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빨라야 시속 110km. 빠르지 않은 속도에서 13인승 버스는 가장 큰 편안함을 누린다. 많은 것을 버리고, 최소한의 삶을 누리는 안빈낙도의 편안함이 그 안에 있다. 르노 마스터 버스 얘기다.

일전에 기자가 쓴 르노 마스터 밴의 시승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 시승차를 달랬더니 집 한 채를 보내왔다. “

그 집은 빈집이었다. 이제 빈집에 가구를 들였다. 그렇게 밴은 버스가 됐다. 르노 마스터 버스다. 13인승과 15인승이 있다. 시승차로 13인승을 택했다. 그나마 작아서다. 작아도 크다. 운전하기 부담될 정도. 지하 주차장에 들어설 때는 지붕 높이를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아예 지하 주차장을 피하게 되는 이유다.

크다. 엄청 크다. 1종 보통 면허로 다룰 수 있는 가장 큰 차다. 13인승의 경우 5,550×2,020×2,500mm의 크기다. 15인승은 훨씬 더 크다. 그 안에 13개의 시트를 집어넣었다.

앉아보면 개개인의 공간도 그리 좁지 않다. 짐을 싣는 트렁크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짐과 사람을 분리한 것. 시트는 몸에 착 달라붙게 만들어 앉았을 때 딱 좋은 자세가 나온다. 모든 좌석에 3점식 안전띠를 적용했다. 15인승 시트는 등받이 조절도 가능하다던데, 13인승에서는 그게 안 된다. 승차할 때 전동식 발 받침도 15인승에는 기본적용되고 13인승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추가 작업은 가능하다. 실내 바닥, 전동식 발 받침 등을 추가 작업할 수 있고 이밖에도 소비자가 원하는 부분을 추가로 손볼 수 있다. 물론 협력 업체의 손을 빌어야 한다.

웹바스토 무시동 히터가 있다. 시동을 켜지 않고도 더운 바람을 보내주는 장치. 한겨울에 유용한 아이템이다. 엔진이 열을 받기 전에, 혹은 추운 날씨에 차를 세워둘 때 요긴하게 쓰인다. 무시동 에어컨 욕심도 나지만 과욕이다. 그런 건 없다.

운전석에서는 사방이 수납함이다. 1열 공간을 둘러싼 모든 곳에 이중 삼중의 수납공간이 배치됐다. 심지어 머리 위 지붕 쪽에도 칸칸이 공간을 나눠놓았다. 뭔가 잃어버리면 찾아봐야 할 곳이 많다.

승객 공간에는 넓은 차창이 배치됐다. 차창 밖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운행 중 지루함을 덜어주는 포인트가 된다.

르노 마스터는 한국에서 밴과 버스만 판매하지만, 유럽에서는 수십 종의 파생 차종이 있다. 소형 상용차의 거인이라고 해도 좋을 모델이다.

1.5 박스 세미보닛 스타일. 원박스 스타일의 소형 버스보다 조금 더 안전한 스타일이다. 그뿐 아니다. 엔진을 깔고 앉아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쾌적하다. 비슷한 구조의 현대 쏠라티가 있다. 6,000만 원대의 가격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았는데, 마스터 버스는 3,000만 원대로 확 낮췄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무척 높다. 앞서 말했던 자동변속기가 없는 게 마스터의 가장 큰 장벽. 어쨌든 마스터 버스가 이 시장을 크게 활성화 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버스인지라 속도제한을 받는다. 아무리 가속페달을 밟으며 사정해도, 시속 110km에 이르면 요지부동, 더 이상의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최고속도 110km/h를 넘을 수 없게 묶인 것. 아쉬울 건 없다. 오히려 이 부분이 이 차의 장점으로 돋보이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고속질주 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여럿이 편안하게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며 움직이는 게 맞다. 어쩌면 느리다 싶은 그 속도에서 승객들은 최고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110km/h면 충분한 속도다.

163마력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힘이다. 공차중량 2,475kg인 차체를 끌고 부지런히 달린다. 13인승 버스를 혼자 타고 시승하니 제 느낌을 받기 힘들다. 앞에 맥퍼슨 스트럿, 뒤에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을 썼다. 노면 충격을 받을 땐 통통 튀는 느낌도 온다. 승객이 타고 화물칸에 짐을 실으면 적당히 차를 누르는 힘이 작용해 튀는 느낌은 훨씬 덜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본다.

수동변속기에 오토스탑이 적용되어 있어서 클러치를 밟을 때마다 엔진이 되살아나는 낯선 경험을 한다. 차선을 밟을 때는 경고음이 들린다. 차선이탈경보장치가 부지런히 작동하고 있는 것.

경사로 밀림방지 장치는 큰 도움이 된다. 오르막에서 정지 후 출발할 때 몇 초간 브레이크를 잡아줘 그사이에 가속페달을 밟아 출발하면 된다. 차가 밀릴 염려는 없다. 겁먹지 않으면 된다. 변속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잠깐 시동이 꺼진 듯 보여도 클러치를 밟으면 다시 엔진이 가동한다. 수동변속기의 불편함을 거의 대부분 커버해 주는 것. 정체 도로에서 클러치를 자주 조작해야 하는 게 이 차의 수동변속기가 주는 거의 유일한 불편함이다.

르노 마스터는 앞바퀴 굴림이어서 후륜구동보다 미끄러운 길에서 유리하다. 어지간하면 움직인다. 익스텐디드 그립도 큰 역할을 한다. 미끄러운 길에서도 구동력을 고르게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 전륜구동 SUV에서 이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사륜구동에 준하는 구동력을 확보하기도 한다.

공인 복합연비는 9.7km/L다. 에코 모드를 이용해 55km를 조심스럽게 달려본 결과 13.8km/L의 실주행 연비를 만날 수 있었다. 주행패턴, 도로 환경, 탑승객 수와 화물의 양에 따라 연비는 크게 달라진다. 무거운 차지만 에코모드와 엔진 오토스톱이 있고 시속 110km를 넘길 수 없어 기름을 많이 먹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연비에 크게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신경 써서 운전하면 기대 이상의 연비를 확인할 수 있겠다.

경쟁차로 꼽히는 현대 쏠라티에 비하면 마스터 버스의 가격은 파격가다. 15, 16인승으로 팔리는 쏠라티 가격은 6,103만 원부터다. 마스터 버스는 13인승이 3,630만 원, 15인승은 4,600만 원이다.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가격.

오종훈의 단도직입
기대했던 자동변속기는 아직 적용하지 않았다. 6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한다.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자동변속기였다면 판매량이 따따블은 충분하지 않을까. 르노삼성차가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차근차근 대안을 만들어 갈 것으로 믿는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