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페의 반대. 아이오닉5다. 쿠페가 몸에 딱 맞는 수트처럼 멋스럽다면 아이오닉5는 품이 넉넉한 여유로운 재킷 같다. 굳이 따지자면 SUV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전기차 디자인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포니를 오마쥬했다는 디자인에서 현대차의 역사를, 파라매트릭 픽셀을 테마로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서 현대차의 미래를 읽는다. 과거와 미래를 한 몸에 담은 아이오닉5를 타고 달렸다. 시승모델은 롱레인지 프레스티지 트림 2WD 모델이다.

얇게 만든 시트는 제한된 실내 공간을 더 넓게 만드는 효과를 내다. 게다가 편했다. 엉덩이와 허리는 물론 뒤로 누이면 종아리까지 받쳐줘 온몸의 힘을 쫙 빼고 편하게 쉴 수 있다. 12인치 모니터 두 개를 이어붙인 화면은 높은 해상도로 다양한 정보를 깔끔하게 보여준다. 2열 시트도 슬라이딩은 전동식이다. 조수석 어깨쯤에 3개의 버튼이 있어 조수석과 2열 좌우 시트를 누구나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지붕을 통으로 덮은 글래스루프는 시원하게 차창 밖을 보여준다.

E-GMP.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한 첫 전기차다. 내연기관과 공유하는 플랫폼이 아닌, 오직 전기차에 최적화한 플랫폼이라는데 의미가 크다. 무거운 배터리를 차체 중심 낮은 곳에 배치했다. 이런 배치가 공간 활용은 물론 주행 성능까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요인이 된다. 마치 미드십엔진처럼 중심을 딱 잡고 달리는 맛이 압권이다. 아니, 미드십보다 훨씬 더 우월한 반응이다. 코너가 이어지는 와인딩 코스를 달려보면 단박에 느낌이 온다.

휠베이스를 3,000mm로 한껏 늘려 객실 공간을 넓혔다. 긴 휠베이스는 흔들림을 억제하는 효과까지 있다. 대신, 유턴하거나 회전할 때 공간이 넓어야 한다. 2차선 국도에서 유턴할 때 공간이 빠듯했을 정도다.

휠 하우스를 꽉 채우는 20인치 휠은 보기 좋은 차의 비례를 완성한다. 물론 주행 성능을 높이는 데에도 한몫한다. 동시에 연비를 끌어내리는 반대급부를 감수해야 한다.

롱레인지에는 72.6kWh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된다. 2WD의 최고출력은 160kW 수준으로 217마력이다. 공차중량 1,950kg으로 마력당 무게비 따져보면 8.9kg 정도다. GPS 계측기를 측정해 살펴본 0-100km/h 가속 시간은 7.67초. 조용히 하지만 힘 있게 밀고가는 가속감이 인상적이다.

1회 충전으로 주행가능한 거리는 401km로 인증을 받았다. 당초 기대했던 수준에 조금 못 미친다. WLTP 기준보다 더 깐깐한 국내 인증 기준 때문이다. 차분하게 경제운전을 한다면 이보다 더 멀리 움직일 수 있다. 다만 겨울에는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는 만큼 주행가능거리도 따라서 줄어든다는 점, 전기차 운전자라면 꼭 알아둬야 한다.

편하게 탔다. 고속주행도 하고 시속 100km 가속도 몇차례 했다. 연비 좋게하려고 찾하게만 탄 건 아니라는 얘기. 60km 정도 주행한 평균 연비는 6.3km/kWh였다. 공인복합 연비를 뛰어넘기는 그리 어렵지 않겠다.

엔진이 없어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다. 노면 소음도 중저속 구간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노면 굴곡을 따라 흔들리는 정도의 느낌이 오지만 그마저 낮은 무게중심, 타이어와 서스펜션 등이 상당한 부분 걸러내고 있다.

가속하면 거친 엔진음 대신 모기 소리 같은 모터 소리가 들린다. 빠르게 속도를 올리는데 바람 소리뿐. 엔진 소리가 사라진 자리가 허전해서 조용했다. 그 빈 자리를 바람 소리가 어느 정도 밀고 들어오지만 다 채우는 건 아니다. 8개의 스피커를 갖춘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를 통해 들리는 소리가 고급이다. 조용해서 오디오 소리를 더 잘 즐길 수 있다.

충전소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그렇다고 충전 편의성이 비례해서 좋아지는 건 아니다. 전기차도 급증하고 있어서다. 사람들은 빠르게 충전하기를 원한다. 350kWh 용량의 급속충전기를 이용하면 20분 정도에 80%를 충전할 수 있고 5분 충전하면 100km를 달릴 수 있다. 아이오닉5에는 400V/800V 멀티 급속충전 시스템을 도입해 빠르고 안정적으로 충전할 수 있다.

그래도 바람직한 건 집밥이다. 완속 충전기를 집에 설치해 심야전력으로 충전하는 게 좋다. 전기차를 타면 생활 패턴도 그에 맞춰 변해야 한다. 아무 때나 주유소를 찾아가는 습관은 전기차 시대엔 어울리지 않고 적잖은 불편함이 따른다.

현대차가 갖추고 있는 다양한 편의 및 안전장치, 주행보조 장치들이 아낌없이 대거 적용됐다. 수입차들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차간거리를 유지하고 차선을 넘지 않고 중앙으로 달리며 스스로 속도를 줄일 뿐 아니라 고속도로에서는 방향지시등을 켜면 차선변경까지 해낸다. 터널 앞에서 열린 차창을 닫아주고, 고속도로 곡선구간이나 진출로에서는 속도를 줄인다. 보조 운전자를 함께 태우고 달리는 기분을 느낀다. 편하고 안전하다.

비상시를 대비해 SOS 버튼이 지붕 앞부분에 있다. 긴급 상황에서 이 버튼을 누르면 차의 위치가 자동 전송되며 콜센터와 연결돼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 혼자 운전할 때도 누군가의 지원을 즉시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롱레인지 2WD 기준 판매가격은 익스클루시브 5,206만 5,900원, 프레스티지는 5,703만2,025원이다. 서울시 기준 전기차 구매보조금 1,200만원을 빼면 소비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4,000만~4,500만원 정도다. 이 돈 낸다고 당장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올해 생산량을 훨씬 웃도는 계약이 이뤄졌으니 지금에서야 차를 사려고 계약한다면 아마 내년 상반기는 지나야 차례가 올 것이다.

그래도 바야흐로 전기차 시대다. 줄이 길지만, 그 끝에 서서 차분히 기다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 긴 줄의 어디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있다. 선택한 차종이 롱레인지가 아니고 2WD도 아니어서 가장 늦게 생산한다는 소식이다. 시승차들을 두루 살펴보니 그중 그라비티 골드매트 컬러가 가장 좋아 보인다. 선택을 잘했다 싶다. 최종 선택은 기아 EV6까지 보고 할 예정이다. 마음에 딱 드는 차를 택할지, 먼저 나오는 차를 택할지 행복한 고민의 시간을 길게 즐길 생각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디지털 사이드미러는 상징적이지만 실용적이지 않다. 사이드미러를 카메라로 대신하는 것은 바람의 저항을 줄여 조용하고 연비를 높이기 위해서다. 카메라는 작게 드러나지 않게 배치해야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큼직한 카메라를 사이드미러 대신 배치했다. 바람의 저항, 소음, 연비 악화를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럴 거면 왜 디지털 사이드미러를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법규상 사이드미러가 필수요소여서 부득이한 면이 있다. 기술은 앞서고 법은 바뀔 기미가 없다. 법에 발목 잡힌 기술이 딱 이 경우다.

고속도로 주행보조시스템에 포함되는 차선변경 기능은 절반 정도 성공하는 것 같다. 변경하려는 차로가 비어있고 점선인 상태에서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정도 기능도 없는 대다수 수입차에 비하면 훨씬 앞선 수준이지만 며칠 전 타본 테슬라 모델Y에 비하면 좀 더 다듬어야 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