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쉬웠다. 디펜더. 한국에선 만날 수 없었던 존재다. 배기가스 기준 등의 이유로 한국 판매를 미뤄왔던 디펜더가 풀체인지를 계기로 한국 상륙의 길이 열렸다. 이로써 레인지로버, 디스커버리, 디펜더로 이어지는 풀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이제야 한국을 찾은, 72년 역사의 디펜더에 전하는 인사,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디펜더는 랜드로버의 뿌리다. 디펜더에서 랜드로버가 시작됐다. 지프의 랭글러가 있다면 랜드로버에는 디펜더가 있다.

오리지널 디펜더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숏바디인 90과 롱바디인 110 두 개 트림 중 110이 먼저 한국을 찾았다. 양평, 유명산 일대를 돌아보는 오프로드에서 랜드로버 디펜더 110을 시승했다. 무늬만 SUV인 차들은 엄두를 내기 힘든 길을 디펜더는 보란 듯이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움직였다.

5018x1996x1,967mm 크기다. 랜드로버의 최신 D7x 아키텍처를 이용해 경량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다. 29,000Nm/°에 달하는 높은 비틀림 강성을 가졌고, 랜드로버 역사상 가장 견고한 차체로 소개하고 있다. 바디-온-프레임보다 3배 더 견고하다는 설명이다.

높은 차체, 짧은 오버행은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몸이다. 접근각, 이탈각을 충분히 확보했고, 긴 차체를 보완하기 위해 차체를 바짝 들어 올려 뱅크각도 충분히 확보했다. 접근각 38도, 뱅크각 28도, 이탈각 40도다. 그곳이 길이라면 못 갈 이유가 없고, 길이 아니어도 충분히 주파해낼 수 있는 몸이다.

사각형 휠 아치와 견고한 수평 라인 등이 강인한 오프로더의 면모를 완성하고 있다.
원형 메인 램프와 두 개의 큐브 램프로 구성된 LED 헤드라이트는 유머스럽다. 투박한 그릴은 오리지널리티를 간직하고 있다.

2열 루프에 있는 ‘알파인 라이트’는 ‘와우 포인트’다. 다락방의 창문처럼 차 지붕 모서리에 창을 만들어 답답한 시야를 틔워준다. ‘사이드 오픈 테일게이트’와 외부에 장착한 스페어타이어 등은 오리지널 디펜더의 흔적이다.

콘솔박스에는 냉장 기능이 있다. 차와 함께 거친 길을 움직이느라 바짝 바른 입을 달래줄 음료수를 차갑게 보관할 수 있다. 깊은 오프로드에서 맛보는 차가운 물맛이 달다.

3m를 넘는 3,022mm의 휠베이스 덕분에 실내 공간을 넓게 확보했다. 2열 레그룸이 1m에 가까운 992mm다. 기본 1,075ℓ인 트렁크 공간은 최대 2,380ℓ까지 확장된다.

인테리어는 센터페시아 가로지르는 마그네슘 합금 크로스 빔 노출형 구조로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노출형 콘크리트 구조물처럼 구조물이 도어와 대시보드에 노출되어 있다. 차체의 보디 구조를 드러내는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피비프로(PIVI Pro)는 아주 다양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퀄컴의 최첨단 스냅드래곤 820Am 칩과 첨단 QNX 운영 체제를 이용해 반응이 무척 빠르다.

10인치의 터치스크린에는 SK텔레콤과 공동 개발한 T맵 순정 내비게이션이 탑재됐다.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에 대응하고 블루투스로 두 대의 스마트폰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다.

랜드로버의 자랑, 인제니움 2.0ℓ 4기통 디젤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 조율을 거쳐 240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43.9kgm으로 1,400~3,750rpm 구간에서 폭넓게 발휘된다. 공인 복합 연비는 9.6km/L으로 4등급이다. 공차중량은 2,50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10.43kg이 된다. 가솔린 엔진인지 디젤 엔진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소음 진동이 디젤 엔진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이다.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해 218mm의 지상고는 75mm를 높인 뒤 다시 70mm를 추가로 높일 수 있다. 최대 145mm가 더 높아지는 것. 최대 도강 높이는 900mm다. 좌우측 사이드미러에 배치된 센서가 물 깊이를 파악해 표시해주는 ‘도강 수심 감지 기능’이 전 트림에 기본 적용됐다. 주변 수심을 알 수 있어 차로 건너갈지 돌아갈지를 운전자가 판단할 수 있다. 차에서 내리기 위해 안전띠를 풀면 차 높이가 50mm 낮아진다.

전자동 지형 반응시스템에는 컴포트, 에코, 스노, 머드, 샌드, 암석 모드. 도강 프로그램을 갖췄다. 온로드는 물론 오프로드에서도 주행상황, 노면 상태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머드, 샌드 모드에서는 슬쩍슬쩍 타이어 슬립을 허용하며 마찰력을 확보하고 암석 모드에서는 한치도 미끄러지지 않고 네 바퀴 직결상태로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 디펜더 110의 최대 등판각은 45도. 시승코스에서 가장 경사가 심한 길이 22도였으니 디펜더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보닛 투과해 전방 시야 확보해주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가 기본 적용됐다. 30년 자동차 기자 생활에 처음 체험하게 되는 신기술이다. 보닛 아래 있는 타이어 주변의 노면 상황이 모니터로 보인다. 사방에 장애물이 널린 거친 길에서는 아주 유용한 장치다.

클리어 사이트 룸미러도 있다. 룸미러가 스크린으로 변해 차의 뒷부분을 HD급 화질로 보여주는 것. 차 안에 사람과 짐을 많이 실었을 때 룸미러를 통한 후방 시야가 방해받는데, 클리어사이트 룸미러를 사용하면 깨끗하고 선명한 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최고의 오프로더지만 온로드에서도 기대 이상의 주행 느낌을 전해준다. 높은 차체지만 어댑티브 다이내믹스가 초당 500회 속도로 노면을 파악해 연속가변 댐핑을 통해 충격을 효과적으로 조절해준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도 거칠지 않다. 충격을 품어 안고 넘는다.

오프로드에선 탱크처럼 밀고 가는 터프가이지만 온로드에서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조절하는 섬세한 모습을 보인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힘을 끌어모아 탄력을 받을 때까지 약간의 시간은 필요했다. 유명상 와인딩 로드를 굽이굽이 넘어갈 때는 짜릿한 재미를 느낀다. 높은 차체가 적당히 기울며 코너를 돌아나가는 느낌이 즐겁다. 적당한 불안감이 주는 재미다.

SUV 바람이 불며 너도나도 SUV 시장에 뛰어드는 시대다. 사륜구동조차 갖추지 않고 보디 스타일만 SUV인 차들이 부지기수인 요즘, 디펜더를 보며 SUV의 진가를 맛본다.

시승차는 익스플로러 팩이 적용돼, 사이트 기어, 루프랙, 스노클링 등의 장비가 추가로 장착되어 있었다. 이밖에 필요에 따라 어드벤처팩, 컨트리팩, 어반팩 등의 패키지 옵션이 준비되어 있다.

오프로드 마니아들에게 참 좋은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다. 반가운 일이다.

디펜더 110 판매가격은 D240 S 8,590만원, D240 SE 9,560만원, D240 런치 에디션 9,180만원이다.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는 하지만, 랜드로버라는 브랜드, 그리고 디펜더의 명성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가격이 걸린다. 거친 길에서 움직이는 오프로더라면 이런저런 수리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돌에 타이어가 찢길 수도 있고, 나뭇가지에 차체가 찍힐 수도 있다. 범퍼가 깨질 수도 있다. 9,000만원 전후의 가격이면 수리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수리비 걱정에 오프로드 들어서기가 망설여지겠다. 사양을 낮추더라도 좀 더 낮은 가격에 만날 수 있는 디펜더를 기대해 본다. 디펜더 90을 기다리는 이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