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사이에 두 대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PHEV)를 만났다. 시나브로 시대는 변하고 있다.

BMW X5 x드라이브 40e i 퍼포먼스다. PHEV는 대체로 이름이 길다. 가장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 탓이다. 엔진도 있고, 모터도 있다. 여기에 충전 시스템까지 한 몸에 가지고 있다.

X5 특유의 높은 자세, 거기에서 비롯된 넓은 시야가 먼저 다가온다. 클래식한 느낌이 드는 계기판과 센터페시아는 이제 X5의 세대교체가 임박했음을 말하고 있다. 잘 익은 인테리어다.

스티어링 휠은 3.3회전 한다. 날카로운 조향보다 살짝 여유를 주는 세팅으로 마무리했다. 나무의 질감을 있는 그대로 살려놓은 대시보드는 손끝이 먼저 그 고급스러움을 느낀다. 핸드폰 화면 조작하듯, 마우스로 컴퓨터 하듯, 드래그 앤 드롭으로 움직이는 내비게이션 화면은 직관적으로 쓸 수 있다. 터치스크린도 가능하다. 뒷좌석 센터터널은 없다. 높게 솟은 부분 없이 그냥 평평한 바닥이어서 공간이 더 넓게 다가온다.

BMW X5 x드라이브 40e i 퍼포먼스는 2.0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고전압 배터리와 전기 모터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한다. 배터리를 가득 채우면 20km를 전기차로 움직인다. EV모드일 때 최고속도는 120km/h까지 낼 수 있다.

출퇴근 거리 20km 이내라면 완전히 전기차로 이 차를 사용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한여름, 한겨울, 혹은 고저차가 심한 지형이라면 그 거리는 확 줄어들 수도 있다. 물론 봄 가을, 최상의 컨디션을 보인다면 배터리의 힘으로 20km 그 이상을 달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1회 충전 20km 주행 가능 이라는 말은 참고사항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배터리가 바닥났다고 차가 멈춰 서는 것은 아니다. 2.0 가솔린 엔진이 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힘차게 내뿜으며 달리는 맛도 즐길 수 있다. 좌측 앞에 충전구, 우측 뒤에 주유구가 있어서 전기차와 가솔린차 사이에서 수시로 정체를 바꾼다. 들짐승과 날짐승 사이를 오가는 박쥐 같은 차다.

BMW 특유의 키드니 그릴이 커졌다. 그 옆 헤드램프의 코로나 링은 원형인 듯 원형 아닌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다. BMW의 전동화 전략에서 가장 주목되는 지점중 하나는 키드니 그릴이다. 기능적으로 퇴화할 수밖에 없지만 브랜드의 디자인 DNA를 버릴 수는 없다. 어떤 변화를 줄지 지켜볼 일이다.

배터리는 3가지 모드로 작동한다. 주행 상황에 맞춰 모터와 엔진 작동을 조절하는 오토e 드라이브, 배터리로 움직이는 맥스 e 드라이브, 배터리 개입을 억제해 엔진으로 움직이는 세이브 3가지다.

주행모드는 따로 선택할 수 있다. 스포츠, 컴포트, 에코 프로 3가지 모드가 있다. 이브 선택 가능하다.

2.0 가솔린 엔진은 245마력, 전기 모터는 113마력의 출력을 낸다. 총 시스템 출력은 313마력.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성상 엔진과 모터 출력의 합이 그대로 전체 출력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엔진은 수시로 숨을 멈춘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은 즉시 숨을 죽이고 rpm은 0으로 뚝 떨어진다. 무심코 운전하면 엔진이 꺼지고 되살아나는 반복되는 과정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 시끄럽지도 않고 재시동 충격도 크지 않아서다. 슬며시 켜지고, 슬며시 멈춘다.

많은 정보가 모니터를 통해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사륜구동 시스템의 동력 배분 상태, 롤링과 피칭 각도, 출력과 토크, 엔진구동 비율, 이파워모드 비율 등 필요한, 때로는 굳이 알필요까지는 없는 정도들이 모니터에 담긴다. 찾아보는 건 운전자의 몫.

엔진을 꺼야 할 때를 대비해 10~20%가량의 배터리 잔량을 남겨둘 줄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 심야의 아파트 주차장 등에선 잠시 엔진을 끄는 게 PHEV의 매너다. 전기차와 엔진구동차 사이에서 어떻게 운전할지 지혜롭게 차를 다뤄야 한다.

조용해서 신경 쓰이는 건, 옆에서 같이 달리는 차에서 나는 소리다. 노면 잡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차가 높아 노면 굴곡을 따라 간혹 흔들림이 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시속 100km에 크루즈컨트롤을 맞췄다. 스포츠모드에서 2,000rpm이다. 컴포트 모드에선 1,900, 에코프로에서는 1,500으로 뚝 떨어진다. 8단 변속기는 3~8단에서 100km/h를 커버하며 1,500~5,000rpm을 보인다. 이는 곧 운전자의 선택 폭을 말한다.

대체로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차체는 일관된 자세여서 편안했다. 셀프 레벨링 기능을 가진 에어서스펜션은 노면 충격 변화에 큰 상관없이 차체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해준다.

코너에서 조금 과하게 속도를 올렸다. 차가 기울어지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높은 차의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코너가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 차체가 딱 버티며 견디는 느낌이 온다. 조금 더 밟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트렁크 바닥에 배치된 고전압 배터리는 차의 앞뒤 무게 배분에 효과적이다. 트렁크는 바닥이 높게 올라와 있어 비좁은 감이 있지만 500ℓ의 공간을 확보했다. 뒷좌석을 접으면 1720ℓ까지 확장되니, 좁다는 얘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힘찬 가속을 통해 충분한 힘을 느낀다. 거침이 없다. 공차중량 2375kg에 달하는 덩치가 새털처럼 가볍게 달린다. 바람소리 커질 때쯤이면 속도는 오를 만큼 올랐다. 브레이크를 가볍게 밟는다. 제동은 전약후강, 부드러운 제동이 뒤로 갈수록 강하고 정확하게 차를 제어한다. 브레이크가 차체를 이기고 있다. 고성능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이유다.

품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품은 차다. 그래서 폭이 넓다. 시내에서 가볍게 움직이기에도, 혹은 조금 부담스러운 장거리 투어를 떠나기에도 참 좋다. 짠돌이의 에너지 효율을 가졌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센 힘도 가졌다. 위풍당당한 모습 안에는 도로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는 세심함이 있다. 뭐든 원하는 대로 대응하고 보여준다. 팔색조처럼.

공인복합연비는 9.4km/L, 파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약 50km를 달리는 동안 연비는 12km/L를 기록했다. 배터리를 박박 긁어 바닥까지 다 쓴 결과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가격에 비해 상품구성이 빈약하다. 크루즈컨트롤은 정속주행만 가능하고 차간거리 조절은 안 된다.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도 없다. 조향에 개입하는 법도 없다. 그래서 반자율 운전은 불가능하다. 아쉬운 건 편리함보다 안전이다. 아차 하고 운전자가 놓치는 부분을 차가 스스로 커버해주고 보완해주는 걸, 느껴본 이들은 안다. 그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1억 370만 원짜리 첨단 친환경 차라면 그 정도는 갖춰야 하는 거 아닐까?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