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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보면 그냥 잘 생긴 그저 그런 차들중 하나다. 아마도 검은 색이어서 그랬을 터. 튀지 않아 보이는 차를 찬찬히 뜯어보면, 예사스럽지 않음을 금방 알아챈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이다.

SVR을 먼저 해석할 필요가 있다. 레인지로버 중에서도 최고의 모델에만 붙는 배지다. 이를 제작하는 전담부서가 따로 있다. 최고의 에이스로 만들어진 차다.

엔진룸 안에는 5.0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이 숨어 있고 타이어는 21인치를 택했다. 게다가 실내의 호화스러움이란… 랜드로버 라인업중 가장 빠른 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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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고급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호화롭다. 가죽이 아닌 부분을 찾기 어렵다. A 필러와 지붕은 스웨이드 가죽으로 덮었고 시트를 포함해 브라운&블랙 컬러의 가죽은 고급스러움에 더해 실내 분위기를 적당히 띄워준다. 빈틈없이 가죽으로 채웠다고 해도 좋을 정도.

10.2인치 인포메이션 모니터를 통해서는 차의 중요한 기능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라면, 센터와 리어 디퍼렌션이 잠기고 풀리는 부분을 모니터하면서 움직일 수 있다.
랜드로버의 상징, 테리언 리스펀스 레버를 통해서 다이내믹, 잔기, 자갈, 눈, 진흙, 모래, 바위 등 노면 상태를 택해 움직일 수 있다. 초보 오프로더에겐 듬직한 지원군이다. 레버 선택만 실수하지 않으면 오프로드에서도 폼 나게 차를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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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은 2.8회전한다. 민첩한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스포츠’라는 이름값을 하겠다.

헤드레스트가 일체화된 버킷 시트는 차와 운전자의 몸을 일체화 시킨다. 몸을 감싸 안듯 받아주는 시트다.

랜드로버는 죠그셔틀 방식의 변속레버를 사용한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일반적인 변속 레버를 적용했다. 적극적인 수동변속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손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과속 방지턱은 가볍게 넘어간다. 의식하지 않고 감속 없이 툭 치고 넘어가도 충격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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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높이는 1,780mm. 제법 높다. 시트 포지션을 제일 낮은 위치로 세팅해도 제법 높아, 도로를 내려다보며 달린다. 시원하게 멀리, 넓게 볼 수 있다. 선루프 역시 지붕을 넓게 커버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이 차를 보면 조금 답답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차 안에서 바깥을 보면 정반대다.

V8 5.0 엔진에 수퍼차저를 더해 550마력의 힘을 낸다. 숫자 하나 하나가 대단하다. 메이커가 밝히는 0-100km/h 가속시간은 4.7초. 흔히 500마력, 제로백 5초를 수퍼카의 기준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이에 따르면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수퍼카가 맞겠다. 그런데 SUV다. 수퍼카 수준의 SUV. SUV에 이렇게 큰 힘이 필요할까 싶지만, 이렇게 큰 힘을 가진 SUV가 있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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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힘을 조율하는 건 자동 8단 변속기다. 9단이 아니라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다. 이미 강력한 파워를 가졌고, 한 방울의 연료에 연연할 차는 아니다. 1억 8,570만원. 2억에 가까운 이 차를 구매하는 이에게 필요한 건, 최고의 고급감, 호쾌한 주행, 거침없는 오프로드 주파 정도가 아닐까. 6.7km/L에 불과한 연비는 문제가 안 된다.

가속페달을 꾹 밟아 속도를 끌어올렸다. 가속반응만 보면 이 차는 스포츠카다. 2.5톤에 육박하는 덩치가 솜털처럼 가볍게 달린다. 전혀 무게감이 없다. 시프트 다운에 대한 반응이 빠른 편이어서 언제든지 힘 있게 차를 다룰 수 있다. 패들 시프트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다.

시프트다운과 킥다운을 함께 걸면 화살처럼 날아간다. 아주 잠깐 사이에 고속으로 치고 나간다. 금방 액셀에서 발을 떼야 한다. 고속주행에서도 불안함이 없다. 차체가 높아 흔들거리고 불안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앞에 더블위시본, 뒤에 인테그럴링크 서스펜션에 에어서스펜션이 더해져 탁월한 수준의 고속주행 안정감을 확보했다. 차체가 안정된 덕분에 속도가 주는 불안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수시로 계기판을 보며 속도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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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만진 엔진사운드는 귀에 착착 감긴다. 재미있는 건, 가속페달을 떼고 마지막 순간에 들리는 소리다. 마치 털어내듯 마무리하는 소리다.

275/45R21 사이즈의 타이어는 도로를 확실하게 움켜쥔다. 사륜구동과 맞물려 도로에 밀착되는 그립감을 전한다. 4륜구동은 토크 배분을 42:58로 기본 세팅했다. 앞쪽으로 최대 63% 뒤는 최대 77%까지 토크를 배분한다.

높은 차체가 주는 불안감은 코너링에서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SUV의 어쩔 수 없는 특성.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여느 SUV들과는 다른 코너링을 보였다. 여유 있고 부드럽게 코너를 즐길 수 있었다. 불안감? 그런거 없다. 늘 조금 더 밟아도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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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의 안정감이 이럴까.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배지만, 덩치가 커지면 흔들림이 확연히 줄어든다. 레인지로버 스포츠가 그랬다. 도로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달리는 자동차지만 구동계통과 타이어, 서스펜션이 훌륭하게 이를 커버해 탑승객들이 느끼는 흔들림은 크게 줄어든다.

이 차가 달려야할 곳은 서킷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발군의 성능, 탄탄한 하체, 빠른 반응 등. 스포츠카가 가져야할 덕목을 이 차는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런데 SUV다.

레인지로버 스포츠야 말로 어떤 길에서도 잘 어울린다. 일반 도로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서킷에서 달린다면 스포츠 세단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의 고성능이다. 랜드로버의 안방격인 오프로드에서야 말할 필요도 없다.

레인지로버 스포츠야말로 세상의 모든 길을 이길 수 있는 차다. 그런 차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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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2억 가까이 지불해야 하는 차인데 편의장비는 부족하다. 원래 이 차에 적용되는 차선이탈 경고, 차선유지 시스템, 인컨트롤, 음성컨트롤, 수심감지 시스템, 자동주차 시스템 등이 국내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국내 고객들도 이런 장비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랜드로버는 이제 국내 수입차 시장의 메이저 브랜드다. 국내 고객들을 위한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할 때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