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하늘에 후끈한 열기, 비 온 뒤의 습기까지, 베트남 사이공 날씨를 닮은 날, BMW 420i 컨버터블에 올랐다.

BMW 3과 4는 짝을 이뤄 같은 심장을 쓴다. 3은 세단, 4는 쿠페& 컨버터블이다. 지붕을 닫으면 쿠페처럼, 열면 정통 컨버터블로 변한다. 차 한 대로 두 대 몫을 해내는 셈이니 합리적이라 우길 수 있다. 지갑을 들고 길목을 지키는 아내를 설득하기에 좋은 포인트다.

게다가 4인승이다. 허세 가득한 2인승 컨버터블과 다르다. 뒷좌석도 온전히 성인 두 명 몫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는 넉넉한 공간이 된다. 출퇴근용으로도, 주말 바람 쐬기에도, 둘이 손잡고 기분 내기에도 딱 좋은 차다. 아 참, 트렁크가 좁으니 골프장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친구 차를 타야 한다. 그러니 가장 합리적인 실속형 컨버터블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는 법. 확 커진 그릴이 처음처럼 낯설지 않다. 못생겼다던 첫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강한 인상 정도로 순화됐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오래 사귄 친구처럼 익숙해질 것이다. 잘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이 제법 강한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확 키운 그릴, 가로로 찢어놓은 헤드램프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 건 사실이다.

차체 길이 4,770mm, 지붕을 벗기고 옆에서 보면 늘씬한 몸매가 드러난다. 제법 크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4개의 시트가 마치 보트처럼 배치됐다.

전동식 하드탑은 시속 50km의 속도로 우아하게 움직이면서 18초 만에 열고 닫을 수 있다. 사방에서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선을 자연스럽게 즐길 정도의 배포는 필요하다. 컨버터블을 타려면 약간의 배짱도 필요하다.

고성능 스포츠카가 컨버터블이면 더 좋지만, 컨버터블이 고성능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가 차 안인지, 어디부터가 차 밖인지 모호한 경계를 즐기며 유유자적 달리면 된다. 운전실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차를 재미있게 타고픈 사람에게 420i 컨버터블은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딱 좋은 차다.

184마력의 힘이 이를 말해준다. 300마력을 넘는 고성능 차가 더 빨리 달릴 수는 있겠지만 지붕을 열면 빨리 달리는 의미가 크게 반감된다. 실제 속도 이상으로 몸이 느끼는 속도감이 확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184마력이면 충분하다. 컨버터블인데 200마력도 안 된다고 쌍심지 치켜뜰 필요 없다. 고성능의 위험을 덜어내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기기에 부족하지 않은 힘이다.

어차피 지붕을 열면 빠른 속도감에 금방 취한다. 고성능이 아니어도 실제 이상으로 느껴지는 충분히 빠른 속도다. 앞바람은 앞창을 타고 뒤로 넘어가고, 휘몰아치는 뒷바람은 윈드 디플렉터에 걸려 안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80~100km/h 정도의 속도에서도 의외로 실내가 잔잔한 이유다. 몰아치는 바람이 없으니 머리카락 휘날릴 일도 없다.

단, 네 명이 타면 뒷좌석에 걸쳐있던 윈드 디플렉터는 걷어내야 한다. 몰아치는 자유로의 바람 즐기며 지붕 열고 달리는 맛 또한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헤드레스트 아래에는 조그만 숨구멍이 나 있다.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곳이다. 겨울에도 지붕 열고 달릴 때 춥지 말라고 뒤통수에 바람을 불어준다. 굳이 지붕을 열지 않더라도 몸이 으슬으슬 추운 날, 뒤통수에 따뜻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지붕을 닫으면 동굴처럼 포근함이 스민다. 공간은 좁지 않아 뒷좌석에서도 무릎 앞, 머리 위로 약간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천으로 마무리한 소프트탑이지만 그 안을 여러겹으로 채워 넣어 하드톱 같은 딱딱한 지붕이다.

부드러운 듯 단단한 서스펜션은 쭉 뻗은 자유로의 굴곡을 기분 좋게 타고 넘는다. 단단하게 밟고 넘는가 하면 살짝 틈을 열어 받아줄 줄도 않다. 딱딱한 고집불통이 아니다. 유연하게 융통성 있게 대응한다.

드라이빙 어시스턴트는 주행 보조를 훌륭하게 해낸다. 차간거리와 진행 차선을 유지하며 조향, 가속, 제동을 능숙하게 이어간다. 주행 보조시스템의 수준이 높아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사람만큼 운전을 해낼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믿고 맡겨서는 안 된다. 보조시스템인 만큼 운전은 운전자의 몫이다.

후진 보조장치는 기발하다. 진행했던 길을 그대로 차가 알아서 후진해준다. 시속 35km/h 미만의 속도로 진입한 길을 50m까지 후진으로 빼주는 것. 운전이 서툰 이들에게 좋은 기능이다. 이런 기능 때문에 운전이 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시속 100km에서 느닷없이 제동을 걸었다. 브레이크 페달은 완전히 멈추기 직전에 한 번 더 쑤욱 들어간다. 안전띠는 되감기며 탑승객 몸을 시트에 꽉 붙들어 매고 비상등은 자동 점등된다. 만일 차창이나 선루프가 열려있다면 닫아준다. 사고에 대비한 예비동작들이다.

메이커가 밝힌 이 차의 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8.2초다. 184마력에 공차중량 1,740kg이니 마력당 무게는 9.45kg 수준. 10초 이내로 시고 100km를 주파할 수 있겠다 싶은 힘과 무게의 비율이다. 지붕을 닫고 GPS 계측기로 시속 100km 가속 시간과 거리를 측정했다. 모두 10차례 시도했고 8.75초의 최고 기록을 얻을 수 있었다.

파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약 55km를 달리며 측정해본 실주행 연비는 18.7km/L로 공인 복합 연비 11.4km/L를 훨씬 앞섰다. 리터당 7.3km나 더 달린 효율을 보인 것.

420i 컨버터블은 6,790만 원이다.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컨버터블이니까, 이런 차를 원하는 이들에겐 합리적인 가격일 수 있다. 지붕 열고 닫을 때마다 차가 달라지는 셈이니 두 대 몫을 하고, 그만큼 쓰임새도 많으니 조금 비싸도 살만하지 않을까? 결재를 올려 돈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를, 그게 아내가 됐든, 부모님이 됐든, 혹은 스스로이든. 설득할 수 있는 포인트는 제법 많다.

경쟁모델로 벤츠 C200 카브리올레를 꼽을 수 있다. 6,730만 원이라는 가격이 두 차종의 경쟁 관계를 잘 보여준다. 420i 컨버터블은 C200 카브리올레보다 길이 너비 휠베이스가 길고, 최대토크와 연비도 우수하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제스쳐 컨트롤이 없다. BMW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재미있고 유니크한 기능인데 없다. 그거 좀 넣어주지…. 아쉬움이 남는다.

5명까지 공유할 수 있는 스마트폰 디지털 키는 아이폰에서도 일부 기종만 된다. 안드로이드폰은 안된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거 좀 할 수 있게 해주지….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