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오토다이어리가 ‘유재형의 하이빔’ 연재를 시작합니다. 30년간 자동차 산업 현장에서 자동차 개발에 전념해온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산업 전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컬럼을 연재해 나갈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현대차그룹은 최근 그룹기획조정실 산하에 ‘전동화 추진팀’을 신설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소차, 전기차, 하이브리드차의 개발과 생산을 통합지휘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기준 현대/기아차 합계 167만대의 환경차를 판매하고 이 중 50% 이상을 BEV(배터리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의 바탕이었던 ICE(Internal Combustion Engines 내연기관) 중심의 개발/생산 환경에서 내연기관과 내연기관이 아닌 전동차의 양대체제로 가는 전환점에 서 있는 것.

물론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초기 개발단계부터 사내에는 두 가지 방식의 차량이 존재했지만 그 수요나, 조직, 투자 등은 ICE에 비해서 미비한 상황이었고 매출에 기여하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기술개발 및 일부 지역의 법규 등에 대응하려는 방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수소차 같은 경우는 미래를 위한 기술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제는 환경차, 특히 BEV(배터리 전기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환경차의 본격적인 개발/생산이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상황이 왔다. 불과 10여 년 전에 비해 전기자동차 개발에 대한 세계 자동차 시장의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는 폭스바겐을 필두로 BMW, 벤츠, GM 등 선진 메이커들이 그룹의 역량을 전기차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세계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심지어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현대차도 2020년 CES에서 UAM(Urban Air Mobility)이라는 도심항공 모빌리티를 포함한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런 모습은 미래의 고객들에게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투자자들에게는 좋은 IR 활동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BEV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동력원) 생태계 변화는 코앞에 닥친 절대 과제.

기업에서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 경우는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먼 미래, 또는 새로운 환경을 예측하고 미래에 대비하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선행연구를 위한 경우와, 긴박한 상황변화에 신속하게 대비하기 위해서 기존조직을 활용하고 보강하기에는 시간이나 효율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 경우이다.

현대차 ‘전동화 추진팀’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현대차는 그동안 투자해온 고급차, 고성능차 분야에서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 미래 모빌리티의 전략 키워드로 ‘자율주행’ ‘청정’ ‘커넥티드’ 3가지를 정했다고 한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실제로 해외의 유관기업들과 제휴를 통해 단기간에 필요한 기술들을 확충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자율주행, 커넥티드와 같은 첨단기술을 적용하는 자동차와 ICE라는 기존 화석연료 엔진이 결합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아름답지 못해서 BEV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BEV의 본격 개발은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의 사활이 걸린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연비규제의 강화/EV 의무판매제/ICE 차량 운행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친환경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미 국가별로 매년 4~5% 연비가 강화되고 있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전체 판매량에 비례하여 벌금을 부과하거나 아예 판매를 금지당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유럽/중국의 경우를 보면 2017~2025년 약 8년간 연비를 40% 가까이 향상시켜야 한다. 디젤 왕국 폭스바겐이 오죽했으면 그런 무리수를 뒀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EV 의무판매제를 시행 중이다. 특히 미국은 2018년 환경차 비중이 5% 수준에서 2025년에는 20% 이상으로 늘어나는데 그중 BEV 비중이 70% 이상이 될 전망이다. (FCEV 포함)


<2019 광저우 국제 모터쇼>의 현대차 전시관. 컨셉트카 45와 라페스타전기차를 공개했다.

중국에서도 2020년에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12%까지 환경차를 판매해야 한다. 또, 유럽을 중심으로 한 주요국가들에서는 2016년경부터 아예 ICE 운행금지 법안을 발의해서 빠른 국가는 2025년부터 ICE 운행을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환경차, 특히 BEV를 중심으로 환경차 전략을 강화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최초로 HEV를 개발해 오랜기간동안 그 역량을 축적해온 토요타도 HEV 중심에서 BEV로 차종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 폭스바겐/르노/GM 등은 아예 BEV 중심으로 라인업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코앞에 닥친 생태계 변화에 따라 BEV를 중심으로 환경차 전략을 대폭 강화하는 일환으로 “전동화 추진팀”을 신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수소차 개발에는 앞섰지만 전기차 개발에는 경쟁 메이커에 비해 뒤늦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오던 현대차도 연초에 발표했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 Global Modular Platform)를 기반으로 전기차 기술경쟁력을 강화하고, 소형차 위주의 EV 상품 라인업을 대형 승용 및 MPV, 대형상용차까지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이와 함께 소비자들이 변화된 환경에 쉽게 적응해 선택에 거리낌이 없도록 충전 인프라 확대 등 전기차 사용환경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청사진을 가지고 개발한 차들이 과연 소비자들이 생태계를 갈아탈 만큼 만족스러운 상품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현대차가 구상하는 대로 2025년 이후 BEV를 기준으로 현대차만 50만대 이상을 판매해서 전기차 시장에서 폭스바겐, 테슬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항상 문제는 각자 팔겠다는 목표를 합하면 산업 수요를 넘는다는 것이다. 그중 누군가는 목표를 초과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만큼 못 팔고 뒤처질 것이다.

그나마 전기차 시장은 신생태계다. 유럽의 브랜드들이 100년을 누려온 럭셔리카 시장도 아니고 꿈의 고성능 드림카 시장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출발선이 비슷해서 좋다고 할 수도 있다.


2019년 11월 20일, 미국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19 LA 오토쇼’에서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 전무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 콘셉트카 ‘비전 T(Vision T)’를 소개하는 모습.

현대차가 2,000년 초 승용라인업에 SUV를 추가해 급진적인 시장공략이 가능했던 것도 SUV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생태계였기에 현대차가 쫓아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전기차의 상품성 향상의 한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전문가 사이에서도 많은 물음표가 있었다.

현대차의 연구개발 총괄부회장을 역임한 이현순 현 두산 부회장(CTO)이 현대그룹 재직 시였던 200911, 전기차 학술대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돌이켜 봐도 그 고충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그는 전기차 학술대회에서 “현재의 엔진 자동차와 비슷한 성능을 내는 전기차가 상용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차의 첫 독자 엔진인 알파엔진을 개발하여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차를 개발하게 한 최고의 엔지니어가 그 당시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의 현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을 터인데 말이다.

그런 그도 한 번 충전으로 200km 이상 달리는 전기차, 특히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는 개발이 어렵다고 했다. 특히 배터리의 크기를 대폭 줄이고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중국 BYD의 전기차가 한번 충전에 700km를 달리는데 배터리 무게만 1톤이라는 예를 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경차보다도 작은 전기차를 일본 미쓰비시에서 아이미브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는데 가격이 6,000만 원이 넘고 실 주행거리 AER(All Electric Range)는 100km가 못 되었다고 한다. 토요타도 그 당시 HEV가 아닌 BEV에는 그다지 개발역량을 집중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환경차의 생태계는 어떻게 바뀌었나?

모든 메이커들이 전기차, 특히 BEV 시장에 뛰어들면서 ICE 생산라인을 걷어내고 있다. 10년 사이에 전문가들도 우려하던 전기차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신호로 봐도 되는가?

다행히 그동안 획기적으로 배터리의 용량과 급속충전 기술이 발전했고 배터리 가격도 낮아져 거의 ICE 차급에 맞먹는 가격대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라인업도 경차, 소형차 위주에서 대형차급까지 확장됐다. 물론 아직도 문제는 남아 있다. 한번 충전해서 주행할 수 있는 거리(AER)가 좀 더 늘어나야 하고 가격경쟁력도 좀 더 좋아져야 할 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장려정책이나 전기료 혜택 등도 필요하다. 이제 걸음마를 제대로 하려고 하는 아기가 건장한 청소년이 될 수 있도록 영양을 공급하는 데도 소홀하지 말아야겠다.

ICE와 ICE 아닌 두 가지의 생태계가 양립하는 시기가 온 걸 보니 현대차가 출범한 지 50년 지나면서 이제 다시 새로운 자동차 메이커로 탈바꿈하는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모비스의 사외이사인 칼 노이먼 박사라는 양반이 “앞으로 자동차 시장은 100% 전동화 차량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지금 전동화 차량의 선두는 폭스바겐이지만 그다음은 현대차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고 한다. 들어서 기분 좋은 이야기인 것만은 틀림없다.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