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미니밴, 토요타 시에나 AWD를 만났다. 제한된 공간에 11명씩, 9명씩 끼어 앉는 미니밴이 아니다. 침대 같은 시트에 폼나게 앉아갈 수 있는 미니밴이다.

킨룩. 토요타의 디자인 특징이 그대로 적용된 모습이다. 대왕고래의 턱 주름을 닮은 모습이다. 멀리서 보면 한 마리 고래를 닮았다. 옆은 단단하고 뒤는 단정하다. 차분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리어컴비네이션 램프에는 에어로 다이내믹 효과를 노리는 ‘핀’ 하나가 있다. 스테빌라이징 핀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안보이는 그 작은 핀 하나 조차, 그냥 만들어 놓은 건 아니다.

크다. 길이가 5m를 넘는다. 당연히 넓은 실내를 가졌다. 그 넓은 공간을 달랑 7명이 쓴다. 3열을 접어버리면 오롯이 4명을 위한 공간이 된다. 자동차에서 고급스러움은 결국 공간이다. 아무리 고급 소재를 사용해도, 공간이 좁아지면 옹색해지고 고급스러운 맛은 사라져 버린다. 넓은 공간은 그 자체가 고급이다. 시에나가 그렇다.

2열 오토만 시트는 고급스럽다 못해 호화롭다. 허벅지는 물론 종아리까지 시트가 받쳐주며 드러누운 듯,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독립 시트여서 옆좌석에 신경 쓸 일도 없다. 시에나는 1열 시트보다 2열 시트가 더 좋고 편하다. 흔치 않은 사례다.

3열 시트는 접고 펴기가 너무 쉽고 직관적이다. 시트 접고 펴기가 귀찮아 불편함을 감수하는 다른 미니밴들과는 다르다. 필요하면 몇 초 만에 시트를 접고 펼 수 있다. 2WD 차에는 전동식 폴딩 시트가 적용된다. 버튼을 눌러 시트를 조절하는 것.

수납공간은 사방에 널렸다. 대시보드의 글로브 박스는 상하 2중으로 만들었고, 센터 콘솔은 깊은 책상 서랍만큼 넉넉하다. 슬라이딩시키면 더 넓어진다. 센터페시아 아래에도 넓은 공간이 있어 물건을 넣어둘 수 있다. 도어 포켓도 여유 있다. 손이 닿는 곳 사방에 수납함이 있다.

스티어링 휠은 3.5바퀴나 돌아간다. 5m가 넘는 덩치를 컨트롤하려면, 이렇게 조금 여유 있는 조향이 어울린다. 이렇게 큰 차를 타고 날카로운 조향비를 느낀다면, 얼마 안 가 사고 나기 딱 좋다. 여유 있게, 차분하게 다뤄야 하는 차다.

타이어도 이를 말하고 있다. 235/55R 18 사이즈의 런플랫 타이어를 끼웠다. 브릿지스톤 제품이다. 조용한 타이어다. 노면 마찰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고, 차체가 기울어질 만큼 빠른 코너링에서도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켰다.

3.5ℓ 가솔린 엔진에는 토요타의 노하우가 녹아있다. 흡기밸브가 잠기는 타이밍을 지연시키는 앳킨슨 사이클 엔진이다. 또한, 포트 내 간접분사와 실린더 내 직접 분사를 병행하는 4D-S 연료 분사 시스템을 적용했다. 최적의 효율과 성능을 만족시키는 엔진이라는 게 토요타의 설명.

움직임은 부드럽다. 거칠게 달리는 건 미니밴에 어울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게, 시끄럽지 않게, 안정된 자세를 최대한 유지하는 게 미니밴을 운전하는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그렇게 부드럽게 다루면, 더없이 편하다. 부드러운 승차감에 조용한 실내는 아주 고급스러운 응접실 같은 분위기로 빠져든다.

하지만 미니밴도 필요할 땐 달려야 하는 법.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301마력의 힘이 실체를 드러낸다. 주저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가속에 임한다. 아무런 가식이 없는 힘은 가장 짧은 거리로 상대를 향해 날리는 스트레이트 펀치 같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허허실실 마음 좋은 사내가 어느 순간 불같이 화내는 모습. 허허실실의 폭풍 질주라 할 만하다. 미니밴에는 어울리지 않는 힘이 엔진, 그 안 어디엔가 숨어 있었다.

시에나 AWD는 공차중량 2,17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7.2kg. 계측기를 이용해 측정한 0~100km/h 가속 시간은 7.9초가 나왔다. (3회 측정, 7.90, 7.91, 8.10초)

그 강한 힘이 그리 거칠지 않게 드러나는 건, 8단 자동변속기 덕분이다. 큰 힘을 부드럽게 조율해낸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에 멈춘다. 아등바등 달리지 않아도 필요한 힘을 여유 있게 만들어내는 것. 여유 있는 엔진 배기량과 변속기가 빚어내는 힘의 조화다.

앞바퀴굴림으로 움직이지만 가속할 때나 코너에서는 뒷바퀴로도 구동력을 보낸다. 힘의 변화는 계기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사륜구동의 작동상황을 직접 보면서 운전하는 것도 재미있다. 뒷바퀴로 최대 50%의 구동력을 보낼 수 있다.

토요타 세이프티 센스가 있다. 직접 조향에 개입하는 차선이탈 경고,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긴급 제동보조, 오토매틱 하이빔 등이 안전하고 편리한 주행을 돕는다. 운전자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커버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조 운전자의 존재를 느낀다.

사륜구동은 도로 상황이 안 좋을 때 좋은 몫을 맡아준다. 힘들 때 도와주는 친구 같다. 눈, 비로 길이 미끄럽거나, 고속주행에서 차가 심하게 흔들릴 때, 코너에서 네 바퀴의 구동력이 제각각일 때, 노면이 거친 오프로드에서 사륜구동은 이륜구동에 비할 수 없는 탁월한 구동력을 바탕으로 인상적인 주행안정감을 만들어낸다. 물론, 연비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무겁고, 네 바퀴로 힘을 보내야 하는 긴 동력전달 과정,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동력손실 등으로 연료 소모가 더 많아지는 것.

시에나의 공인 복합연비는 2WD가 8.6km/L, 4WD는 8.2km/L다. 파주에서 시승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는 55km 구간에서 연비 테스트를 한 결과 10.9km/L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공인 복합연비보다 훨씬 우수한 연비를 만난 것. 차분하게 다루면, 두 자릿수 연비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판매가격은 5,640만 원. 2WD 모델은 5,370만 원이다. 대가족의 패밀리카로 손색없다. 꼭 가족용일 필요는 없다. 회사의 업무용으로도 좋다. 귀한 손님을 모시는 의전용으로도 최고의 미니밴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7인승이어서 고속도로 전용차로에 진입할 수 없다. 전용차로를 누리기 위해 미니밴을 사는 이들이 많은데, 시에나는 그 혜택을 포기해야 하는 것. 한국에선 큰 약점이다.
계기판에 보이는 영어는 거슬린다. 한국 소비자에겐 한국말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맞다. 미국산이어도 한국에선 한국말을 하는 게 보기 좋다.
덩치가 커서 좁은 공간에서 불편할 때가 있다. 주차장에선 서너 번 왕복해야 할 때가 많고, 차를 세워도 문을 열어 몸이 빠져나올 공간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리어 게이트를 열어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는 게 다행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