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스포츠를 만났다. 시승차는 3.0 디젤엔진을 얹은 SDV6 AB DYNAMIC 모델이다.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프리미엄 스포츠 SUV’를 지향한다. SUV이지만 스포츠카 같은 민첩한 주행성능을 자랑한다. 레인지로버라는 배지에 걸맞게 호화로운 인테리어와 각종 편의 장비를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국 사람들의 높은 콧대처럼,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는 레인지로버다.

호화로움은 실내에서 빛난다. 넓은 공간을 가죽이 감싸고 있다. 고급이라고 칙칙한 검은색으로 무게를 잡는 인테리어가 아니다. 밝고 환한 기조를 유지하는 실내는 충분히 넓어서 호화로움이 더 다가온다.

스티어링휠은 2.6회전한다. 4,879mm로 거의 5m에 육박하는 크기를 민첩하게 조종하는 스티어링휠이다. 가죽으로 마무리한 핸들은 부드럽다. 휠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패들시프트가 손에 걸린다. 딱 좋은 자리다. 계기판은 12.3인치 컬러 모니터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내비게이션 화면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펼쳐 보인다.

차창과 선루프가 시원시원하게 뚫려있다. 시트를 가장 낮게 세팅해도 차창은 어깨 아래로 내려온다. 차창 면적이 넓다는 의미다. 그 넓은 차창으로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시야 확보에 유리함은 물론이다.

모니터는 센터페시아에 위아래로 두 개가 있다. ‘인컨트롤 터치프로 듀오’라는 이름이다. 아주 많은 정보가 올라온다. 게다가 직관적이어서 작동하기도 쉽다. 모니터는 일체의 노출 없이 매립되어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모범이다. 센터페시아 상단 모니터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운전자가 좀 더 잘 볼 수 있는 각도로 맞추면 된다.

카메라를 통해서는 차를 둘러싼 앞뒤 전후 360도를 볼 수 있다. 각 부분만을 따로 확대해 볼 수도 있다. 좁은 주차장에서 좋다. 또한 장애물이 산재한 오프로드에서 매우 쓰임새가 많다.

크다면 큰 변화 중 하나는 변속레버다. 회전식 원형 레버에서 손잡이가 있는 전통적인 방식의 변속레버를 적용했다. 레인지로버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이를 포기하고 범용 방식을 채택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행모드를 택하는 전지형 지형 반응시스템은 원형 레버를 적용했다.

센터 콘솔은 냉장 기능이 있어 음료수를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수납공간이 깊다. 조수석 앞의 글로브 박스는 위아래 따로 열리는 2층 구조다. 실내조명을 조절하는 앰비언트 라이트는 10개 컬러중 하나를 택할 수 있고 그 밝기도 조절할 수 있다. 뭐랄까, 다른 차에도 다 있는 부분들이지만 조금 더 신경 써서, 다르고, 고급스럽다.

뒷좌석은 넓다. 가죽으로 커버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넓은 공간까지 더해져 최고의 고급스러움을 만든다. 주눅들 정도다. 정통 사륜구동 시스템을 가진 SUV지만 센터터널은 없다. 그만큼 공간은 더 넓다.

시시콜콜 차의 구석구석을 다 이야기하려면, 끝이 없다. 눈길 닿는 곳,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세심한 배려, 고급스러운 재질, 깔끔하고 영리한 마감을 만나게 된다.

본격 시승을 위해 출발하기 전에 꼭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매립형 모니터다. 센터페시아는 물론 뒷좌석 승객을 위한 모니터도 노출되지 않게 매립형으로 마무리했다. 탑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모범 디자인’이다. 멋을 앞세워 안전을 버리지 않았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출발! 가솔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조용하다. 이 차 V6 3.0 디젤엔진을 사용한다. ZF의 8단 변속기를 물려 306마력, 71.4kgm의 토크를 만들어낸다. 중저속에서 굵게 터지는 최대토크, 리터당 100마력의 출력이 눈길을 끈다. ‘스포츠’라는 이름처럼 ‘고성능’이다. 공인 복합연비는 10.7km/L. 공차중량이 2395kg에 달한다. 이 무게를 끌고 달리면서 이 정도 연비를 보인다면 기특하다 쓰다듬어줄 만하다. 물론 더 좋은 연비를 만날 수도 있다. 시승 후반부, 서울로 복귀하며 약 53km를 달린 연비는 13.7km/L였다. 공인 복합연비보다 훨씬 우수한 연비를 맛볼 수 있었던 것. 결국, 연비도 운전자 하기 나름이다. 마력당 무게비는 7.8kg. 제원표상의 시속 100km 돌파 시간은 7.3초. 덩치보다 날쌘 몸놀림이다.

버튼 한 번 누르면 ADAS가 바로 작동한다. 운전자 주행보조시스템 덕분에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도 스스로 조향하며 차로, 속도, 차간거리를 유지한다. 차선유지 조향보조 시스템(LKAS)는 차선에 부딪힌 뒤에 조향이 개입한다. 때로 갈지자 행보를 보인다.

머리 위로 손을 휙 내저으면 선루프의 가림막이 스르륵 열린다. 제스처를 인식하는 것. 차를 다루는 방법이 점점 다양해지고, 차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덩치에 걸맞게 타이어는 크다. 275/45R21 사이즈의 타이어가 휠하우스를 꽉 채우고 있다. 보기에도 좋고 도로를 꽉 쥐고 잘 달리는대신 큰 타이어가 기름은 조금 더 먹는다.

에코모드, 시속 100km에서 1,400rpm이다. 이 큰 덩치가 새끈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달린다. 순둥이 곰이 따로 없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패들시프트를 통해 시프트다운을 이어가면 4단까지 시속 100km를 커버한다.

마냥 순둥이는 아니다. 슬슬 다독이며 속도를 올려보면 대단한 힘을 순식간에 뿜어낸다. 주인의 품 안에서 순둥이처럼 놀다가 잠깐 사이에 이빨을 드러내며 초원을 질주할 줄도 안다. 짧은 구간에서 큰 힘 뽑아낼 줄도 알고 고속주행 능력도 탁월하다. 빠른 것 같지 않은데 계기판을 보면 헉 소리가 난다. 체감속도가 무척 낮다. 피는 못 속이는 법, 최고의 SUV 레인지로버답다. SUV지만 고속질주도 거침없이 해낸다. 그래서 레인지로버 ‘스포츠’다.

알루미늄 모노코크바디의 경량차체, 앞 더블위시본 뒤 인테그럴링크의 서스펜션은 노면충격을 충분히 걸러낸다. 충격의 대부분을 걸러내고 남은 쇼크를 전하는 정도다. 노면 쇼크가 부담스럽지 않아 무시하듯 밟고 가면 된다.

잘 서는 게 중요한 법. 거침없이 질주하는 거구를 브레이크가 제어해야 한다. 제동을 걸면 안정감을 잃지 않고 속도가 제어된다. 브레이크 앞에서 이 차는 다시 순둥이가 된다. 브레이크가 이긴다.

코너를 빠르게 재촉하며 달리면 차체가 기운다. 차체의 높이를 속일 수는 없다. 하지만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잘 버틴다. 약간 기운 상태로도 조금 더 밟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더 밀고 가면 거뜬하게 받아준다. 언더나 오버스티어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사륜구동시스템이 잘 받쳐준다. 코너에서는 가속페달이 조향에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요란스럽게 강한 조향을 피하게 된다.

오프로드를 피할 수는 없다. 파주 인근의 가벼운 오프로드에 차를 올렸다. 서스펜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차 높이가 1,820mm에서 1,890mm로 높아진다. 최저지상고 역시 210mm에서 290mm로 높아진다.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물속에 들어서듯 거친 길에 들어설 준비를 하는 셈이다. 일정하지 않은 노면의 충격이 계속 이어지는 길이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큰 흔들림 없이 움직인다.

가볍게 툭툭 발걸음 옮긴다. 오프로드에서 문제 될 일은 없다. 부담 없이 가볍게 주파했고 타이어를 통해 전달되는 구동력은 잘 조절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오프로드 버전으로 변한다. 앞뒤 좌우의 기울기, 타이어 방향 등을 보여준다.

굳이 오프로드에서 이 차의 성능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전 세계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며 최고의 SUV임을 인정받아온 레인지로버 아닌가. 어쩔 수 없는 곳에서 부득이할 때는 물러서지 않아도 된다. 그곳이 길이라고 온로드이든 오프로드이든 원하는 대로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게 레인지로버다.

다만 생각해봐야 할 것은 ‘돈’이다. 거친 오프로드에서 얻게 되는 자잘한 상처들, 예를 들어 보디의 스크레치, 깨져버린 사이드미러, 하체의 데미지들, 어쩌면 찢어져버린 타이어까지. 이런 부분들을 깨끗하게 복원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오프로더라면 운행에 지장이 없다면 영광의 상처들을 굳이 치료하지 않아도 좋겠지만, 레인지로버는 또, 그게 아니다. 영국 신사처럼, 일상 속에서는 말끔하고 고급진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누구보다 오프로드에 강한, 아니 최고의 오프로더지만, 험로에 들어설 땐 비용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레인지로버의 딜레마다.

온로드에선 스포츠카를 따라잡을 정도의 탁월한 성능을 마음껏 뽐냈다. 오프로드에선 레인지로버의 명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고의 SUV임을 보여준다. 모자람이 없는 탁월한 성능을 언제 어디서고 보여주는 프리미엄 SUV였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팔방미인이다.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V6 3.0 터보 디젤, V6 3.0 수퍼차저, V8 5.0 수퍼차저 3개 엔진에 5개 트림으로 판매된다. 판매가격은 1억 3,330만 원부터 1억 9,030만 원까지다. 시승차인 SDV6 AB 다이내믹 모델은 디젤엔진 최고 트림으로 1억 5,530만 원. 최근 정부가 개별소비세를 인하하면서 160만 원~230만 원 정도 가격이 더 내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차선유지 조향보조 시스템은 타이어가 차선에 걸칠 때 반응한다. 타이어가 차선을 밟을 때쯤 조향에 개입하는 것. 그 때문에 가끔 반응이 거칠고 갈지자 행보를 보일 때가 있다. 차로 중앙을 꾸준히 유지하는 조향이 운전자나 탑승객에는 좀 더 편하다.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룸미러를 통해 보는 후방 시야는 제한적이다. 2열 시트에 있는 3개의 헤드레스트가 룸미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룸미러를 볼 때마다 거슬린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