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있으면 운전자가 차량의 운전대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자동차가 스스로 도로에 깔린 교통신호망과 끊임없이 통신하며 알아서 달리는 자율주행 4단계 수준이 가능하게 된단다. 어릴 적 SF영화를 보면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차 안에서 운전자는 먼 곳에 계시는 부모님과 안부 영상통화도 하고 태블릿으로 회의자료도 검토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바쁘게 보낸다. 머지 않아 현실이 될 장면이다.

문제는 법이다. 자동차 관련 법규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동전화의 등장으로 관련 법규가 바뀌고 다시 자동차 제작까지도 영향을 미쳤던 사례를 돌아본다.

1988년 7월 1일 한국통신에서 모토로라의 그 유명한 벽돌폰으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폰 가격이 400만원, 당시 서울 변두리 전세값이었다. 이후 11년 만인 1999년 9월,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유선전화 가입자 수를 추월했다. 그해 이동전화 보급률은 45%로 한국은 핀란드, 노르웨이 등 이동전화 선진국들에 이어 세계에서 6위였다. 가입자 수는 2,100만 명으로 세계 5위였고. 이놈의 나라, 한번 탄력받으면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본성은 알아줘야 한다!

이동전화의 보급이 늘어나자 운전 중 휴대폰 사용자의 사고가 잦아졌다. 결국 2001년 6월부터 운전 중에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었고 핸즈프리나 스피커폰 등의 장치를 써서 통화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했다. 결국 모든 차는 핸즈프리를 적용하라는 말씀이었다! 법을 어긴 운전자에게는 벌점 15점에 승합차 7만 원, 승용자동차 6만 원, 이륜자동차 4만 원, 자전거 3만 원의 범칙금이 부과되었다.

6월부터의 계도기간을 거쳐 11월부터는 본격 규제가 시작되므로 자동차 제작사들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7월 이후에 차량변경 이벤트가 계획되었던 차량들은 자연스럽게 개선 범위에 핸즈프리가 포함되어 함께 개발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차들이 문제였다.

라비타가 그랬다.
이놈의 차는 그 개발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이전에 썼듯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차였고 핸즈프리마저도 그 문제 중의 하나였다.

라비타는 유럽 시장 공략을 목표로 개발한 차였다. 르노의 메간 세닉과 같은 세그먼트였다. 당시 소형 MPV들은 없어서 못 팔정도였고 라비타는 이 시장에 내놓을 전략차종이었다.

당시 라비타는 2001년 7월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유럽 런칭이 해를 넘기게돼 해외영업 부분에서 2001년중에 차를 내놓으라고 난리였다.

수없는 검토를 거쳐 2001년 4월로 국내 런칭이 결정되었는데 핸즈프리가 애매했다. 제작사에서 만들면 스위치라든가 마이크 등을 별도로 장착하는 게 아니라 모듈로 만들어야 해 결국 다른 부품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른 차종들은 7~8개월을 두고 개발하니 나름대로 가능했지만, 라비타는 개발기간으로도 부족한 3개월 정도 기간에 품질테스트까지 해야 하니 연구소나 개발, 특히 품질 부문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정몽구 회장이 자나깨나 품질을 강조하던 시절이라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품질과의 타협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아마 라비타의 국내 양산이 3월만 되었어도 핸즈프리 적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발매 8개월 만에 핸즈프리를 적용한 신차(?)를 내놔야 했겠지만. 당시 설계, 개발, 구매, 품질 부문에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건 이해하겠지만 상품팀에도 같이 불똥이 떨어졌다. 상품팀에서 차를 직접 개발하는 것도 아닌데 뭘 하라고?

개발부문 왈, 정몽구 회장 주재 회의를 하는데 라비타의 양산 일정과 핸즈프리 적용 여부를 협의하던 중에 마케팅에서 라비타 양산 시점에 핸즈프리를 적용하게 된다면 국내 최초 적용이므로 마케팅 포인트가 되어 판매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판매에 도움이 된다는데 마다할 CEO가 있겠는가?

아마 개발, 품질 부문에서는 웬수같았을 것 같다. 가뜩이나 양산 일정이 빠듯한데 거기에 핸즈프리까지 추가로 들어갔으니 엎친 데 덮친 꼴이 되었다. 그러니 빠른 시일 내에 통화 음질 테스트 등 품질개선 활동을 마쳐야 하므로 상품팀에게서도 테스트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공동책임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그때부터 힘겨운 핸즈프리 성능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그놈의 최초 때문에! 울산공장에서 여러 대의 시험차에 핸즈프리를 장착하고 국내 여러 곳으로 흩어져 직접 유선/이동전화에 전화해 통화품질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아마 회사직원들은 물론 가족, 친척, 친구 중에 내 전화를 받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상품팀에는 아예 핸즈프리에서 오는 전화만 받는 직원을 정해놨고. 덕분에 몇 년간 전화를 못 했던 친척 어른들에게도 안부 전화를 드릴 수 있었다.

국내 최초의 첨단(!) 핸즈프리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ABS니 에어백이니 자동제동장치니 하는 안전장비들이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어 적용되고 있다. 핸즈프리는 차를 정지시키는 기술도 아니고 충돌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첨단 장비도 아니다. 하지만 사고 발생을 미연에 예방하는 선안전(Pre-Safe)장비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안전 장비다.

자율주행 차가 당장 상용화되어 내일부터 운행을 시작한다 해도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차내에서 전화 통화를 해야 한다. 처음 적용할 때처럼 연결 케이블로 차와 내 전화기를 연결할 필요도 없이 요즘은 그냥 차에 타기만 하면 이미 설정된 블루투스로 전화기를 연결해주니 편하기 그지없는데도 아직도 핸드폰을 손에 들고 통화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운전 중 전화 통화로 인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규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처음 규제가 시작된 2001년 이후 범칙금이나 벌점 등이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일본은 2019년부터 과태료, 벌점 등이 대폭 강화되었고 반복적으로 위반 시에는 6개월 이하의 징역형도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운전 중에는 반드시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핸즈프리를 이용해 사랑하는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하도록 하자.

그놈의 핸즈프리가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