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을 돌아보면 드라마 같은 굴곡을 겪은 차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기사회생(起死回生)한 차가 기억에 남는다. 당연히 그 극복 과정은 훗날 전설이 되고.

싼타모의 기사회생 과정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드물 것 같아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한다.

1991년 9월, 쌍용의 아성인 SUV 시장에 갤로퍼를 내놓은 현대정공(現 모비스)은 출시 이듬해 총 2만 4천 대를 판매해 단번에 국내 SUV 시장의 52%를 차지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추가 차종으로, 현대자동차와의 차종 중복을 피하고 시장성을 고려해 갤로퍼와 같은 RV가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갤로퍼를 도입한 미쓰비시 자동차의 미니밴인 샤리오를 검토 대상으로 하고 그 이름을 싼타모로 정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관리법상 7인승 승합으로 분류가 예상되어 1차선 주행이 불가하고 승용차 보험승계가 되지 않아 할인율 인정이 안 되는 등 이런저런 어려움도 예상되었지만 결국 미쓰비시와의 기술도입 계약도 마무리되었고 개발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공장도 착공 하는 등 바쁜 일정이 진행되었다. 기술도입을 위한 정부승인 과정에서 현대정공의 담당 중역이 정몽구 회장의 질책을 받고 그야말로 집에 갈뻔한(!) 사건도 있었다. (본인의 담당 상사였다!)

현대정공이 싼타모 생산을 위해 정부에 기술도입 승인신청을 하려는 1994년, 때마침 삼성자동차가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려고 정부에 승인을 요청해 이를 막으려고 자동차 업계가 시끌시끌한 상황이었다. 목표 시점에 차를 시장에 내놓으려면 제때 기술도입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삼성자동차 진출 허가 문제와 현대정공의 싼타모 승용 차종 분류 요청 등으로 머리가 아픈 정부에서는 승인신청서 제출을 보류하라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기술도입 승인신청이 미뤄지고 있는 와중에 정몽구 회장에게 싼타모 개발 진행 보고 회의가 열렸던 것이다. 아직도 기술도입 승인신청이 안 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정 회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담당 중역을 질책했고 회의는 중단됐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삼성의 승용차 진출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결정되고 싼타모는 7인승 승합으로 유권해석을 받아 기술도입 승인을 94년 말 완료했다.
1995년 12월, 국내 최초의 7인승 MPV라는 이름으로 싼타모는 국내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격이 1,200만 원대로 쏘나타보다 비싸기도 했지만 우려했던 승합으로 분류되는 등의 문제점 때문이었는지 출시 초기부터 판매는 난항이었다.

갤로퍼는 없어서 못 파는 반면 싼타모는 신차임에도 남아도는 차였다.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엄청난 할인판매가 불가피해 사내에서는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갤로퍼의 대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었던 정 회장은 속이 타고 있었다. 연말이 되어 한해의 판매실적을 마감하면서 재경 부문의 담당자가 내게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싼타모 한 대를 팔면 300만 원을 손해 봤다고. 1,200만 원짜리 차를 팔면서 300만 원을 손해 보다니!

그러던 중 한 싼타모 판매점에서 싼타모를 LPG 차로 개조해서 타고 다니는 직원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판매를 담당하던 현대자동차 써비스에서는 그 직원의 예를 들면서 적극적으로 싼타모 LPG 모델을 개발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 당시 LPG 충전소 숫자가 매우 적어 충전도 매우 불편할뿐더러 시중에서 LPG로 개조한 차가 폭발하는 등 소위 가스 차(LPG)의 안전에 대한 신뢰성도 많이 떨어졌다.

연구소와 생산공장에서는 난색이었다. 오랫동안 판매해온 쏘나타 택시와 달리 조건이 다른 차를 개발해 본 적이 없어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는 등 문제가 많아 현대자동차 써비스에서 요구할 때마다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반대하기는 했지만 판매 측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점도 상당히 크다고 느꼈다. 1997년 당시,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800원 수준이었는데 LPG는 그 1/3 가격에 불과해 LPG 엔진 특성상 연비가 안 좋다고 해도 운영비만 본다면 경차보다도 경제성이 좋았다.

연구소는 사면초가였다. 판매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 정 회장에게 보고를 하면 당장 개발하지 않고 뭐 하고 있냐고 불호령을 할 텐데 짧은 기간 내에 내구성이나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차를 내놓았을 때 발생할 문제가 우려되었다.
LPG 차를 내놓았는데도 판매가 늘지 않으면 상품성이 나빠서 안 팔린다고 할 것이고 만일 잘 팔린다면 그야말로 안전성이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많은 차가 도로를 달리게 되고 문제가 발생할 확률도 더 높아질 것 아닌가. 결국 안 팔려도 문제, 잘 팔려도 문제인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미루던 싼타모 LPG 개발은 정몽구 회장 주재 회의에서 판매 측이 강력히 주장해서 결정되었다. 연구소는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양산 준비 시간 등을 고려한다면 개발기간은 6개월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결국 개발과 시험과 양산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는 듣도 보도 못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LPG로 변경하는데 관련된 차체 금형도 짧은 시간에 제작하는 방법을 채택해야했다.

판매에서 강력히 요구해 개발하기는 했지만 직접 판매를 하는 카마스터 사이에서도 그 전망은 분분했다. LPG만 나오면 판매는 문제없다는 의견부터 의자 밑에 LPG 통을 달고 달리는 폭탄을 누가 사겠으며 LPG 충전하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겠느냐고 하는 의견까지. (나도 그 가능성이 의문이었다.)

1997년 6월 말, 안 팔려도 걱정, 잘 팔려도 걱정인 싼타모 LPG가 세상에 나왔다.

그 결과는? 세상이 다 알다시피 기사회생(起死回生)이었다. 초기 수요를 월 1.000대로 계획했으나 월 3,000대를 생산해도 차를 받으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생산공장에서는 생산량을 늘리느라 걱정, 연구소에서는 싼타모 LPG가 세상에 많이 돌아다녀서 걱정이었다. 다행히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그렇게 LPG는 싼타모를 살려냈다.

판매가 잘되니 우려했던 소비자들의 반응도 오히려 긍정적인 쪽으로 돌아섰다. 승합이라 1차선을 못 가니 보험이 어쩌니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보다 승합차라 1년 자동차세가 6만 5천 원에, 연료비가 경차보다도 적게 드는 장점에다, 시트 풀 플랫 등 싼타모 고유의 장점도 부각되니 애물단지가 갑자기 좋은 차(!)가 되고 말았다.

이 싼타모 LPG의 교훈(?)은 2년 후 대우 레조 LPG로 이어졌고 카렌스, 트라제에 이어 심지어 SUV인 싼타페까지 발매 초기 LPG 엔진을 적용해 디젤엔진 개발이 지연되는 문제를 해소하게끔 했다.

기사회생(起死回生), 말 그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차, 싼타모였다. 하지만 기사회생(起死回生)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결단하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