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90. 쓰기는 좋은데 읽기가 애매하다. 지구공이 우리 입에는 착 달라붙는데, 엉뚱한 상상을 부르고, ‘지나인티’ 혹은 ‘쥐나이니’ 정도의 발음이 될 텐데 입에 붙지를 않는다.

에쿠스에서 EQ900을 건너 목적지 G90에 닿았다. 조심조심 징검다리 건너듯, 이름을 바꿔가며 합류한 셈이다. 이제 비로소 70, 80, 90으로 이어지는 제네시스 세단 라인업의 형식이 완성됐다. 때마침 미국에서 날아든 낭보, 유서 깊은 한 자동차 전문지가 G70을 올해의 차에 선정했다는 것.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소식이다.

G90은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세단이자, 명실공히 한국 차 중 최고의 차다. 외인부대의 작품이다. 람보르기니 출신 피츠제랄드, 벤틀리에서 온 루크 호이동크가 무대에 올라 G90을 소개했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 제네시스를 한국에 묶어둘 필요는 없다.

완전히 싹 바꾼 게 아닌데, 꼭 그렇게 보인다. 디자인을 완전히 변경했기 때문이다. 파워트레인은 이전 그대로여서 풀체인지 아닌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다. 그래도 페이스 리프트라는 표현보다는 디자인 풀체인지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완전히 다른 차로 보여서다.

카리스마를 품고 있다. 에쿠스, EQ900보다 훨씬 더 당당한 카리스마가 살아있다.

루크 동커볼케는 이 차를 소개하며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쿼드 램프”라고 했다. 눈을 먼저 그렸다는 얘기다. 화룡점정의 역순이다. 4개의 LED 램프로 구성된 헤드램프를 가로지르며 방향지시등을 배치했다.

G매트릭스 패턴으로 채운 크레스트 그릴은 G90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번쩍이는 금속으로 촘촘하게 짜 넣은 그물처럼 그릴을 만들었다. 슈퍼맨 그릴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G 매트릭스 패턴은 G90 디자인 키워드중 하나다. 다이아몬드의 난반사 하는 빛을 형상화한 것. 화려하고 정교한 선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릴은 물론 19인치 휠, 실내 가죽시트의 퀼트 패턴 등에 G 매트릭스 패턴이 사용됐다.

5m가 넘은 측면 모습은 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몇 개의 라인이 대형세단의 견고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뒷모습은 좌우의 램프를 연결하는 라인을 중심으로 범퍼 아래 두 개의 배기구가 포인트.

큰 폭으로, 아니 완전히 디자인을 변경했는데, 차의 크기는 이전 그대로다. 1mm도 더 늘거나 줄지 않았다.

인테리어는 가죽과 나무, 금속의 3박자가 잘 어우러졌다. 모두 ‘고급’을 드러내는 소재들이다. 손끝이 그 고급을 먼저 느낀다. 가죽의 부드러움, 나무의 질감, 버튼 표면 굴곡 처리 등을 손끝이 먼저 알아챈다.
12.3인치의 터치패널은 시원하고 선명했다. 터치 반응도 나무랄 데 없다. 손가락 두 개로 화면을 확대 축소도 할 수 있다.

이 차의 중심은 뒷좌석이다. 아주 호화로운 공간이다. 공간 그 자체가 주는 고급스러움을 무시할 수 없다. 텅 빈 공간이어도, 넓다면 그 자체로 고급이다. 그뿐 아니다. 개별 모니터가 있고 전동식 시트는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준다. 머리를 받쳐주는 헤드레스트가 베개처럼 편했다. 눈을 감으면 잠들 것 같다.

음성인식 기술은 확실히 더 좋아졌다. 오디오 전화는 물론 목적지도 이제 음성명령으로 정할 수 있었다. 카카오 i의 음성인식 기술이 적용됐다.

마이크로 에어필터를 사용해 외부공기유입을 제어하고, 무선으로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OTA 시스템 등은 아마도 ‘테슬라’에게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내비게이션은 스마트크루즈컨트롤 시스템과 연동한다. 도로 정보를 읽고 거기에 맞춰 속도를 조절한다. 코너에서는 도로가 굽은 정도 즉 곡률을 계산해 적절하게 속도를 줄인다.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는 곳에선 역시 스스로 속도를 줄인다.

반자율운전 수준도 더 높아졌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거나 갈지자걸음을 하는 일 없이 차로의 중앙을 정확하게 유지하며 달린다. 굽은 길에서는 그냥 핸들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생각하면 된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건 차였다. 훨씬 완성도가 높아진 것을 느꼈다. 어리버리한 초보 운전자보다 훨씬 낫다.

외장 컬러 9개, 내장 컬러 7개. 63개의 내외장 컬러 조합이 가능하다. 여기에 선루프, AWD, VIP 시트 등의 옵션을 더하면 약 2만 가지의 경우의 수가 생긴다. 제네시스 고객은 2만 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대중 브랜드가 기성복이라면, 프리미엄 브랜드는 맞춤옷과 같다. 고객이 요구하는 하나하나를 맞춰줘야 한다. 까탈스러운 고객이어도 그가 요구하는 것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프리미엄 브랜드다. 이제 제네시스가 손을 번쩍 들고 그 요구들을 맞춰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선언은 했지만, 제대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공장의 생산 시스템이 이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의욕만 앞서 말을 먼저 내뱉은 것은 아닌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3.3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370마력의 힘은 단단했고, 고속에서도 팽팽했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이 차체를 지탱한다. 노면 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늘 평안함을 유지한다. 스포츠카의 느낌이 ‘빳따’의 느낌이라면, G90은 수건으로 두세겹 둘러싼 빳따의 느낌이다. 충격과 부드러움을 함께 느끼게 되는 서스펜션이다.

H 트랙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은 고속과 코너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아주 빠른 속도에서도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끝까지 가속을 이어간다. 사륜구동이 뒷받침하는 주행안정감은 탁월했다. 스포츠카처럼 다뤄도 너끈히 따라온다. 이게 최고급 세단인지, 스포츠세단인지 정체가 모호하다. 아니, 두 얼굴 모두를 가졌다.

파주를 출발해 ‘제네시스 강남’까지 60km를 에코모드를 이용해 달렸다. 놀랍게도 12.2km/L의 연비를 기록할 수 있었다. 공인복합 연비는 8.0km/L. 공차중량 2,165kg에 3, 3ℓ 배기량을 감안하고 판단해야 한다. 힘쓸 땐 깡패지만, 아낄 땐 자린고비다.

G90의 엔트리모델은 3.8 럭셔리로 7,706만 원이다. 3.3T는 8,099만~1억 1,388만 원. 5.0은 1억 1,878만 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패들시프트는 작다. 손도 작아서 패들을 조작하려면 손을 깊숙하게 집어넣고 스티어링휠을 잡아야 한다. 만든 사람들이 손이 큰걸까? 조절해주면 좋겠다.
대시보드상 햇볕에서 모니터를 가려주는 부분이 날카롭게 날이 섰다. 위험하다. G매트릭스 패턴은 선이 화려하고 기교가 넘친다. 자칫 가볍게 보일 수 있다. 잘 절제된 선과 면이, 라디에이터 그릴과 휠에서 무너지는 기분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