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속초에서 볼보를 탔다.

‘볼보’라는 말이 ‘나는 구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나는 그날 볼보를 타고 굴렀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굴렀다는 표현이 께름칙할 수 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망사고가 없게 하겠다는 볼보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볼보는 에스테이트와 크로스컨트리라는 독특한 장르를 갖고 있다. 세단과 SUV 사이에 촘촘하게 채워 넣은 차종들인데 따지고 보면 그 반대일 수 있다. 에스테이트와 CC를 중심으로 세단과 SUV로 라인업을 확장한 게 오늘의 볼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만큼 크로스컨트리에는 볼보의 본질이 담겨있다.

화창한 가을 날씨를 기대했으나 속초는 가을장마 중이었다. 볼보의 고향 스웨덴의 일상이라 할 수 있는 비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 그러니 볼보 타기 딱 좋은 날이다. V60 CC B5를 골랐다. 비바람이 불어 한바탕 뒤집히는 바다를 등지고 동쪽, 미시령으로 길을 잡았다.

CC는 독특한 차체 비례를 가졌다. 세단과 SUV 사이 어디쯤. 긴 허리, 짧은 다리가 영락없는 닥스훈트를 닮았다. 공간은 넓다. 트렁크도, 뒷좌석도 넓어서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가볍다. 처음 움직일 때, 손과 발 느낌이 그랬다. 스티어링휠도, 가속페달도 반발력이 작아서 경쾌했다. 가볍지만 그렇다고 경박스럽다고 할 수는 없는 게 묵직한 서스펜션 때문이다. 타이어와 서스펜션을 거쳐 올라와서 시트에 맞닿은 엉덩이까지 전달되는 노면 느낌이 단단하고 묵직했다. 앞 더블위시본에 뒤 멀티링크, 그리고 뒷차축을 따라 리프 스프링을 하나 더 쓰는 볼보 특유의 서스펜션 구성을 V60 CC도 따르고 있다. 좀 더 정교하게 차체의 움직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서스펜션이다.

도로는 푹 젖어 언제라도 타이어 그립을 놓치면 미끄러질 태세다. 올 휠 드라이브, 그러니까 네 바퀴가 모두 엔진 힘을 받아 구동하고 있어 미끄러질 위험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구동 바퀴가 네 개라 바퀴 하나쯤 헛돌며 구동하지 않아도 나머지 세 바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두 바퀴 굴림에서라면 구동 바퀴 중 하나가 헛돌면 구동력 50%가 사라지는 셈이니 위험천만이다. 사륜구동이 안전한 이유다.

2.0 가솔린 엔진에는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해졌다. 8단 자동변속기가 조율하는 250마력의 힘을 네 바퀴가 전달받아 움직이는 사륜구동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공인복합연비는 9.9km/L.

하이에나처럼 미시령 기슭을 어슬렁거리며 오르다 인제에서 방향을 틀었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표범이고 싶다는 조용필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길.

그날 그곳엔 벌써 가을이 와 있었다. 바워스&윌킨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듣는 조용필은 색다르다. 그와 나란히 앉은 듯한 느낌에 빠져 원 없이 소리높여 노래를 불렀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언제든 ‘아리아’를 부르면 된다. 음악 서비스 플랫폼 플로를 통해 원하는 노래를 바로바로 들려준다. 실내온도, 뉴스 듣기 등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아리아를 통해 받을 수 있다. 신통방통한 아리아다.

티맵오토, 누구 오토, 플로를 통합한 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수입차 최고 수준이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고 정확하게 대응한다. 스마트폰으로 차를 통제할 수 있는 디지털 키와 볼보 카스 앱도 이용할 수 있다.

기어는 낮추고, 엔진 회전수를 높이니 아주 예민하고 다이내믹한 반응이 살아난다. 패들시프트도, 주행 모드 선택 버튼도 없다. 밀당할 상대는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뿐이다. 가속페달만 패는 게 좋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라면 브레이크는 못 본 척, 밟지 않는 게 좋기 때문이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가솔린 엔진도 원 페달 드라이빙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독한 시어미가 착한 며느리 닦달하듯 가속페달만 밟았다 놨다를 반복했다.

엔진 회전수가 떨어지면 변속 레버를 통해 아랫단 변속으로 받아치며 회전수를 유지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많은 코너를 그렇게 춤추듯 넘어섰다. 크고, 작은, 내리막이 겹친, 흥건하게 젖은 다양한 코너를 표범처럼 움직였다. 오디오 볼륨을 높이고 폭풍우를 뚫고 달리는 재미가 대단했다. 미끌거리고 휘청이는 허약한 하체였다면 모골이 송연했을 그 길을 힘차게 단단하게 움직인 덕분에 재미있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릴 수 있었다.

정신 차리니 다시 7번 국도. B5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잔잔함이 이어졌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드라이빙 뒤에 이어지는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소곤거리는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 멈추고 움직일 때마다 숨을 거두고 다시 살아나는 반응이 재미있다. 죽었나 살았나 알아보려 살짝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어김없이 또 숨을 몰아쉬며 살아난다.

몰입하며 운전했지만, 볼보는 이제 운전자와의 이별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운전자가 선택하고 조절하는 몇몇 주요 기능들이 차근차근 사라지는 중이다. 스티어링휠의 패들, 주행모드 선택 등의 기능이 그렇다. 하나하나 그 기능을 선택하며 운전하는 시대가 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운전자의 선택은 이제 하나씩 줄이고, 차가 알아서 판단하고 대응하는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것. 헤어질 날을 내다보고 하나둘 주변정리하며 정을 떼는 느낌이랄까. 이제 사람이 운전할 날이 그리 오래 남지는 않았음을 은연중에 볼보는 말하고 있다.

첨단 주행보조시스템은 스티어링휠에 있는 버튼 한 번으로 작동한다. 눈이 달린 듯 차로 중앙을 정확하게 유지하며 달렸다. 전방 충돌 경보 및 긴급 제동 서포트, 차선 유지 보조, 도로 이탈 방지 및 보호, 사각지대 경보 및 조향 어시스트, 교차로 경보 및 긴급 제동 서포트, 후측방 경보 및 후방 추돌 경고 등이 촘촘히 전후좌우를 경계하고 경고하며 지켜준다. 최고속도 시속 180km에 제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속도까지 달릴 일은 없지 않을까. 달릴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단속 카메라가 지키고 있고 그 수는 더 많아지고 있으니 속도를 탐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안전에 집중하는 볼보의 방향이 맞다.

볼보 V60 크로스컨트리는 각각 5,530만원(Plus), 6,160만원(Ultimate)이다. 5년 또는 10만km 무상 보증기간과 소모품 교환 서비스를 기본 제공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이별은 늘 아쉽다. 익숙한 상대와의 이별은 특히 그렇다. 시프트 패들과 주행모드 선택 기능은 운전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것들. 하지만 이 차에는 없다. 운전자의 몫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명확하게 말해주는 부분이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일이 오늘이 되고 있음을 이 차는 말하고 있다. 운전자의 몫중에 다음엔 무엇이 사라질까.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