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경영 시대를 시작하는 현대차에 드리는 고언

현대차가 2030년부터는 가솔린, 디젤 등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하는 소위 “엔진 신차”는 출시하지 않고 2025년에는 전기차(BEV) 판매목표를 100만대로 설정했다는 소식이다. 창사 이후 지속해온 내연기관 중심체제에서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이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또 전동화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 시장의 화두인 자율주행, 도심의 하늘에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모빌리티까지 사업 영역을 단순 자동차 생산/판매에서 복합 서비스 개념으로 변모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 10월 임시이사회를 통해 수석부회장에서 현대차그룹의 명실상부한 회장으로 선임된 정의선 회장도 취임사에서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고 그 결실을 모든 고객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또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활동은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며 “항상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 우선, 고객 행복, 고객 중심, 고객과의 소통, 배려…. 소규모 자영업자든 대기업이든 경영자가 어디에서 한 말씀 할 때 고객이라는 단어를 빼먹는 걸 본 적이 없다. 거기에 더해 항상 고객이 우선이고 고객을 사랑하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 고객이 우리 물건을 팔아줘서 우리 회사가 존재하고 우리가 매달 월급을 받고 연말에는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받아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고객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어떻게 그를 대하는가. 고마운 나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고 고민하지 않을까? 신세 진 분을 연말에 댁으로 찾아뵐 때 어떤 선물을 드려야 그분이 정말로 좋아하고 즐거워하실까를 고민하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현대차가 국내는 물론 세계의 쟁쟁한 자동차 회사들과 어깨를 맞대고 세계 각지의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고 대견한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소비자들의 불만과 질시,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외시장에서의 소비자 반응은 그렇다 치고 국내만 보자. SNS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그 비난의 강도나 방법도 발전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수많은 기사, 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자동차, 특히 현대차에 관한 내용은 나도 모르게 관심을 두고 보게 되고 특히 불만이나 비판하는 기사는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내가 근무할 때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소비자들이 불만을 토로할 방법이나 경로가 많지 않아 큰 문제가 되어 언론에 보도가 되기 전까지는 알기가 힘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입사 후 본사가 있는 계동 현대빌딩으로 출근할 때 항상 보이던 자동차 시위였다. 출고차에 불만을 가진 고객이 차를 현대빌딩 앞에 가져다 놓고 차 문 잠그고 키를 빼버리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차 밖에는 온통 현대차 욕하는 플래카드나 스프레이로 써 내려간 욕설과 하소연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처음에는 신기해서 선배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저 차는 왜 저기에 항상 놓여있냐고. 선배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원래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나도 처음에는 신경 쓰이다가 항상 차가 놓여있으니 일상처럼 되어 무뎌져 버리고 말았다. 원래 저 자리에는 항상 그 차가 놓여있는 게 정상인 것처럼. 선배들이 이야기해 주는 고객이란 존재는 모두 블랙 컨슈머들이었다. 조금만 틈을 보이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면 가차 없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였다.

사양을 잘못 적용했거나 상품성에서 불만이 발생했을 때 경영층에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 제목은 항상 “***관련 고객 대응 방안”과 같은 방식이다. (아마 지금도)

대응이란 무슨 의미인지. 응대도 비슷한 의미인 것 같고. 대항은 또 무슨 뜻인지. 사전을 한번 찾아보자.

대응 : 어떤 일이나 사태에 맞추어 태도나 행동을 취함.
응대 : 부름이나 물음 또는 요구 따위에 응하여 상대함.

모두 고객이 제기한 문제에 관해 설명하거나 이해시키고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럼 대항은 무슨 의미인가.
대항 : 굽히거나 지지 않으려고 맞서서 버티거나 항거함.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고객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응이나 응대인데 사실은 대항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항은 고객의 요구를 꺾고 거부하고 무시하고 버텨서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항하면 누가 좋아할까? 당연히 경영층일 것이다. 주인의 곳간을 지켜 양식이 줄어드는 것을 막는 것이 노비의 역할이니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는 노비를 좋아할 수밖에.

그러니 판매던, 정비(A/S)든 품질이든 고객 응대라는 이름으로 고객에게 대항(!)해 왔을 것이고 잘 대항한 선배들의 성공을 본 후배들도 어찌하면 더 잘 대항할 수 있는지 그 노우하우를 전수받아 열심히 대항했을 것이다.

계동 현대빌딩(나중에는 양재 사옥 앞에도) 앞에 차가 놓여있는 경우도 고객을 설득하고 적절한 배상이나 보상을 하기보다는 일단 아침에 회장님 출근길에 못 보도록 저 멀리 치워놨다가 다시 가져다 놓기도 하고.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습관적으로 후배들에게 불만을 이야기하는 고객에게는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되고 가능한 한 최소한의 보상이나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치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일이 회사 내에서 어디 우리 부문에만 있었겠는가?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부문이 당연히 경쟁하듯이 대항(대응)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우수사례를 공유하면서 포상도 하곤 했을 것이다. 100억 들여서 처리할 일을 10억으로 막으면 그 얼마나 잘한 대응인가!

지점장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힘든 고객을 만나 기가 찬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고객에게는 잘해주지 못하는 내가 안타깝기도 했다. 회사에 좀 더 나은 보상을 해주자고 건의해봤자 돌아오는 건 쓸데없는(?) 전례를 만들어 고객들이 떼로 몰려오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질책뿐일 것이고.

그놈의 책임이 문제다. 책임은 최고경영층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아니 직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내일 퇴사할 생각이라면 몰라도. 고용인이 무슨 자격으로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연봉이 몇백억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결국 현대차 직원들의 고객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대항뿐이다.

앞에서 정의선 회장의 취임사의 한 부분을 이야기했었다.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항상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전기차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자율주행차에 시티모빌리티 등 거대하고 웅장한 중장기 계획을 구상하고 그 계획이 성공하려면 정 회장의 말대로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물건을 사주고 서비스를 이용해주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직원들은 고객을 존중해야 하고 그들의 불만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대항하지 말고…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