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 현대차가 포니 쿠페를 복원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프로토타입까지 제작됐고 양산되지 못한 포니 쿠페를 다시 만든다는 프로젝트에 나선다는 것.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73년 12월 20일, 이탈디자인은 4대의 포니와 1대의 포니 쿠페를 현대차에 납품한다. 모두 양산 전 단계의 프로토타입카였다. 현대차는 이를 토대로 포니를 양산해 당당히 독자 모델을 생산하는 자동차 메이커의 자리에 오른다. 포니 쿠페는 이듬해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와 함께 등장해 화제를 모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현대차의 첫 독자모델 포니. 사진출처 : 현대자동차사.

포니는 현대차가 만든 첫 독자 모델이다. 현대차 기술 독립의 상징인 차다. 당연히 한국의 첫 독자 모델이기도 하다. 포니 덕에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 두 번째 자동차 독자 모델을 개발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한국이 해외로 처음 수출한 승용차도 76년 7월 에콰도르로 향한 포니 5대였다. 한국의 자동차 역사에 기념비적인 모델이니 기념하고 복원할만한 가치가 있는 차다.

쥬지아로. 포니의 디자인을 맡은 자동차 디자이너. 제2의 미켈란젤로로 불렸던 자동차 스타일링의 천재다. 포니를 통해 현대차, 그리고 한국과 연이 닿았으니 서로에게 참 고마운 존재다. 현대차로서는 역사에 새겨넣을 만한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있는 이름이겠다. 현대차는 다시 그를 앞세워 포니 쿠페 복원에 나선다.

하지만, 쥬지아로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다. 현대차 소속으로 첫 독자 모델 개발을 위해 몸바쳐 뛰었던 이들. 그들을 앞에 세워야, 그래야 독자개발의 의미는 제대로 살아난다. 포니를 통해 현대차의 위상을 세계 무대로 끌어올린 이들. 독자 모델 개발 주역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포니정, 고 정세영 회장이다. 정주영 회장의 명을 받아 독자 모델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포니를 개발하고 생산해 세계 시장에 수출한 말 그대로 포니의 아버지다. ‘포니정’이라는 그의 영문 이름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73년 9월 직접 이탈리아로 날아가서 디자인 용역회사로 이탈디자인을 최종 선택한 이도 정 회장이었다. 그의 리스트에는 이탈디자인 이외에도 피닌파리나, 베르토네, 기아(Ghia), 롬바르디아 등이 있었다. 포니정과 쥬지아로는 74년 토리노모터쇼에서 포니 탄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정주화 차장, 이수천 이사. 포니정과 함께 이탈리아로 날아가 현지 시장조사와 기술 검토를 거쳐 이탈디자인을 낙점했던 이들이다.

또 있다. 73년 이탈디자인에 파견됐던 6명의 현대차 직원들이다. 김 과장 이 대리로 기억되는 이들은 연락관이라는 직책으로 설계 작업을 ‘참관’하는 게 공식 업무였다. 하지만 신차 개발 경험이 없던 현대차로서는 이를 알아내고 배워야 했다.

공간에 좌표를 찍고 이를 통해 모델을 설계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다. 6명의 파견 직원들은 보이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노트에 메모하고 저녁때 숙소에서 다시 토의하며 설계 방법을 익혔다. 그 노트가 현대차의 디자인, 설계 기술의 뿌리가 됐으니 거기서부터 현대차의 기술 독립은 시작됐다. ‘이 대리 노트’를 작성했던 이충구 대리는 훗날 현대차 사장에 오른다. 그는 6명의 파견 직원 중 제일 막내였다.

기록에 따르면 6명의 파견 직원들의 이름은 정주화 차장, 이승복 과장, 박광남 과장, 이충구 대리, 김동우 대리, 허명래 대리다.

1992년에 펴낸 ‘현대자동차사’에서 찾아낸 이름들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