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반떼가 GTS 배지를 달았다.

3.8ℓ V8 트윈터보 엔진이 핵이다. 페라리와 마세라티가 함께 개발했다는, 마세라티에서는 콰트로포르테 GTS에 먼저 올라간, 바로 그 엔진이 이제 르반떼와 만난 것. 무려 550마력의 힘을 내는 르반떼 GTS에 올랐다.

르반떼는 지중해의 바람이다. 온화하다가도 순식간에 강풍으로 돌변하는 변덕 심한 바람. 르반떼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이름이다.

큰 차지만 실제보다 작아 보인다. 5,020×1,980x1700mm의 크기다. 휠베이스도 3,002mm로 무려 3m를 넘긴다. 앞뒤 오버항은 그래서 짧다. 실내 공간을 넓게 하고, 주행안정감을 확보하는데 유리한 체격이다.

실제보다 작게 보이는 건, 쿠페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지붕 때문이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구석구석 배치됐다. 앞으로 숙인 보닛은 언제든 달려나갈 태세다.

아낌없이 가죽을 사용한 인테리어는 더없이 호화롭다. 게다가 시승차는 실내에 빨간 컬러를 적용해 무척 자극적이다. 지붕은 스웨이드 가죽으로 덮었고, 시트와 대시보드는 가죽이다. 카본 파이버와 금속 재질도 손끝이 느끼기에 무척 고급스럽게 다듬었다. 플라스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찾아보기 어렵다.

묘한 착시효과를 만난다. 운전석에 오를 땐 분명 SUV 높이인데, 실내에 들어가 앉으면 세단처럼 느껴지는 것. 세단처럼 운전하다가 차에서 내릴 때야 “맞아 이차 SUV지”하고 착시에서 빠져나온다.

스포츠모드에서 가속페달을 터치하면, 그 느낌이 그대로 시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온다. 가속페달과 시트가 직결된 느낌이다. 강하고 거칠다. 노멀모드에선 긴장감이 조금 덜하고, ICE 모드에선 허리띠를 풀어버린 느슨한 느낌이 전해온다. 주행 모드에 따라 느낌 차이가 분명하게 다가온다.

시동 버튼이 왼쪽에 자리했다. 시동장치는 왼쪽에! 레이싱을 통해 성장한 마세라티가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부분이다. 신형 기어 레버는 손안에 쏙 들어온다. P는 버튼식으로 눌러 작동한다. 변속레버 옆에 나란히 줄을 선 주행모드 버튼들. 에어서스펜션을 적용한 차체는 6단계, 75mm 범위에서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은 2.8 회전한다. 차의 크기에 비하면 예민한 편이다. 핸들을 완전히 돌려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네 바퀴에서 관절 꺾이는 소리가 들린다. 타이트코너 브레이킹 현상이다. 네 바퀴의 회전 차이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현상. 뒷차축에는 기계식 차동제한 장치 (LSD)가 있다.

ICE 모드에서 차가 멈추면 엔진이 꺼진다. 핸들에 힘을 줘 돌리려고 하면 바로 재시동이 걸린다.
첨단주행보조장치(ADAS)는 차선과 차간거리를 유지하며 스스로 움직인다. 핸들에서 손을 떼면 딱 5초 기다려 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에누리 없이 경고등과 경고음을 띄운다.

시속 100km에서 1,500rpm을 마크한다. 수동변속을 이어가면 3단 5,000rpm까지 커버한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느낌은 강하다.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강하게 맞받아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거칠게 느껴지진 않는다. 참으로 인상적인 서스펜션이다.

교통 흐름에 맞춰 움직일 때, 엔진 소리는 존재감이 낮다. 숨을 죽인 소리다. 정체를 숨기고 호흡을 가다듬는, 차분하게 호흡조절 하는 느낌이다.

위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속페달을 힘줘 밟자 거친 호흡을 몰아쉰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속도를 높이는데,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550마력의 실체를 몸으로 느끼는 것. 도로 끝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른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운전에 집중해야겠다는 의지만 살아난다. 가속이 워낙 빨라 페달을 오래 밟지도 못하지만, 자꾸 가속페달에 발을 올려놓게 되는 건, 중독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중독되고 만다. 이 맛에 마세라티를 타는구나. 절로 감탄사가 흐른다.

SUV지만 잘 달린다. 마세라티니까 가능한 일이다. 차의 각 부분이 달리기에 최적화됐다. 긴 휠베이스에 0.33인 공기저항 계수, 엔진과 변속기는 물론, 타이어, 서스펜션, 사륜구동 시스템, 통합차체컨트롤 (IVC), 앞뒤 50:50인 무게배분, 그리고 시트에 이르기까지. 균형을 잃지 않고 고속주행을 할 수 있게 모든 부분이 제 할 몫을 다한다.

재미있는 건, 극한적인 고속주행까지 능수능란하게 해내고 있지만, 독일차와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는 것.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산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뜨거운 감성이 한발 앞선다. 거침이 없어서 바람소리조차 눌러버리는 엔진 사운드가 그렇고, 한계속도에 다가서서도 빳빳하게 고개를 쳐드는 가속감이 그렇다. ‘이탈리안의 뜨거운 열정’이라고 이해해 본다. 역시 이탈리아 차다.

사륜구동 시스템인 지능형 Q4는 후륜 기반으로 작동한다. 안정적으로 움직일 땐 구동력의 100%를 뒷타이어로 보낸다. 사륜구동이 필요할 땐 15분의 1초 만에 앞뒤 50:50까지 구동력에 변화를 준다. 뒤차 축에 기계식 LSD를 적용해 정확한 반응을 끌어낸다.

판매가격은 1억 9,600만 원. 공인복합 연비는 5.7km/L다. 연비 걱정하면 이 차 못 탄다. 그래도 파주-서울 간 55km 구간에서 실제로 측정해본 연비는 8.0km/L로 공인복합 연비를 훨씬 웃돈다.

르반떼 GTS. 도저히 SUV라고 믿기 힘든 최고수준의 고성능, 호화로운 인테리어, 드라이버의 심장을 뒤흔드는 이탈리안의 뜨거운 피, 감성을 느꼈던 아주 특별한 SUV다. 상상을 초월하는 550마력의 힘에 떠밀려 날아오를 듯 달리고 나면, 묘한 중독성에 몸을 떨게 된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 넘사벽이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평생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차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패들 시프트와 방향지시등이 간섭한다. 방향지시등을 조작할 때 패들이 자꾸 걸린다. 마세라티의 패들을 스티어링휠과 분리됐고 큼직하게 배치된 스타일이어서 조작이 쉬운 대신, 코너에서 스티어링휠을 돌린 상태에선 조작이 불가능해진다. 패들을 다시 만드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결국 마세라티 고유의 방식을 버리라는 것이어서 애매하다. 어쨌든 분명한 건 방향지시등과 패들 시프트가 서로 간섭한다는 것. 어떤 방법이 됐든 이를 해결하는 게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