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속도에서 만나는 놀라운 안정감,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코너, 거친 제동에 여유 있게 답하는 반응. 역시 스포츠카의 모범이라 할만하다. 포르쉐의 8세대 911이다.

1963년에 처음 등장한 포르쉐 911이 이제 8세대로 진화했다. 8세대 911 카레라S를 타고 시승에 나섰다.

8세대에 이를 때까지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고집스럽게 지키는 몇 가지 전통이 있다. 개구리를 닮은 디자인 실루엣, 원형 램프, 왼쪽에 위치한 시동키, 계기판 중앙의 rpm 게이지, 뒤로 배치한 수평대향 엔진 등이다. 한눈에 알 수 있는 911의 DNA다. 예외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의미 있는 변화도 이뤄냈다. 출력을 30마력 더 높여 450마력을 확보했다. 신형 8단 PDK를 도입하고 연료 분사 과정, 터보와 인터쿨러의 레이아웃을 조정해 얻은 결과다. 차체 폭을 45mm나 더 키웠고 전동팝 아웃 핸들도 추가했다.

차 높이 1,300mm. 겸손해야 한다. 허리를 잔뜩 숙여야 운전석에 들어설 수 있어서다. 낮은 시트 때문이다. 자세를 낮춰야 포르쉐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다. 길 위에 의자를 놓고 앉은 기분. 스포츠카로서 바람직한 구조지만 드나들기 불편하다.

뒤로 배치한 엔진룸 커버에는 암호처럼 숨겨놓은 디자인이 있다. 두 개의 빨간 램프 좌우로 각각 9개씩의 세로 바를 만들어 놓은 것. 911이라는 이름, 992라는 코드네임을 뜻하는 디자인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스토리를 담아놓았다.

인테리어는 직선이다. 견고한 수평축을 강조하고 있다. 스포츠카는 직진이라는 듯 직선으로 승부한 인테리어다. 계기판은 곡면이다. 커브 모니터처럼 집중해서 몰입감을 높였다.

5개의 원으로 구성한 계기판 중앙은 rpm 게이지가 자리했다. 스포츠카니까. 좌우로 다양한 정보를 띄울 수 있다. 지도, 주행 정보, 차량 정보, 주행 모드, 타이어 공기압, 지포스 등을 볼 수 있다.

4인승이지만 뒷좌석은 좁다. 성인 한 명이 앉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뒷좌석은 포기하고 그냥 2인승으로 즐기는 게 낫겠다. 450마력을 조율하는 8단 PDK는 장난감 같은 변속레버로 조작한다. 포르쉐의 유머일까. 장난스럽다.

넓은 터치스크린은 반응이 빠르다. 손가락이 가까이 가면 미리 반응한다. 햇볕이 강한데 모니터는 선명하게 보인다. 주행 모드에 웨트 모드가 있다. 젖은 노면에서도 확실한 그립을 유지하는 주행 모드다. 이밖에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인디비듀얼 모드가 있다.

노멀 모드에서도 엔진 사운드는 삼삼하다. 버튼을 눌러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낮지만 좀 더 박력 있는 엔진 사운드가 귀에 박힌다. 그렇게 조용한 편은 아니다. 엔진 사운드에 따라 심장 박동이 커진다.

일정 속도에 다다르게 되면 스포일러가 펼쳐지는데 그전에라도 운전자가 버튼을 눌러 스포일러를 펴고 접을 수 있다.

음성명령 시스템은 폭넓게 반응한다. 근처에 은행, FM 라디오, 블루투스 오디오 등의 명령에 반응한다. 조금 더 알아듣는다. “추워요” 하면 “잠시 후에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하고 온도를 높여준다. “더워요” 하면 온도를 낮춰준다.

적당히 묵직한 반발력을 보이는 스티어링휠은 2.5 회전한다. 움직이면 20인치 타이어와 단단한 서스펜션을 통해 노면의 미세한 느낌들이 그대로 전해진다. 단단하고 솔직하다.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노면 충격을 맞받아치는 느낌이다. 아주 단단하다. 단단하지만 거칠지 않다. 그럼에도 차체는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다.

수평대향 6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뒤에 배치한 리어 엔진 리어 드라이브 방식이다. 뒤에서 강하게 밀고 간다. 100km/h에서 rpm은 8단에서 약 1300에 머문다. 시프트다운을 이어가면 3단을 거쳐 2단까지 내려간다. 2단에서 시속 100km를 커버하며 7,100rpm을 보인다. 경이롭다. 이래서 포르쉐, 이래서 스포츠카다.

속도를 높일수록 엔진 소리가 고개를 쳐든다. 바람 소리에 지지 않는다. 빨리 달릴 때 더 안정된 느낌이다. 중저속에서 조금 거칠고 튀는 느낌이 고속으로 접어들며 오히려 부드럽고 안정된 자세를 찾는다.

실내는 조용하지 않다. 타이어, 바람, 노면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조용한 실내와는 상극이다. 이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찡그리면 911과의 인연은 포기하는 게 낫다. 환한 미소를 띤다면 궁합이 맞는 사람이다. 그래야 911 오너의 자격이 있다.

고속 질주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도로 끝으로 빨려 들어가는 몰입감이다. 단단해서 편한 차체, 정확하게 작동하는 브레이크와 조향이 스포츠카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이드 미러를 통해 보이는 볼륨감 있는 911의 엉덩이를 보는 재미도 크다.

힘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8단 PDK는 빠른 변속으로 성능과 효율을 높여준다.

드라이브 어시스트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만 있다. 조향 지원과 관련해선 이렇다 할 보조 장치가 없다. 차선이탈 경고, 방지 장치는 없다. 조향은 오로지 운전자의 몫으로 남겨뒀다. 운전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라는 의미로 풀어본다.

시속 100km에서 강한 제동을 시도했다.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체는 부담 없이 받아낸다. 잠깐 기울었을 뿐 이내 수평을 유지하며 제동을 마친다. 앞이 바짝 고개를 쳐들고 버티는 느낌이다.

코너에서는 빠른 속도에도 여유롭다. 조금 더 몰아붙여도 버틸 기세다. 뭐 이 정도쯤이야 하는 반응이다. 달리고 돌고 서는 느낌이 역시 최고다. 이래서 포르쉐구나 싶다.

일상 속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스포츠카다. 이 상태 그대로 서킷 위에 올려놓아도 경주용 차로 충분하겠다.

GPS 계측기를 장착해 0-100km/h 가속 테스트에 나섰다.

450마력, 공차중량 1,535kg. 마력당 무게비는 3.41kg, 메이커가 밝히는 0-100km/h 가속 시간은 3.5초.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적용한 경우)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를 적용해 런치 컨트롤이 가능하다. 잠깐 사이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8단 PDK의 직결감 강한 변속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대단한 가속감이다. 7차례 테스트 결과 가장 빠른 기록은 3.75초, 평균 3.88초였다.

연비테스트도 했다. 파주-서울간 55km 구간에서다. 포르쉐 911의 연비를 따진다는 게 큰 의미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실주행 연비를 보일지 체크해 본다는 의미다. 에어컨을 끄고 노멀 모드로 달렸다. 공인 복합 연비는 8.2km/L.

효율보다 성능을 앞세우는 스포츠카지만 엔진 스톱 시스템을 갖추는 등 최소한의 연비 대책을 마련해두고 있다. 자유로에서의 정속주행, 올림픽대로에서 만난 약간의 교통체증, 교통량이 많은 도심 주행을 거쳐 목적지까지 55km를 달린 최종 연비는 12.5km/L. 차분하게 다루면 이처럼 좋은 연비를 만날 수도 있다. 물론 큰 의미는 없는 일이다. 포르쉐 타고 연비 운전하는 건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판매가격은 1억 6,090만 원부터다. 시작 가격이다.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460만 원, 나이트 블루 메탈릭 컬러 180만 원, 투톤 가죽 인테리어 컬러 650만 원, 선루프 320만 원 등등 옵션 하나하나 선택할 때마다 가격이 차곡차곡 올라간다. 이런저런 옵션을 더한 시승차는 2억 1,030만 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주행 보조 시스템이 아쉽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적용되어 있지만 차선이탈 경고장치는 없다. 조향에 관해서는 경고, 보조, 개입 등이 일체 없다. 운전자가 직접 해야 한다.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운전하는 재미를 즐기는 차인데 왜 차에 운전을 맡기냐는 의미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래도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피곤해서 편히 운전하고 싶을 때조차 주행 지원 시스템을 활용한 반자율 운전을 할 수 없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모니터의 연결 부위는 자연스럽지 않다. 이음새가 어색한 것. 계기판 테두리를 없애 상당히 세련된 느낌을 주는데 이음새에서 그 느낌이 무너진다. 좀 더 세련되게 센스 있게 마감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