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가 한 발 더 나갔다. 신형 ES를 출시하며 아예 하이브리드 모델만 한국에서 판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S는 1989년 토요타가 렉서스 브랜드를 처음 선보일 때 LS와 함께 등장한 차다. LS와 함께 렉서스의 뿌리라고 해도 좋을 차다.

7세대 ES는 모든 게 바뀌었다. 엔진 변속기 어퍼 보디, 플랫폼 등 모든 부분을 동시에 개발하며 신형 ES를 만들었다. ES는 파워트레인과 플랫폼을 캠리와 공유하지만, 훨씬 더 고급스러운 럭셔리 세단으로 자리매김한다.

최상의 편의 장비와 기능이 다수 적용된 이그제큐티브 트림은 조금 더 늦는다. 오는 연말쯤 국내 출시할 예정이다. 시승차는 럭셔리 플러스 트림으로 판매가격 6,260만 원이다.

GA-K 플랫폼을 바탕으로 낮고 넓은 차체를 완성했다. 종이를 접어 바짝 날을 세운 듯 선이 살아 숨 쉬는 디자인이다. 앞모습이 특히 그렇다. 같은 듯 다른 모습. 스핀들 그릴의 가로 바가 세로 바로 변했다. 쿠페 스타일의 저중심 설계는 아름다움과 성능을 동시에 노린 포석이다.

트렁크 아래에 배치했던 배터리는 크기를 줄여 뒷시트 아래로 옮겼다. 트렁크 공간은 골프백 4개가 들어갈 정도로 넓어졌다. 무게중심도 낮아졌고, 앞뒤 무게배분 효과도 더해져 주행성능 개선에 힘을 보탰다.

스티어링 휠은 2.6회전한다. 저항감도 크지 않다. 파워 스티어링은 랙에 모터를 장착한 R-EPS로 개선됐다. 느슨했던 조향감이 타이트한 긴장감을 갖췄다.

도어 트림과 센터 콘솔의 커버에 적용된 가죽에는 옅은 주름이 잡혀있다. 렉서스의 자랑, 타쿠미(장인)들이 정성을 쏟아 가죽 표면을 마무리한 것으로 렉서스는 이를 ‘비스코텍’이라고 소개했다. 보기에는 각 잡아 다린 듯 선이 살아있고 입체감 있어 보이지만, 만져보면 부드러운 가죽 표면일 뿐이다.

7인치 TFT LCD 모니터로 구성된 계기판은 한눈에 보기에 딱 좋은 크기다. 넓지 않아 한눈에 모니터에 뜬 정보를 파악하기 좋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12.3인치 스크린이 배치됐다. 터치스크린은 아니다. 대신 리모트 터치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마우스처럼 커서를 움직이며 사용하는 방식. 계기판 너머로는 풀컬러로 정보를 띄워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다.

뒷좌석 공간은 태평양이다. 그만큼 넓다. 고급스러움의 시작은 결국 공간이다. 좁은 공간에서 만나는 고급은 억지스럽다. ES의 뒷좌석에선 자연스러운 고급감을 만나다. 다리를 꼬고 잔뜩 뒤로 기대 누운 듯 앉아도 무릎 앞으로 공간이 충분하게 남아 있다.

2.5ℓ 가솔린 엔진과 모터, eCVT로 구성된 파워트레인의 총 시스템 출력은 218마력. 공차중량은 1,71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7.8kg이 된다. 중형세단으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정한 동력효율이다.

조용했다. 시속 100km 전후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조용하게 움직였다. 엔진소리도 바람소리도 노면 잡소리도 들리는 듯 마는 듯 실내는 조용했다. 공기저항 계수는 0.26으로 무척 높은 수준이다.

부드럽다. 주행의 느낌이 그러했다. 235/45R 18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타이어, 맥퍼슨스트럿(앞) 더블위시본(뒤) 방식의 서스펜션이 우아하고 부드럽게 차체를 떠받치고 있다. 스윙밸브 쇼크업소버는 미세한 충격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부드러운 승차감을 완성하고 있다.

조용한 실내와 부드러운 승차감은 렉서스의 DNA다. 렉서스 원년에 출발한 ES답게 가장 렉서스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렉서스는 여기에 안전성을 더해 신형 ES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강조하고 있다.

부드럽다는 점에서 ES는 독일 세단의 대척점에 서 있다. 힘차고 단단한 느낌으로 대표되는 독일 세단들과 달리, ES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거칠지만 재미있는 바다 수영의 맛이 독일 세단이라면, ES는 잔잔하고 편안한 실내 수영장의 느낌이다.

걱정하진 마시라. 부드럽다는 게 물렁하고 휘청거리는 힘 없는 하체를 말하는 건 아니다. 강한 코너에선 기우는 차체를 단단하게 받쳐주기도 하고, 작정하고 달리면 아주 빠른 속도까지 거침없이 속도를 끌어올리는 당찬 면모도 갖췄다.

하이브리드인 만큼 에코 모드가 제격이다. 속도를 끌어올린 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오토 글라이드 컨트롤이 작동한다. 엔진은 작동을 멈추고 속도를 유지하며 최대한 더디게 감속되도록 조절해 주는 것.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한 기능이다.
스포츠 모드에선 ‘포커페이스’를 한다. 마치 하이브리드가 아닌 척 힘찬 엔진 소리를 토해내며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재미있는 건, e-CVT의 반응. 거친 변속 반응 없이 무단 변속기 특유의 끊김 없는 가속감이 펼쳐진다.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컨트롤에 더해 차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 앞차를 따라가는 추적 기능이 더해졌다. 차선추적 어시스트다. 이를 토대로 반자율 운전이 높은 수준에서 구현된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면 곧 경고가 뜨고 조향 개입을 해제해버린다.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긴급제동 보조, 크루즈컨트롤, 차선추적 어시스트, 오토매틱 하이빔, 액티브 코너링 어시스트 등이 ES의 안전을 함께 체크한다. 렉서스 세이프티 시스템 플러스다.

아무리 거칠게 달리는 척해도, 그래도 하이브리드다. 연비가 이를 말한다. 공인복합연비는 17.0km/L. 1등급이다. 재시동 후 60km가량을 달린 후 계기판이 알려주는 연비는 13.0km/L 수준. 가속, 감속. 제동, 고속주행, 공회전 등 가혹하게 차를 다룬 결과다. 계기판 리셋후 700km 넘게 달린 연비는 23km/L를 넘기고 있다. 에코 모드로 차분하게 이 차를 다루면 공인복합연비는 충분히 넘기겠다.

오디오는 짱짱한 음질을 선보인다. 10개의 스피커를 장착한 렉서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들려주는 소리다. 강한 드럼 소리에 놀랄 정도로 현장감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소리가 예술이다. 최고급 트림인 이그제큐티브에는 17개 스피커를 가진 마크레빈슨 프리미엄 오디오가 탑재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계기판은 영어로 정보를 안내한다. 익숙지 않은 글이 불편하다. 한국 시장 판매량이 작지 않은 만큼 한글 기반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게 한국 고객들에 대한 예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밝은 곳에서 흐리다. 눈이 부시게 밝은 곳에선 있는 듯 없는 듯 흐리게 보인다. 제대로 보려면 시선을 고정해 신경 써서 봐야 한다. 시선 처리를 자연스럽게 하면서 정보를 보게 하려면, 좀 더 진하게 잘 보여야 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