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은 쉐보레 크루즈 가격을 왜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했을까. 크루즈가 많이 팔리면 군산공장을 닫을 수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공장 닫을 궁리에 차 팔 생각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군산공장이 폐쇄된다는 소식에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군산공장 폐쇄를 예고한 한국지엠은 정부와 지원금 협상에 나서고 있다. 지원금 주지 않으면 한국지엠의 주력, 부평공장까지 영향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다.

한국지엠은 군산공장을 살릴 수 없었을까. 충분히 가능했다고 본다. 한국지엠엔 신형 크루즈가 있었고 신형 크루즈는 군산공장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꼭 1년 전 2017년 2월 쉐보레는 신형 크루즈를 출시했다. 중형 이상의 가치를 담은 준중형차로 참 잘 만든 차였다. 다운사이징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형 크루즈는 완성도가 높았다.

하지만 가격이 이상했다. 시작 가격이 1,890만 원부터였다. 1.4ℓ 가솔린 터보 엔진을 장착한 준중형 세단의 최저 가격이 그랬다. 출시와 함께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고 쉐보레는 결국 가격을 200만 원가량 내려야 했다. 출시와 함께 가격을 내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예를 찾기 힘든 경우다.

크루즈 디젤을 출시할 땐 꼼수를 썼다. 가격을 공개하지 않고 미디어 시승회를 진행한 뒤 차량 소개 기사와 시승기 등이 게재된 이후 가격을 공개한 것. 이후 1.6 디젤 엔진을 장착한 크루즈의 최저 가격은 2,249만 원으로 공개했다. 크루즈의 가장 강력한 경쟁 모델인 아반떼 디젤의 최저가는 1,640만 원이다. 60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이건 차를 판매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아반떼는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이다. 전체 내수시장에서 상위권에 들고, 준중형 세단 시장에서는 단연 최고의 차다. 크루즈는 그런 아반떼와 경쟁해야 하는 추격자다. 추격자가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예는 거의 없다. 단돈 1원이라도 낮게 책정해 한 대라도 더 많이 팔려는 게 추격자의 자세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그러지 않았다. 턱없이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 판매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기자가 쓴 당시 크루즈 시승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얼만데. 쉐보레로선 가장 아픈 질문이다. 시작 가격 1,890만 원은 아반떼보다 무려 300만 원 이상 비싸다. 시승차인 LTZ 디럭스 모델은 2,478만원. 장작된 옵션들을 합하면 300만 원 이상 더 줘야한다.
잘 만든 차를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걸까. 강한 의지는 때로 아집일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라면 고가전략이 좋은 카드일 때가 있다. 쉐보레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다. 대중 브랜드에선 아무리 좋아도 가격이 비싸면 소비자에겐 좋은 차가 아닌 비싼 차일 뿐이다. 많이 팔려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 비싸게 받으려면 판매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쉐보레는 후자를 택한 듯하다.

턱없이 비싼 차가 잘 팔릴 리가 없다. 크루즈는 2017년 판매량 1만대를 겨우 넘겼다. 크루즈의 판매 감소는 결국 군산공장 폐쇄로 이어지는 빌미가 됐다.

한국지엠은 군산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아니라고 본다. 차를 팔려는 치열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크루즈 가격을 경쟁 모델보다 50~100만 원 낮추고 대대적인 판매 공세에 나서면 월 1만 대 못 팔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치열함은 한국지엠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지엠이 살길은 정부에 있지 않다. 시장과 소비자가 쉐보레를 살릴 수 있다. 기적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시장을 외면한 자동차 메이커가 살아날 방법은 없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