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차를 밀고 달린다. 심장을 찢어놓을 듯 거친 숨소리다. 마세라티 르반떼 라인업의 최강자 트로페오. V8 3.8ℓ 트윈 터보 엔진을 얹어 590마력의 힘을 뽑아낸다. 최대토크도 74.85kgm에 이른다. 3.8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한다고 하니, SUV보다는 수퍼카에 가깝다. 아니, 수퍼카다. 2억 2,380만 원. SUV라면 비싸고, 수퍼카라면 그 반대다.

C 필러에 붙은 트로페오 배지를 빼면 정체를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보닛에 뚫린 두 개의 숨구멍을 보고, 엔진 소리를 들으면 비로소 이게 뭐지? 하는 반응이 나온다.

길이가 5m를 넘고(5,020mm), 너비는 2m에 가깝다(1,980mm). 높이는 1,700mm, 휠베이스도 3m를 넘긴다(3,004mm). 대단한 크기지만 시각적으로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날렵해 보인다. 쿠페 라인을 적용한 지붕 때문이다.

590마력, 힘은 소리로 드러난다. 코르사모드를 택하면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의 소리를 토해낸다. 주변을 압도하는 배기 사운드는 거칠기 짝이 없다.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소리다. 에코 모드에 해당하는 ICE 모드에서는 조금 얌전한 소리를 낸다. 길들여 놓은, 먹이를 향해 어슬렁거리는 소리다.

가속페달을 오래 밟을 수 없다. 순식간에 한계 속도를 넘어버린다. 0-100km/h 가속 시간이 메이커 발표 기준 3.9초에 불과하다. 500마력, 3초대의 100km/h 가속 시간. 슈퍼카 기준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SUV가 아닌 슈퍼카인 이유다. 공기저항 계수는 0.33.

슈퍼카지만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다. 구동력은 잘 제어된다. 의도치 않게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는 일도 없다. 휠스핀을 만나기도 힘들다. 그 강한 힘은 철저하게 운전자의 의도에 복종한다. 잘 길들여진 맹수다.

코르사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론치컨트롤은 가장 빠르게 스타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주행모드를 코르사로 택하고 패들시프트를 사용해 론치컨트롤을 택하고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함께 밟아 계기판이 알려주는 rpm까지 올린 뒤 브레이크를 떼면 로켓처럼 출발한다. 발사에 가까운 출발이다. GPS 계측기를 사용해 수차례 측정해본 결과 4초대에 시속 100km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나긋한 맛을 즐길 수도 있다. 잘 포장된 도로를 100km/h 전후의 속도로 움직이면 보통의 프리미엄 SUV처럼 편안한 주행을 이어간다.

V8 엔진은 8단 변속기를 거쳐 힘을 드러내고, 차체는 마세라티의 사륜구동 시스템 Q4 시스템을 통해 속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통합차체컨트롤 시스템, 스카이훅 댐핑 서스펜션 등이 힘을 보탠다. 서스펜션은 에어 스프링을 적용해 6단계로 높이를 조절한다. 오프로드 모드에서 최고 높이를 확보하는데, 최저일 때보다 75mm 높다.

그렇다고 이 차 타고 거친 오프로드에 진입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행여 스크레치라도 나면 마음에 상처가 크게 남는다. 하체 손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비싼 차는 수리비도 비싸기 때문이다. 굳이 오프로드에 가고 싶다면, 오프로드용 차를 따로 사서 즐기기를 권한다.

소리에 집착하는 브랜드답게 오디오 역시 최고 수준을 고집하고 있다. 17개의 스피커를 사용하는 바워스&윌킨스 하이앤드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해 숨소리부터 베이스의 울림까지 입체감 있는 음색을 들려준다. 편안히 달릴 때는 오디오의 소리를, rpm을 높여 질주할 때에는 엔진 사운드를 감상하면 된다. 분명한 건, 소리를 빼고 이 차를 논하기는 힘들다는 것.

연비는 5.7km/L. 엔진 스톱 시스템까지 도입했지만 겨우 이 정도 연비를 맞췄다. 2억 2,380만 원짜리 마세라티 최강 SUV라면 연비는 살짝 무시해도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 차를 사는 사람이 가성비, 연료 효율을 생각할 리는 없지 않을까. 연비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닌 차다. 그래도 궁금해 파주-서울 간 55km를 달리면서 직접 측정해본 연비는 8.4km/L를 기록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주행보조 시스템은 제한적이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ACC)이 있어서 차간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며 정해진 속도로 달리는데, 차선을 인식하지는 않는다. 차로이탈방지 장치는 없는 것. 운전하는 즐거움을 차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ACC도 없어야 맞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어쨌든 2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차라면, 뭐라도 없으면 섭섭한게 고객의 마음일 듯.
룸미러를 통한 후방 시야는 제한적이다. 루프라인을 적용하면서 뒤로 갈수록 내려가는 지붕선이 룸미러의 상단을 가리고, 2열 시트의 헤드 레스트 3개가 룸미러 아래를 차지한다. 실제로 보여주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물론 후진할 때는 카메라를 통해 시야 확보가 가능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룸미러를 볼 때마다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