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이삭이 올라오는 날, 용인 스피드웨이에는 독일에서 공수된 26대의 포르쉐 차들이 도열해 있었다. 포르쉐 월드 로드쇼(PWRS)를 위해서다. PWRS는 포르쉐 종합선물세트다. 포르쉐 뱃지를 단 모든 차를 경험할 기회다. 독일 본사가 진행하는 행사여서 국내 시판 전인 차들을 미리 맛볼 기회이기도 하다.

그중의 하나 타이칸이다. 포르쉐 최초의 순수 전기차로 올해 PWRS의 주인공이다. 행사에는 타이칸 터보와 타이칸 터보 S가 등장했다. 718 박스터 T, 911 GT3 RS 등도 타이칸의 그늘에 가려버렸다.

타이칸 운전석에 앉아 용인 스피드웨이 두 바퀴를 돌 수 있었다. 때마침 내리는 비로 전력 질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타이칸의 성능을 맛보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타이칸 터보 S를 타고 태풍 속으로 달려갔다.

선명한 계기판은 운전석을 중심으로 곡선으로 배치됐다. 몰입감이 있다. 당연히 시동 버튼은 왼쪽에 있다. 스티어링휠 오른쪽 아래로 작은 변속레버가 있다. 센터페시아에는 모니터 두 개로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시트는 몸을 편하게 받쳐준다. 배터리는 바닥에 깔았다. 뒷좌석에 다리를 딛는 공간은 배터리를 배치하지 않아 깊게 파놓았다. 덕분에 좀 더 편하게 앉을 수 있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엔진 소리가 살짝 들린다. 르망 24시에서 활약했던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의 엔진 소리를 카피해 스포츠카의 맛을 살린 소리다. 달리는 중에도 변속이 일어날 때는 그 소리가 들린다. 선명하게 들리는 건 아니다. 귀를 기울여 신경을 써서 들어야 들린다.

엔진소리 없이 쏜살같이 달리는 경험은 생소했다. 전기차의 엉뚱한 해석이다. 전기차는 친환경 차인데, 포르쉐는 스포츠카로 만들었다. 포르쉐가 만들면 그렇게 된다. 포르쉐는 스포츠카니까.

공차중량 2.4t으로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새털처럼 가볍다. 힘이 워낙 세서다. 타이칸 터보 S는 런치스타트를 할 때 오버부스트를 포함해 761마력을 내며 0-100km/h를 2.8초 만에 주파한다. 9.8초 후면 시속 200km가 펼쳐진다. 가속페달을 바닥에 붙여 10초가 지나면 시속 200km에 도달하는 것. 엄청난 힘. 가속페달을 밟는 도중에 발의 힘을 빼야 했을 정도다. 2 랩을 도는 동안 바닥까지 가속페달을 밟을 기회는 단 두 번 있었을 뿐이다.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컨트롤, 에어서스펜션, 리어액슬 스티어링, 세라믹 브레이크, 앞뒤 차축에 각각 배치한 모터를 이용한 사륜구동 등 포르쉐의 화려한 기술로 차체의 안정감은 대단했다. 젖은 노면에 160km/h까지 가속한 뒤 감속하며 코너를 돌아나가는데 불안한 느낌이 크지 않았다.

고속으로 달리는 중에도 엔진소리가 없다. 레이더를 피해 적진에 침투하는 스텔스기 같다. 시승 도중 폭우를 만나 속도를 낮춰야 했다. 서킷은 잔뜩 젖었지만 타이어 그립은 살아있었다.

뒤에는 2단 변속기가 적용됐다. 저속과 고속에 각각 대응하는 2단 변속기는 포르쉐가 처음 적용하는 기술. 앞뒤로 영구자석 동기식 모터가 적용돼 사륜구동으로 움직인다.

타이칸의 눈물, 에어 인테이크는 그냥 만든 게 아니다. 공기저항을 줄여준다. 그 효과로 주행거리는 더 늘어난다. 하나하나에는 그렇게 다 이유가 있다.

유럽의 WLTP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는 터보 S가 412㎞, 터보가 450㎞다. 국내 인증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WLTP보다 훨씬 박한 것이 국내 인증 기준임을 감안하면 이보다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타이칸에는 800V 전압 시스템을 적용했다. 덕분에 충전이 빠르다. 5분 충전하면 100km를 달릴 수 있다. 배터리 잔량 5%에서 80%를 충전하는데 22분 30초가 걸린다.

서킷에서 마음껏 달리고 싶었으나 태풍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스포츠카로 불리는 다른 차들보다 강렬했다. 태풍 속이어서 더 짜릿했다. 타이칸은 오는 11월 국내 출시 예정이다. 그때 다시 만나기를 기약해 본다.

테슬라 모델S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가격이 문제겠지만, 승부는 자명해 보인다. 타이칸은 모델S 이상의 성능을 확보했다. 테슬라가 타이칸만큼 차를 만드는 날이 오기는 할지 모르겠다.

718 박스터 T, 911 GT3 RS 등 쟁쟁한 차들이 있었지만, 타이칸에 취한 몸은 그들을 제대로 느낄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10년 넘게 해마다 참여해온 포르쉐 월드로드쇼, 올해가 가장 진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또 하나의 변수였다. 행사장 방역은 물론 운전자가 바뀔 때마다 실내 소독을 해준 이들의 수고에 감사를 전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