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요즘 현대차는 SUV 이슈들이 넘쳐난다.

팰리세이드로 시작해서 최근 런칭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GV80까지 계약 개시하자마자 이미 일 년 치 계획을 넘었다느니, 가격이 너무 비싸다느니, 사양이 어떠니 등 차를 살 사람도, 사지 않을 사람도 한 번쯤 들여다보게 하는 내용들로 차고 넘친다.

계약이 너무 많이 되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부터 맘먹은 대로 생산을 훌쩍 증산할 수도 없는 상황도 그렇고 게다가 GV80은 마케팅 책에 나오는 고급 브랜드의 인디오더방식 까지 채용했으니 계약해놓고 출고를 기다리는 카 마스터나 고객이나 모두 목이 빠지겠다.

분위기를 바꿔서, 요즘 자동차 시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전 세계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온통 전기차 개발에 사운을 걸고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강화된, 혹은 강화될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판매되는 자동차의 배기가스 규제기준을 강화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방식의 자동차는 아예 시장에서 쫓아내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하이브리드나 완전 전기차가 아니면 차를 판매할 수도 없는 추세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면 화석연료 승용차의 판매를 줄이고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로 모두 대체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렇게 잘 아는 놈(?)들이 오히려 SUV를 그것도 소형도 아니고 배기가스를 뭉텅뭉텅 뱉어내는 대형급 SUV를 온 세계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을 다투어 내놓고 있으니 어떻게 된 거냐고.

고급승용차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SUV를 내놓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고 이제는 마세라티나 심지어는 페라리에서도 SUV를 내놓는다고 하니 SUV 안 만드는 메이커는 없다는 이야기다.

앞에 언급한 대로 전기차 개발에 사운을 걸고 기존의 화석연료 자동차 생산라인을 걷어내고 수많은 직원을 해고하면서까지 비용을 줄여서 전기차 개발에 집중한다던 회사는 다른 회사란 말인가?

아니다. 현대차를 포함해서 세계의 메이커들이 한 회사 내에서 동시에 하고 있는 일이다. 과연 자동차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100여 년의 역사상 이런 기이한 현상이 있었던가?

지금의 이런 양립된 상황은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시장을 주무르던 선진국이나 선진메이커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규도 맘대로 강화하고 바꿔오며 자행해(?)왔던 만행도 아닌 것 같고 주변 상황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해서 나오는 황당한 일도 아닌 것 같으니.

결국은 ‘시장의 변화’ 때문이라고밖에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말은 없는 것 같다.

요즘 눈만 뜨면 나오는 AI니 자율주행 자동차니 심지어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결국은 시장의 요구, 아니 멀지 않은 시기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상황을 준비하기 위해 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지 관심도 없고 무지몽매한 소비자들을 계몽하기 위해 메이커들이 앞장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SUV가 줄을 서서 출시되고 있는 시장 상황도 그렇다. 현대차가 전 세계 판매의 40%를 SUV로 채우고 그 비중을 더 늘리려고 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시장이 SUV 판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뭐 하고 있냐고 비난을 받기까지 한 적도 있지만, 어쨌든 부랴부랴 쫓아가서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

현대차에 SUV가 없었다면? 이런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판매가 반으로 줄었을 거라고? 그런 바보 회사가 있는가? SUV 출시가 좀 늦어서 비중이 40%에서 30%로 줄거나 그래서 세계 판매량이 줄어들고 성적표의 석차가 좀 바뀌었을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일은 없다.

왜냐고? 현대차와 같은 자동차 메이커는 국가기관이나 공무원이 아니고 팔지 못하면 죽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철밥통이 없다.

SUV가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시장의 큰 흐름이 변화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동차로 자리매김해온 승용차가 그 옆자리를 SUV에 양보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SUV가 소비자가 접근하기 쉽도록 그 성격을 바꿔서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게다가 요즘의 SUV는 어느 회사나 효자상품이다. 일단 SUV는 가격이 올라간다. 시장도 이를 인정한다. 승용차랑은 뭔가 다르니까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SUV라고 해서 생산방식이 승용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SUV라 해도 전용부품은 있지만 많은 부분을 동급 승용차와 공유한다. 이게 매력이다. 전혀 다른 차를 만드는 게 아니다. 부품을 공유한다는 것은 자동차 메이커에게는 엄청난 매력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가격 인상은 경쟁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그래도 수익은 남아야 먹고살고 미래를 향한 투자도 가능하다. 그러려면 기존 차의 판매량을 늘리면 된다. 10만대 팔던 차를 20만대 팔면 해결된다. 그러나 누가 갑자기 달라진 것도 없는 차를 사겠다고 2배나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겠는가? 가격을 반으로 내린다면 모르지만….

결국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차를 많은 투자 없이 빠른 시간에 내놓는 것이다.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다시 현대자동차의 새로 나온 SUV 이야기로 돌아가면. 새로 나온 GV80은 가격표를 안 봐도 시승을 해보지 않아도, 가성비는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그랜저, 제네시스를 보면 안다.

이쯤 되면 현대차 홍보 나왔냐고 공격이 들어올 때가 됐다.

아니다.

현대차는 향후 몇 년간 절체절명의 시기를 보낼 것이다. 굳이 현대차가 몇 년 동안 몇십조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언론에 나온 IR 자료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현대차는 향후 5년 동안 (그 이후도 물론이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다. 미래를 위한 여러 가지 투자가 있겠지만 전기차와 연관된 분야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전기차를 팔기 위해서도 큰 비용이 들어간다.

앞으로 전기차를 팔아야 할 만큼 팔지 못하면 그 나라의 환경규제에 대응하지 못한 벌로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을 낼 정도가 되면 기업 이미지와 상품 이미지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전기차를 많이 팔아야 한다. 그 돈은 무슨 돈으로 충당하나?

현대차의 중기 재무목표에 의하면 2018년 대비 2022년 영업이익률을 3배 이상 향상시키겠다고 되어있다. 2018년 2.1%에서 2022년 7.0%까지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린다는 것. 2020년 이후 연평균 10조 수준의 투자를 매년 하면서도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 판매가 인상, 고수익성 모델 판매강화 등을 통해 영업이익률을 3배 이상 올리겠다는 이야기다.

단적으로 현대차는 앞으로 전기차도 많이 팔기 위해 수익이 좋은 차를 많이 팔아야 한다. 환경규제에 대응하려면 전기차를 많이 팔아야 하고, 전기차를 많이 팔려면 가격 인하도 불사해야 한다. 그래도 못 팔아서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도 돈이 있어야 낸다. 전기차 판매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고수익차를 더 많이 팔아야 하는 것.

지금도 전기차가 있지만 실질적인 판매는 2021년부터 출시한다는 전기차 전용 모델부터고 이를 보조할 차들이 기존 차의 하이브리드, 전기차 모델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올해에 SUV 환경차 모델인 쏘렌토, 투싼, 싼타페의 하이브리드 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출시된다.

결국 수익률이 높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차의 판매가격을 높이고 그랜저나 SUV, 제네시스 브랜드 등 고수익차 판매가 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악순환에 빠진다.

전기차를 못 팔고 고수익차를 많이 팔면 단기적으로는 그나마 낫다. 고수익차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벌금이라도 내고 판촉비라도 사용할 테니까.

반대로 전기차가 많이 팔리고 고수익차가 적게 팔리는 경우는 최악이다. 물론 둘 다 안 팔리는 게 최악이지만… 전기차가 많이 팔리고 고수익차가 안 팔리면 회사 수익은 그야말로 바닥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전기차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차여서 많이 팔리면 그나마 벌어들인 수익을 갉아먹는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철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분간 전기차는 회사의 생산량을 확보해줄지언정 수익에는 도움이 안 되는 차일 것은 분명한데 그 갭을 어디서 메꿀 것인가? 두 마리 토끼를 앞에 둔 현대차가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한 마리라도 놓치면 현대차는 끝장이다.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