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E는 EQ의 완결판이다. EQE의 등장으로 A, B, C, E, S로 이어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EQ 기본 라인업이 일단락됐다. 수입차 중 가장 화려한 전기차 라인업이다. 2019년에 EQC를 시작으로 전기차 시대를 열었으니 불과 3년 만에 전기차 풀라인업을 구축했다. 아직도 디젤 엔진을 붙들고, 제대로 된 전기차를 단 한 대도 선보이지 못하는 브랜드들이 적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참 발 빠른 대응이다.

EQE 350+를 타고 서울-원주 구간을 달렸다. 비 온 뒤 아침 기온 9도 전후로 전기차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쌀쌀한 날씨였다.

EQE는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 EVA2로 개발된 순수 배터리 전기차다. 휠베이스가 무려 3,120mm다. E클래스는 물론 S 클래스 세단보다 더 길다. 그만큼 더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긴 휠베이스는 주행안정감을 높이는 데에도 좋은 효과를 내다.

헤드램프와 그릴을 하나로 묶고 막힌 그릴에는 삼각별 무늬를 뿌려 넣었다. 막힌 건 또 있다. 보닛을 잠가놓았다. 열려면 공장에 가야 한다. 운전자는 보닛 안을 볼 필요가 없다는 걸까? 보고 싶은데 못 보게 하니 그 또한 궁금하다.

보닛에서 루프, 트렁크 리드로 흐르는 라인은 활처럼 부드럽다. 보닛, 트렁크 리드, 앞뒤 오버행이 다 짧다. 20인치 타이어가 휠하우스를 꽉 채웠다. 타이어는 크고 볼 일이다. 보기에도 좋고 힘을 쓰기에도 좋다. 물론 연비에는 조금 손해 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얇은 선글라스를 걸친 듯한 뒷모습은 EQ의 특징. 트렁크 리드 끝에 짧은 스포일러가 귀엽다.

계기판은 단순해졌다. 복잡하게 많은 정보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던 기존 계기판 구성에서 겹치는 부분들을 덜어내 단순화했다. 왼쪽 속도계, 오른쪽 파워게이지로 고정하고 중앙에 필요한 정보를 골라 띄울 수 있게 했다. 주행보조 시스템이나 내비게이션 지도를 전체 화면에 띄울 수도 있다. 센터패시아에는 12.8인치 대형 모니터를 세로로 배치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넓다. 넓고 선명한 화면이 눈길 가는 곳마다 배치되어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제로 레이어 기능이 있다. 그 기능을 운전자가 따로 알아두거나 조작할 필요는 없다. 차가 알아서 대응한다. 주행 상황에 가장 중요하거나 필요한 기능을 화면에 배치해 두는 것이다. 차가 터널에 진입하면 공조 기능을 화면에 올려 즉각 조작할 수 있게 하거나, 매일 오후 6시 전후에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면 그 시간에 전화 걸기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 편리하지만 프라이버시 관리 차원에서 이를 마다할 수도 있겠다. 제로 레이어 기능 대신 클래식 기능을 택해 이 편리한 기능을 쓰지 않는 방법도 마련해뒀으니 선택해서 사용하면 된다.

스티어링휠은 2.2회전 한다. 차 크기에 비해 짧은 락투락 조향비다. 예민한 조향 반응을 기대할 수 있겠다. 휠 아래에 패들이 있다. 변속이 아닌 회생제동 반응을 조절하는 패들이다. 수동변속의 느낌으로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 D Auto에 두고 움직이는 게 가장 좋다. 주행의 이질감이 없고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글라이딩 모드와 회생제동을 적절하게 선택해준다. 내리막길에서 강한 회생제동이 필요할 때는 D-를 택하면 좋다. 시프트다운 효과를 내며 강한 제동과 함께 에너지를 배터리로 역류시킨다.

주행모드에 따라 가속 반응은 달라진다. 에코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을 밟아도 일하기 싫은 듯 게으른 반응을 보이지만, 스포츠 모드에선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시트가 몸을 밀며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가속하면 엔진이 작동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실버 웨이브와 비비드 플럭스 두 개의 소리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소리가 아예 없는 것도 좋겠다. 진동 없이 소리로만 만나는 엔진의 흔적은 어색하고 애처롭다.

88.89kWh 대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배치했다. 모터는 뒤에 하나를 써서 후륜구동으로 움직인다. 최고출력 215kW, 마력으로는 292마력이다. 딱 좋은 힘이다. 0-100 km/h 가속시간 6.4초의 성능이니 제법 잘 달리는 세단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셈이다.

주행 질감은 더없이 좋다. 무거운 배터리가 바닥에 넓게 배치됐으니 무게 중심이니 앞뒤 무게 배분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흔들림에 강하고 좌우로 굽어 돌아가는 코너에서도 최고의 안정감을 보인다. 뒤에서 밀고 가는 후륜구동의 느낌도 고급 세단에 걸맞게 안정감이 있다. 무엇을 더 바랄까 싶을 정도로 우수한 주행 질감이다. 최고속도는 210km/h에 제한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빨리 달릴 일은 없지 않을까. 어쨌든 그 속도까지는 필요한 만큼 빠르게, 안정되게 달려준다.

도로 상태가 좋다면, 이를테면 막 포장을 마친 아스팔트 도로라면 실내는 시속 100km에서도 적막하다 싶을 정도의 정숙성을 유지한다. 엔진이 없으니 엔진 소음이 사라지고,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사용하는 등 NVH 대책 수준을 높여 외부 소음을 잘 막아내고 있다. 거친 길에서 만나는 노면 소음, 고속에서 만나는 바람소리 정도가 귀를 어지럽힐 뿐이다.

부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시스템이 들려주는 짱짱한 소리는 소음에 대한 완벽한 대책이다. 어지간한 바람소리, 노면 잡소리 등은 그냥 덮어버린다. 지니뮤직을 통해 무손실 음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지니뮤직은 각자 가입해야 한다는 게 함정.

주행보조 시스템은 자율주행 레벨 2에서 최고 수준이다. 익을 만큼 익었다. 차간거리를 정확하게 유지하며 가속과 제동에 개입하고 있고 차선을 이탈하지 않도록 정확하게 차로 중앙을 유지한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자율주행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버튼 한 번으로 활성화될 만큼 조작도 쉽고 편하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최대 471km로 국내 인증을 받았다. 참고로 유럽에선 605km로 인증받았다. 그만큼 한국 인증기준이 까다롭다. 충전 정보창을 통해 살펴보니 배터리 잔량 76%에서 주행가능거리 438km다. 평소 80%까지만 충전하고 배터리 잔량 10%에서 충전한다면 결국 배터리 70% 정도를 사용하게 된다. 봄가을, 배터리에 최적인 계절에 400km 정도 달린 뒤 충전한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주행가능거리는 더 짧아진다는 점을 생각해서 움직여야 한다.

벤츠 설명에 따르면 시승차는 10~80%까지 충전하는 데 32분이 걸린다. 급속충전 기준이다. EQE는 급속으로 170kW, 완속으로는 8.8kW까지 지원한다. 충전은 전기차 구매 희망자에게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메이커에서는 급속충전보다 완속 충전을, 100%가 아닌 80% 충전을 추천한다. 배터리 보호를 위해서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화재위험까지 고려한 얘기다. 그렇다면 완속 충전기로 80%를 충전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완속 충전기가 필요하다. 아파트 같은 공공주택에서는 힘든 얘기다. 전용 충전기를 설치할 수 없다면 전기차 구매는 조금 더 참는 게 좋겠다.

원주-서울 간 정확하게 100km를 주행했다. 주행가능거리는 437km로 출발했고 100km를 달린 뒤의 주행가능거리는 319km. 1km당 174kW를 소비했으니 5.74km/kWh의 연비를 보였다. 고속주행, 스포츠 주행을 포함했고 에코 모드와 컴포트 모드를 두루 사용하며 특별히 연비에 신경 쓰지 않고도 공인복합연비 4.3km/kWh를 훌쩍 뛰어넘는 우수한 연비를 보였다. 거침없이 달린 후의 연비라 더 의미가 크다.

판매가격 1억 160만원이다. 전기차 구매보조금은 없다. 1년 자동차 세금 13만 원에 불과하고 고속도로 통행료 50% 할인 등 전기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예약 충전이 안 된다. 큰 문제다. 1억원 넘는 고급 전기차를 타는데 요금이 싼 심야 전기로 충전하기 위해서는 11시까지 기다렸다가 충전을 시작해야 한다. 그거 얼마나 아낀다고 졸린 눈 비비며 기다렸다 충전하는 것도 우습고, 그렇다고 저렴하게 충전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예약 충전 기능을 넣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대단한 기술도 아닐 텐데. 스마트한 전기차 생활에 반한다. 가장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뒷좌석은 불편했다. 개인적인 느낌이다. 다른 차를 시승한 동료 기자는 오히려 편하다고 뒷좌석을 칭찬했다는 점을 밝힌다. 각자 느끼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내가 느끼기에 시트는 조금 높은 듯하고 허벅지 부분이 솟아 있다. 등을 세워 앉는 자세가 된다. 뒷좌석 송풍구는 있지만 별도로 온도조절 기능은 없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높이로 센터 터널이 솟아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했는데도 그렇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