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경쟁력은 브랜드 파워가 뒷받침될 때 극대화된다. EQA가 그렇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전기차 시장에 던진 승부수, EQA다. 5,990만 원의 가격이 일단 놀랍다. 독일에서는 4만 7,540.5 유로(약 6,500만원)부터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 기준 6,000만 원 가이드 라인에 맞춰 가격을 낮춘 결과다. 최대 1,200만 원까지 기대됐던 보조금이 결국 772만 원으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5,218만 원에 벤츠의 최신 전기차를 살 수 있다는 매력은 여전히 크다. 이런 게 브랜드 파워다.

가장 놀라운 건 0-100km/h 가속 테스트 결과다. 메이커가 발표한 100km/h 가속 시간은 8.9초. 실제 테스트한 ‘모든’ 결과가 이보다 빨랐다. 모두 8차례 시도했는데 모두 그 이상의 결과를 보였다. 최고 기록 8.35초, 가장 느린 기록도 8.62초로 측정됐다. 100km/h 가속 테스트에서 아주 가끔, 10차례 시도하면 한 번 정도 메이커 발표보다 빠른 기록을 얻는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8번 시도해서 8번 모두 메이커 기록을 넘기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벤츠는 이 차의 가속 시간을 정정해야 할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고로 영국의 레이스로직 사의 ‘비디오 V박스’를 이용해 가속테스트를 했음을 밝힌다.

엔진을 벗어난 EQA는 조용했다. 엔진 사운드가 사라진 공백에 다른 잡소리들이 끼어들면 더 크게 들리게 마련이다. EQA에서는 다른 잡소리들이 끼어드는 것을 막아 공백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 소리를 비워내 침묵의 질주를 이어간다. 처음에는 이질감으로 다가오지만 익숙해지면 지금까지 어떻게 내연기관의 소음을 참고 달렸나 싶다. 시승을 마치고 내 차인 디젤차에 올랐을 때, 실내를 뒤덮는 소리가 살아남을 새삼 느꼈다.

주행가능거리는 유럽 WLTP 기준 426km, 국내에서 306km로 인증받았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컴팩트 전기차는 도심 이동을 전제로 한다. 300km를 넘기면 장거리 이동에도 큰 문제는 없다. 중간 휴식 시간을 활용해 충전하면 된다.

실제 주행가능 거리는 국내 인증 거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외기온도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에 배터리 잔량 80% 수준에서 이미 340km를 달릴 수 있다고 계기판이 알려준다. 혹한기 혹서기가 아니면 WLTP 기준인 426km를 달리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다.

58kWh 배터리를 사용하는 아이오닉 5 스탠다드는 국내 인증 주행가능거리가 336km로 EQA보다 더 우수하지만, 유럽 WLTP 기준으로는 384km로 EQA 426km로 EQA에 한참 못 미친다. 어딜 가나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제도와 규제는 이처럼 자동차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시킨다. 하지만 자동차는 정직하다.

주행가능거리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서울-부산을 한 번에 달렸다, 그보다 더 멀리 추가 충전하지 않고 달렸다는 소식을 접한다. 성능 테스트의 의미는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시간에 달리는 것도 아닌 이상, 중간에 밥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잠깐 바람도 쐬어야 할 텐데, 그럴 때 충전하면 된다. 바보들의 행진에 동참할 필요는 없겠다.

평소 주행 패턴이 짧은 거리를 반복해 오가는지, 아니면 장거리 주행이 많은지 살펴보고 판단하면 된다. 큰 배터리를 사용하면 멀리 갈 수 있지만 대신 배터리 무게가 더해져 연비는 나빠진다.

“안녕 벤츠” 하면 요술램프에서 지니가 대답하듯 MBUX가 대답한다. “오늘 뭐 하지?” “저랑 데이트해요” 등의 대화가 오간다. 농담까지 받아친다. 졸릴 때 농담 주고받기하면 재미있겠다. 전화 걸기,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 미디어 선택 등 기본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실내 온도 조절, 앰비언트 라이트 컬러 설정 등등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음성명령으로 실행할 수 있다. 현재 시판 중인 자동차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음성명령 시스템이다.

스티어링휠 아래 자리한 패들을 통해 회생제동 시스템을 5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D–를 택하면 브레이크가 필요 없다. 가속페달만으로 브레이크 효과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뒤에서 잡아끄는 것 같은 이질감이 크다. D+ 혹은 D오토에서 이질감 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인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가 컴팩트 세그먼트 최초로 기본 탑재됐다. 액티브 디스턴스 어시스트 디스트로닉, 액티브 속도 제한 어시스트, 액티브 사각지대 어시스트, 액티브 차선 이탈 방지 어시스트, 충돌 회피 조향 어시스트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 수준이 높다. 차간거리 조절, 차로 중앙유지 등의 기능에 힘입어 높은 수준의 반자율 운전을 해낸다. 테슬라의 FSD 수준에는 못미치는 게 사실이지만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FSD가 풀 셀프 드라이빙의 약자인데, 완전자율주행은 아니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말장난일 뿐. 어차피 지금은 완전 자율주행을 법이 허용하고 있지 않다. 운전자가 핸들에서 손을 떼면 안 되는 시대인만큼 반자율 운전으로도 충분히 안전하고 편안한 운전을 즐길 수 있다.

66.5kWh 리튬이온 배터리는 다임러그룹의 계열사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핵심 부품을 자체 생산한다는 의미다. 5개 모듈로 구성된 배터리는 알루미늄 하우징에 쌓여 차체 뒷부분 아래에 2층 구조로 배치됐다. 그래서 트렁크 바닥은 높게 올라와 있다. 최저지상고 200mm는 배터리를 보호하는 의미도 크다. SUV의 당당한 자세를 완성시키면서도 노면과 충분한 이격거리를 유지해 배터리 손상 가능성을 줄였다. 배터리보다 사이드 스커트가 더 낮아 배터리는 노면에서 200mm보다 더 높은 곳에 배치된 셈이다.

앞차축에 모터를 배치한 전륜구동 시스템이다. 최고속도는 160km에서 제한되어 있어 그 이상 고속으로 달릴 수는 없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속도다.

숫자놀이 차례다. 파주-서울간 55km를 달리며 실주행 전비를 측정했다. EQA의 공인복합 전비는 kWh당 4.1km다. 최종 전비는 7.2km/kWh로 공인복합 전비 대비 kWh당 3km를 더 달렸다.

외기온도 32도, 배터리 잔량 51%에서 주행가능거리는 200km였으나 최종 목적지에서 주행가능거리는 187km였다. 55km를 달렸는데 주행가능거리는 단지 13km만 줄었다. 에너지 회생 제동과 글라이딩 주행 등을 통해 얻은 보너스 주행거리는 17.7km.

물론 늘 이런 것은 아니다. 평균 연비를 고려해 주행가능거리가 제시되는데, 적극적인 경제 운전으로 평균 연비가 좋아지면서 주행가능거리도 따라서 좋아진 것. 연비테스트에 나서기 전, 고속주행과 8차례의 100km/h 가속 테스트를 하면서도 평균 연비 6.4km/L를 기록한 것을 보면 연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공인복합 연비 이상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겠다. 더욱더 적극적으로 경제 운전을 하면 공인연비의 두 배 가까운 수준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국내 인증이 까다롭다 보니 실제 주행 상황과의 괴리는 더 커지고 있다.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많은 것을 생각해 보는 숫자들이다.

결론. 만족할만한 전기차다. 벤츠라는 프리미엄 브랜드임에도 5,218만 원이라는 가격, 차급에 비해 넘치게 적용된 편의장비, 안전 장비, 재미까지 더한 MBUX, 국내 인증 수치를 우습게 뛰어넘어버리는 연비와 주행가능거리.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전기차 시장에서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 글을 쓰는 기자는 EQA 발표와 동시에 계약했고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시승을 통해 확인했다. 이후 장기 시승을 통해 EQA의 소소한 이야기, 전기차 이야기로 이어갈 것을 약속드린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인프라의 문제를 먼저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고장 나고 방치된 충전시설들이 많다. 평화누리 주차장에 있는 6기의 충전기가 그렇다. 설치된 지 1~2년은 됐는데 여태 사용불능 상태다. 충전시설 확장도 필요하지만, 이미 설치된 충전기들만이라도 필요할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다임러그룹 자회사에서 생산한다는 배터리 성능은 왜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지 모를 일이다. EQA에 앞서 들여온 EQC는 주행가능거리 등의 문제로 아예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국산 배터리 좋다는데 벤츠에 도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옵션 패키지를 선택하면 기본 모델에 제공되는 열선 스티어링을 포기해야 한다. 윗급 옵션을 택하면 기본 제공되는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한 상품 구성이다. 이유야 있을 테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이해하기 힘들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