그대로 만들수는 없으므로 e퓨얼이 대안이 되겠다. 물론 승용차보다는 비행기와 선박 등에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비행기의 경우 오랜 연구개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배터리가 지나치게 무거워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군용차량이나 일부 특수장비 등 전자기파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 기존의 내연기관 사용이 불가피한 차량 등에도 먼저 고려될 만하다.

한편에서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이 발달 했다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고 전기차 대비 에너지효율이 e퓨얼이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전기·수소차로 전환되었을 때 타격을 받는 기존 정유업계에서 내연기관 산업을 연장하기 위해 e퓨얼의 장점만 강조하고 있다는 반대의견도 적지 않다.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는 경제성이다. 현재 e퓨얼의 가격은 기존 석유에 비해 아직은 2배 이상으로 비싸다. 물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 때문에 10~20년 후에는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해 업계에서도 장기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e퓨얼이 만능은 아니다. e퓨얼이 모든 것을 해결할 해결사라기보다는 탄소제로와 환경보전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쨌든 20~30년 후에도 내연기관 차를 탈 수 있다는 말인가? 꿈에 그리던 8기통 고성능 내연기관 자동차도 말이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