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스피디움으로 가는 길은 설렌다. 늘 그렇다. 서킷에서 만나는 차는 어떤 이름을 가졌든 심장 짜릿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대는 아반떼 N. 스피디움에서 아반떼 N이 장기자랑을 원없이 펼치는 시간이다.

현대가 WRC를 통해 갈고 닦은 기술을 이식해 만든 고성능 세단. 자랑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디자인부터 성능, 편의장비까지. 그냥 준중형 세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비와 기능을 넣었다. 엄청난 오버 스팩이다. 평소 일반도로 위에서는 쓰지 않을 기능도 제법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이를 접은 듯 날이 선 몸은 영락없는 스텔스 전투기다. 날개는 뒤에 달렸다. 트렁크 리드 위로 배치한 넓은 스포일러. 이 날개는 비행기와는 반대다. 뜨는 몸을 눌러준다.

슬라럼과 론치 컨트롤로 아반떼 N과의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스티어링휠은 의외로 무겁다. 차체 무게감도 느껴진다. 가볍고 낭창거리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론치컨트롤이 작동하는 rpm도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다. 지름 360mm인 브레이크 디스크를 적용해 제동이 빠르다. 생각보다 일찍 차가 멈췄다.

2.0 터보 플랫 파워 엔진은 5,500rpm부터 6,000rpm 구간에서 최고출력 280마력의 힘을 낸다. 터보는 터빈 휠을 키우고 터빈 유로를 확장해 출력을 끌어 올렸다. N 그린 시프트를 이용해 터보 부스트 압을 높여 20초가 10마력의 힘을 더 낼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의 빨간 버튼을 누르면 입이 쩍 벌어지는 그린 시프트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린은 green이 아니다. grin(입을 드러내고 웃음)이다.

서킷 주행에 앞서 스피디움 인근의 지방도로를 달렸다. 일반도로에서 N 모드는 오버 스팩이다. 힘도 힘이지만 마구 내지르는 배기 사운드가 재미있다. 주변에 눈치도 보인다. 특히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때 터지는 팝콘 사운드가 그렇다. N 모드는 서킷에서만 사용하는 게 맞겠다. 일반도로에서는 에코 노멀 스포츠 모드 3개면 충분하다.

굽이굽이 넘어가는 강원도 산길은 아반떼 N이 재미있게 달리기에 참 좋은 길이다. 가속과 제동 조향을 반복하는 동안 아반떼 N은 단단하게, 조금은 묵직하게, 무엇보다 재미있게 달렸다.

서킷에선 심박수가 높아진다. 늘 그렇다. rpm도 높아진다. 항상 그렇다.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성능을 누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높낮이 차이가 심한 스피디움은 특히 더 재미있는 코스다. 그 위에 아반떼 N을 올렸다.

드디어 N모드. 엔진 사운드가 달라진다. TCR 엔진 사운드로 세팅해 들을 수도 있다. 가속하면 시프트업이 일어날 때 이른바 ‘뱅 사운드’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팝콘 소리가 들린다. 뱅 사운드는 연료분사, 팝콘 사운드는 점화제어로 소리를 만든다. N 사운드 이퀄라이저는 가상 엔진 사운드를 들려준다. TCR 경주차 사운드를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주행 중에 운전자가 딱히 할 건 없다. 부지런히 핸들을 돌리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적절한 시점에 밟아주면 된다. 그 뒤에서 N의 메커니즘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시프트 다운할 때 엔진 회전수를 기어에 맞춰주는 레브매칭, 트랙 주행에서 최적화된 변속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N 트랙센스 시프트, 좌우 바퀴 구동력을 각각 제어하는 N 코너 카빙 디퍼렌셜, 주행 모드와 환경에 따라 최적의 감쇠력을 확보하는 전자제어 서스펜션 등등이 주행상황에 최적화된 움직임을 만들어준다.

일반적으로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함께 밟으면 가속페달 작동을 멈추고 브레이크가 우선 작동하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기능이 작동한다. 안전을 위한 장치지만 서킷에선 불편하다. 아반떼 N은 스포츠 및 N 모드와 수동 변속 모드에서 왼발 브레이킹을 해도 가속페달이 작동한다. 제동과 가속이 동시에 가능해 좀 더 다이내믹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N 그린 시프트는 가속, 추월할 때 사용하면 좋다. 20초간 10마력의 힘을 추가로 더하는데 20초를 나눠서 쓸 수 있다. 10초간 작동했다 멈추고 다시 10초간 사용하는 식이다. 20초를 다 쓰면 40초를 기다려야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쏠쏠한 재미를 준다.

245/35R19 사이즈의 미쉐린 PS4S 타이어는 노면을 끈적하게 붙들고 달린다. 빠른 속도, 과격한 조향에도 노면을 놓치지 않았다. 앞바퀴 굴림이지만 뒷바퀴 접지력도 만족스럽다.

인제 스피디움은 구석구석이 재미있다. 하늘을 보며 올라가는 업힐 끝에 헤어핀, 그리고 이어지는 다운힐 끝에서 반경이 큰 와인딩. 좌우로 여러 차례 계속되는 코너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고난도 코스다. 아반떼 N은 거침없다. 조금 빠르게 코너에 들어서도 강한 제동과 급한 가속, 혹은 왼발 브레이킹으로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 드라이버의 역량만 뒷받침되면 아반떼 N 성능의 120%까지도 누릴 수 있겠다. 문제는 N이 아니라 운전자의 능력이다.


서킷 드라이빙의 마침표는 직선로다. 코스의 마지막 다운힐에 이어지는 직선로. N 그린 시프트를 작동시키고 가속페달을 완전히 밟아 있는 힘을 다해 달려 시속 180km를 터치할 수 있었다. 200km/h도 가능해 보였다.

디지털 기능도 재미를 더한다. N 트랙 맵은 국내 주요 서킷 맵을 보여주고 위치와 동선을 그대로 기록한다. 나중에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데 스마트폰 앱으로도 볼 수 있다. 현대 N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횡가속도(G-Force) ▲RPM ▲출력(토크) ▲랩타임 등을 기반으로 주행 기록을 분석해준다. 서킷별 랭킹 시스템도 있다. 아반떼 N 오너들끼리 순위 경쟁도 볼만하겠다.

오버 스팩이다. 서킷에서 재미있는 아주 많은 기능이 있지만 대부분 일반 공도에서는 써먹기 힘든 기능들이다. 절제와 겸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도로에서 팝콘 튀기며 장기자랑을 펼치는 건 피해야 한다. “그럴 거면 뭐하러 이 차를 타?” 하고 묻는다면 “그러게나 말입니다.”하고 답할 수밖에 없다. 고성능 차의 아이러니다.

많이 팔리는 차는 아니다. 고성능 차들이 그렇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만큼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존재 자체로 의미가 크다.

아반떼 N 판매가격은 ▲MT 사양 3,212만 원 ▲DCT 사양 3,399만 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계기판 왼쪽에 연결된 블랙 유광 패널. 이게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아무 기능이 없는 패널에 의미 없는 무늬를 그려 넣었다. 계기판을 확장하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채우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비워두는 것도 좋을 텐데 굳이 의미 없는 패널에 무의미한 무늬를 넣었다.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본다.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부족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