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인 만큼 단순한 구조다. 1.0 엔진에 4단 변속기. 단순한 이 차 캐스퍼,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복잡하다. 단순한 구조의 경차 캐스퍼에는 광주형 일자리, 노동조합, 임금, 온라인 판매, 차종간 판매 간섭 등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단순한 캐스퍼의 무척 복잡한 이면을 들여다보자.

캐스퍼는 정치적인 차다. ‘광주형 일자리’ 표방하는 광주 글로벌 모터스(GGM)에서 위탁생산하는데, GGM의 출발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었다. 광주광역시가 1대 주주로 나섰고 현대차가 2대 주주로 참여한다. GGM의 임금 수준은 평균 연봉 3,500만 원이다. 기존 현대차 노조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위탁생산 물량을 더 늘릴지, 줄일지 혹은 줄어들지, 임금을 더 높일지, 낮출지 여러 선택지를 두고 많은 참여자가 협력과 대결을 해야 하는 구조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면에서 캐스퍼는 현대차가 노조에 던지는 견제구다. 임금과 생산 물량에 관한 압박 카드로 생산 노조를, 온라인 판매를 통해서는 판매 노조를 압박할 수 있다. 특히 판매 노조가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현재의 판매 시스템을 피해, 온라인 판매를 구현하기 위한 우회로로 캐스퍼는 훌륭한 대안이다.

하지만, 캐스퍼는 적당히 팔려야 하는 운명이다. 대박 수준으로 성공하면 곤란한 문제들이 생긴다. 베뉴나 코나 같은 상급 소형 SUV 판매에 지장을 받게 돼서다. 소형 SUV에 밀려 소형 세단 시장이 사라지면서 현대차의 가장 작은 세단은 아반떼다. 엑센트의 단종은 현대차에게는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많이 팔아봐야 남는 게 없는 소형 세단이 지리멸렬하는 건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던 것.

일찌감치 경차 시장에서 철수한 것은 마진폭이 크지 않은 경차 시장을 기아에 몰아준다는 의미가 컸다. 그런데 다시 캐스퍼를 이 시장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경차 시장에서 일찌감치 철수하고 기껏 소형 세단 시장까지 없어졌는데, 혹은 없앴는데, 다시 경차를 만들어야 했던 건 자의반 타의반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광주형 일자리가 필요했고, 광주공장을 돌리기 위한 자동차가 필요했던 거고, 회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크지 않은 경차 캐스퍼가 캐스팅된 것으로 풀어볼 수 있겠다.

캐스퍼의 가격은 1,385만~1,960만 원으로 경차치고는 비싸다. 베뉴를 살 수 있는 가격이고 코나까지도 넘볼 수 있다. 근로자 임금이 낮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등 충분히 원가를 낮췄음에도 이렇게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

왜 그럴까.

캐스퍼가 대박 나면 경차 시장을 넘어 소형 SUV 시장까지 파고들게 마련이다. 캐스퍼 대박은 베뉴 쪽박일 수 있다. 코나까지도 영향권이다. 메이커 입장에서는 마진이 박한 차가 많이 팔려 넉넉히 이익이 남는 차가 덜 팔리는 상황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GGM으로 생산 물량이 몰리고, 그만큼 현대차 공장의 일감이 줄어들면 노사 긴장은 더 높아진다.

그렇다고 쪽박은 위험하다. 광주형 일자리의 상징적인 의미가 커서다. 또한 현대차로서도 다시 진출한 경차 시장인데 체면은 살려야 할 노릇, 실패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다. 캐스퍼는 적당히 잘 팔려야 최선이다.

경차 수준을 뛰어넘는 안전 및 편의장비로 상품성을 높이고 가격도 경차 수준을 뛰어넘게 책정했다. 좋은 차를 만들지만, 꼭 경차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이 가는 수준. 가격이 이를 말하고 있다.

누가 이익일까. 광주시, 현대차, GGM, 현대차의 노조, GGM의 노동자, 영업사원, 그리고 소비자. 각자의 입장이 크게 다르다. 캐스퍼를 보는 입장도 다를 수밖에 없다. 복잡한 문제다.

간단하지만 근원적인 질문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비자들은 경차를 왜 살까? 캐스퍼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있는가?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