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AMG E 63 4매틱 플러스. 삼각별 마크가 당당하게 자리했지만 긴 이름 어디에도 벤츠는 없다. AMG가 그 자리를 꿰찼다. 국내 시판 E 클래스 중 가장 강한 모델, 메르세데스 AMG E63 4매틱이다.

6.3ℓ에서 시작한 엔진은 이제 바이터보 4.0ℓ로 다이어트했다. 엔진 출력은 571마력. 4리터 엔진에서 뽑아내는 기적 같은 힘이다. 수퍼카 뺨치는 AMG E63 4매틱은 도로 위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위엄을 갖췄다. 발톱 드러내고 달리는 맹수를 닮은 이 차에 올랐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분으로 달렸다.

탄소섬유로 바른 인테리어는 한눈에 봐도 고성능이다. 그리고 고급스럽고 차분하다. IWC 아날로그 시계는 고급의 상징. 정형화된 공식처럼 사용되는 아날로그 시계다.

재떨이가 있다. 앞에는 물론 뒷좌석에도 있다. 독일이 흡연에 관대하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드러내놓고 재떨이를, 그것도 앞뒤로 배치한 차는 흔치 않다. 어딜가도 마음 편히 담배 피우기 힘든 요즘 세태를 보면, 차 안이 흡연가에게 제일 자유로운 공간일 수도 있겠다.

12.3인치 모니터 두 개를 나란히 연결해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구성했다. 계기판 모습은 디자인 스포츠 클래식 프로그레시브 3종류가 준비돼 있다. 이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엄지 두 개로 차의 모든 기능 정보를 찾아서 띄울 수 있다. 스티어링휠 왼쪽 버튼은 계기판, 오른쪽 버튼은 센터페시아 계기판을 조작할 수 있다.

최고급에 고성능인 만큼 두 개의 모니터를 통해 보여줄 게 많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은 기능을 찾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루할 틈이 없다. 그만큼 운전자가 숙지해야 할 내용이 많다는 의미다. 이 차를 제대로 다루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여전히 벤츠는, 아니 AMG는 터치스크린을 거부하고 있다. 안전운전에 방해된다는 주장이다. 대신 커맨드 시스템의 조그셔틀을 통해 조작하게 했다. 일상 속에서 터치스크린에 너무 익숙한 몸이 불편해한다. 직관에 익숙한 몸은 자꾸 모니터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다양한, 아주 다양한 드라이브 어시스트 장치들이 있다.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패키지 플러스다.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한 다양한 보조장치들이 운전자의 실수를 커버해주고 반자율 운전도 가능하게 해준다. 차로 이탈 조향보조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조향에 개입한다. 손을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들을 쥐라는 경고등이 뜬다. 못 들은 척 핸들을 잡지 않으면 서서히 속도가 줄어든다.

좁은 골목길에서 불편하다. 차는 쉽고 편하게 움직이는데 운전자가 편치 않다. 큰 덩치보다 걸리는 게 가격이다. 1억5,200만 원. 긁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한 번에 돌아 나올 길을 두세 번에 나누게 된다. 멋진 찬데 행여 차가 다칠까 부담은 크다. 과속 방지턱을 넘는데 단단한 느낌의 끝은 부드럽다. 강도를 정확히 조절해 거칠지 않다.

스티어링 휠은 딱 2회전 한다. 스티어링을 조금만 움직여도 차는 크게 반응한다. 고카트 느낌이다. 예민하게 다뤄야 한다.

차와의 스킨십을 수시로 느낀다. 출발할 땐 안전띠가 몸을 조였다 풀어준다. 차와의 가벼운 포옹이다. 방향 전환할 때마다 몸이 기우는 방향으로 시트가 부풀어지면 몸을 받쳐준다. 드라이버의 균형은 차의 균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시로 이뤄지는 차와의 교감은 신뢰감을 갖게 한다. 몸이 부딪히며 쌓이는 친근감, 차에 대한 신뢰다.

교통 흐름에 파묻혀 움직일 때는 평범한 E 클래스의 모습이다. 차분하고 편하다. 거친 숨소리를 숨기고 일상의 호흡으로 달린다.

공간이 열리면 본색을 드러낸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571마력의 힘이 총알처럼 차를 끌고 달린다.

4매틱은 좀 더 극적이다. 완전한 후륜구동이 가능한 사륜구동이다. 앞뒤의 토크 배분 0:100이 가능한 것. 앞으로 가장 많은 힘을 보낼 때는 33:67이 된다. 사륜의 안정감에 후륜구동의 다이내믹을 살린 세팅이다. 기본적으로 AMG는 후륜구동을 선호한다.

9단 변속기는 기어비가 1단 5.36에서 시작한다. 6단에서 일대일을 맞춘 뒤 7, 8, 9단이 오버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최종감속비는 3.06. 기어비가 촘촘해 주행에 가장 잘 맞는 기어를 택할 수 있다. 시속 100일 때 9단 1,400rpm에서 3단 5,000rpm 사이를 커버한다. 성능과 효율 모두를 만족시키는 변속기다.

서스펜션의 느낌은 기본적으로 단단하다. 고급스런 승차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멀티 챔버 에어바디 서스센션은 에어챔버를 장착해 리얼타임으로 최적의 강도와 높이를 조절한다. 고속주행에서는 차의 높이를 낮춰주기도 한다.

주행모드는 인디비듀얼,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4단계가 있다. 스포츠 플러스를 택하면 엔진 소리가 먼저 살아난다. 부지불식간 미소를 띠게 된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시트가 몸을 민다. 페달과 시트가 직결된 느낌. 가볍고 힘차게 몸을 툭 민다.

공기저항 계수는 0.33. 고속에서 엔진 소리가 바람 소리를 이긴다. 소리의 느낌이 좋다. 쭈욱 밟았던 가속페달을 툭 놓으면 배기 플랩을 통해 특유의 엔진 사운드가 들린다. 매력적인 엔진 사운드를 들으려고 킥다운과 엑셀 오프를 자꾸 반복하게 된다.

킥다운을 유지하면 짧은 순간에 고속까지 터치한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툭 치고 나가 고속에 이른다. 오래 밟기 힘들다. 격이 다르다.

거침없는 질주가 이어진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가속에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지만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는 걸까. 고속에서도 고개를 끝까지 쳐든다. 571마력을 실감하며 도로 중앙으로 날아가 꽂히듯 달리는 차를 맛봤다. 그래, 이 맛이지.

차와의 일체감을 느끼며 좀 더 충직한 반응을 원한다면 수동모드를 택하면 된다. 수동 모드에선 굵고 힘 있는 배기 사운드가 들린다. 변속은 오직 운전자의 지시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속도가 올랐다고 시프트업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 변속을 하지 않으면 높은 알피엠을 유지하며 악착같이 기어를 유지한다. 대단한 고집이자 충성심이다. 571마력의 엄청난 힘이 수동 모드에서 절대 복종한다.

타이트한 코너를 타고 들어간다. 도로를 장악한다는게 이런 거구나. 급하게 돌아나가는 도로에 지지 않는다. 노면에 착 달라붙은 느낌이 대단했다. 기우는 느낌도 거의 없다. 4매틱, 서스펜션, 타이어가 서로 궁합을 맞추며 코너를 공략했다. 서킷에서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탈 수 있겠다.

강하게 제동을 건다. 차체의 흔들림 없이 빠르게 속도를 낮춘다. 내려 꽂히는 게 아니라 엉덩이를 뒤로 빼며 주저앉는다. 잘 서지 못하면 달린다는 게 의미 없다. 빠른 속도에서도 우아하게 속도를 제어한다.

포천-서울 간 55km 구간에서 연비를 체크했다. 공인복합연비는 7.3km/L, 5등급이다. 굳이 이 차의 실제 주행 연비를 체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아끼면 어느 정도의 연비를 보이는지.

에코모드가 없어 컴포트 모드로 에어컨을 켜고 달렸다. 최대한 차분하고 얌전하게 차를 다뤘다. 엔진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있어 정속주행을 할 때는 4기통만 작동한다. 4기통만 쓰면서 운전하는 게 이 차의; 경제 운전 포인트다. 또 다른 재미다.
액티브 크루즈컨트롤을 사용하면 8기통이 다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4기통 운전에는 운전자가 직접 가속페달을 다루는 게 효과적이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최고 11.6km/L까지 기록했다. 체증 구간을 지나고 시내를 통과하면서 연비는 빠르게 악화됐다. 최종 목적지에서의 연비는 8.8km/L였다. 공인복합 연비 7.3km/L보다 훨씬 좋은 연비다.

그래도 AMG E63 타면서 연비에 신경 쓰는 건 ‘가오’ 죽는 일이긴 하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상단에 햇빛 가리개가 있다. 예리한 각이 눈에 걸린다. 운전자 앞쪽, 대시보드의 예각은 충돌 사고 시에 아주 무서운 흉기가 된다. 안전띠를 매고 있으면 된다지만,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하는 게 제작자의 자세다. 대시보드 디자인은 최대한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게 내 믿음이다.
트렁크 상단이 맨 철판이다. 그 부분 마감 처리하는데 얼마나 든다고 맨 철판을 드러내는가. 이 차 가격이 1억 5,200만 원이다. 그 돈 주고 E 클래스 최고의 세단을 사는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