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로퍼가 탄생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갤로퍼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개는 성공 스토리를 떠올리게 된다. 성공 스토리 말고도 복잡한 SUV 관련 법규를 두고 규제하려는 정부와 법규를 활용해 판매를 늘리려는 제작사 간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나 특수 자동차를 만들면서 겪었던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9인승 갤로퍼가 그런 경우다. 1992년 처음 출시한 갤로퍼는 이듬해인 1993년 6월 초 9인승 모델을 추가했다. 미쓰비시 하이루프를 베이스로 3열에 2인승 벤치 시트 두 개를 마주보게 배치해 2+3+4=9 형식으로 9인승을 만들었다. 당시 9인승은 상업용이라는 이유로 특별소비세가 부과되지 않아 공장도가의 10%를 특소세로 부과하는 5/6인승 승용 갤로퍼에 비해 가격이 200만원 가까이 낮았다.

가격은 낮았지만 그 대신 주행차선의 제한, 고속도로 최고속도 제한, 잦은 검사 기간, 승용 보험할인율 승계 불가 등의 제한이 많아 갤로퍼 전체의 10~20% 정도 팔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 정부는 지프형차에 대한 비합리적인 혜택을 줄이기 시작했다. 승용 지프의 특소세를 일반 승용차와 동일하게 부과한 것. 배기량이 2,500CC인 승용 갤로퍼의 특소세는 10%에서 20%로, 200만 원 이상 오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영향은 바로 나타나 월 3,000여 대씩 판매되던 갤로퍼는 1994년 들어 월 5~600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판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때 9인승이 구세주 역할을 했다. 특소세가 부과되지 않아 승용 갤로퍼보다 200만원 가까이 낮았던 9인승은 승용 갤로퍼가 200만원 가까이 오르자 가격 차이가 400만 원 이상이 되어 승합차로서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월 3,000대 수준으로 판매가 치솟았다.

정부에서 이 호황(?)을 그대로 두고 볼 리 없었다. 다시 칼을 빼들었다. 9인승 지프형은 승합임에도 불구하고 승용과 동일한 특소세를 부과키로 한 것. 정부는 1995년 6월부터 이를 시행하려고 했으나 영세부품업체 다 망한다는 하소연에 3개월 늦춰 9월부터 늦춰 시행하게 된다.

추후 갤로퍼2 모델의 하이루프(이때는 킥업루프라 불렀다)모델에 LPG 모델을 내놓아 디젤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게 판매하기도 했다.
이 9인승으로 군용차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공군에서 발주했던 차를 제작하느라 뛰어다녔던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어느 날인가 군용 갤로퍼 납품과 관련해 연구소의 설계 담당자와 함께 공군부대로 출장을 가서 발주 내용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발주하고자 하는 차는 공군 전술항공 통제용 작전 차량이었다. 첨단유도장비를 탑재할 랙과 전원공급장치를 설치하고 산악지대를 오르내릴 수 있는 SUV가 공군의 요구사항이었다.

당시에는 갤로퍼 또는 쌍용의 무쏘가 대상이었는데 갤로퍼 9인승이 루프가 높아 장비탑재 및 운용 요원의 활동공간이 넓어서 유력 후보로 꼽혔다. 그전에 경찰차 등 정부 발주 차량의 주문 절차나 방법 등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발주처에서 요구 차량에 대한 제작 요구서를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군에서는 우리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차량에 탑재할 첨단 통신장비의 규격을 주면서 이 장비를 탑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꾸로 검토해오라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장비의 중량마저도 정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는 못 만든다고 버텼다. 군부대를 수시로 오가면서 우리가 검토한 자료를 확인받고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전화로 묻기도 하면서 진행했다.

일단 한 대를 만들었다. 품평을 거쳐야 하는데 도색부터 문제였다. 군용 도색은 갤로퍼 공장의 도장 부스를 사용할 수 없었고 게다가 보안 문제 등으로 공장에서는 도색이 불가능했다. 외부 도장업체로 BIW(BODY in WHITE)를 보내 도장을 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프레임과 패널을 조립하여 용접한 자동차의 BIW는 오랜 기간 공기 중에 접촉하면 산화되어 녹이 슬기 때문에 외부에 오래 방치할 수가 없어 외부의 업체로 운반하는 것도 문제였다. 당장 한 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중에 양산할 경우는 또 어떻게 할지 생산 현장의 반대도 풀어가야 할 일이었다.

일단 어찌어찌 한 대를 만들어가서 공군부대에서 보유 중인 통신장비를 탑재, 내부 품평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공군 내부의 승인을 받아 양산에 들어갔다. 울산공장으로 운전병과 장교, 부사관들이 와 차량을 인수해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장교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연구소의 설계 담당자와 함께 원주로 달려갔다.

문제가 심각했다. 통신장비 중량이 생각보다 무거워 뒷바퀴 부분이 주저앉아 타이어와 차량 하부가 맞닿아 운행이 불가능했다. 군에서도 자신들이 승인한 사항이니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담당 장교나 부사관 모두 징계를 면하기 어려울 듯했다.
부대에서는 설계 담당자에게 어찌하면 좋겠냐고 하소연했고 담당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 정도 무거운 장비를 탑재하려면 코일스프링을 어마어마하게 강하게 특수제작해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프링이라는 게 한번 만들면 수천, 수만 개를 만들어야 단가가 맞는데 군용 차는 고작 몇십 대분을, 아니 A/S용까지 고려해도 백여 대분을 제작할 뿐이라 그럴 경우 대당 가격이 도대체 얼마가 되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일단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보고했다. 부대에서는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냐고 수시로 연락이 오고.

얼마간인가 시간이 지나고 추가 비용 없이 스프링을 제작해서 지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당시 담당 장교는 아마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으리라.

그때 그 시절, 그런 갤로퍼도 있었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