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차의 연비가 아니다. 공인복합연비 16.6km/L. 하이브리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형세단인데 말이 안되는 연비다. 실제 연비는 더 말이 안된다. 100km를 달리는 동안 20.6km/L의 실주행연비를 보였다. 가솔린 5리터도 다 안쓰고 100km를 주파한 것. 이쯤되면 연비가 미쳤다. 신형 아발론 하이브리드 얘기다.

5세대 모델로 확 바뀐 올 뉴 아발론 하이브리드. 자료에는 “토요타를 대표하는 풀 사이즈 세단”으로 소개하고 있다. 플래그십 세단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캠리는 모두가 알지만, 아발론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플래그십에 걸맞는 강한 존재감이 부족하다. 잘나가는 동생을 둔 형의 그늘이 느껴진다.

아발론은 ‘캠리’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한다. TNGA, 토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쳐다. ‘저중심 설계’가 가능한 넓고 낮은 차체에 2.5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 배터리의 조합으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한다.

일본 장수의 투구같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얇은 헤드램프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인상파 배우의 느낌이다.

5세대 아발론의 특징은 넓은 공간, 훨씬 개선된 주행품질과 승차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넓고 낮은 TNGA 플랫폼에 기인하는 특성이다. 길이와 너비가 15mm, 휠베이스는 무려 50mm가 확대됐다. 덕분에 실내, 특히 뒷좌석은 아주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한없이 넓은 무릎 공간에 비해 머리 윗공간은 제한적이다.

트렁크도 넓다. 골프백 4개를 다 넣을 수 있을 정도다. 하이브리드용 배터리를 뒷좌석 시트 아래에 배치한 효과다. 배터리를 옮겨 공간도 얻고, 무게중심을 낮추는 효과도 함께 얻었다. 일거양득이다.

차체는 낮은데 시트는 낮지 않다. 시트를 제일 낮춰도 높게 느껴진다. 운전자세를 맞추다 보니 시트를 낮추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제원표에선 숫자 6이 자주 눈에 띈다. 공차중량 1,660kg, 공인 복합연비 16.6km/L, 판매가격 4,660만 원 등이다. 우연치곤 재미있다.

기본적으로 ‘강함’ 보다는 ‘부드러움’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연비가 중요한 하이브리드여서다. 공인복합연비가 16.6km/L지만 실제 주행연비는 20km/L를 넘겼다. 영월을 출발해 양평 휴게소까지 약 100km를 달린 연비가 20.6km/L였다. 이보다 더 좋은 연비를 기록한 이들도 있다. 아무리 하이브리드라고 해도 대형세단이 20km/L를 넘는 건 미친 연비다. 대단하다.

인테리어는 견고한 가로라인을 중심으로 센터페시아의 세로 라인이 겹치는 구조다. 센터페시아가 재미있는데,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건축물 같은 구조로 안쪽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계기판은 7인치, 센터페시아 터치스크린은 9인치로 구성했다.

USB 포트를 앞에 3, 뒤에 2개를 마련했다. 탑승객 모두가 하나씩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충전하기 바쁜 사람들에겐 다툴 일 없어 좋겠다.

계기판에 rpm은 없다. 스포츠모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동 건다는 표현보다는 ‘스위치 온’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엔진이 시동 걸리는 게 아니어서다.
차는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윙’하고 낮게 깔리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낮은 속도에선 전기모터로 움직인다. 가속페달을 조금 깊게 누르면 엔진이 살아나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조용히 모터로 움직이는 느낌을 가급적 오래 즐기는 게 좋겠다.

버튼을 눌러 EV 모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지만, 원할 때마다 정확하게 EV 모드가 작동하지는 않았다. 주행속도, 주행모드, 온도, 도로 경사도 등 주행상황에 따라 EV 모드가 작동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EV 모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평지 혹은 내리막에서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오토글라이드컨트롤이 작동한다. 엔진을 끄고 탄력으로 움직이게 해준다. 감속을 더디게 해 연료 소비를 줄이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오토스톱 시스템이 차가 정지할 때 엔진이 멈추는 것이라면, 오토글라이드컨트롤은 차가 움직이는 중에 엔진스톱이 일어나는 셈이다.

TSS(토요타 세이프티 센스)는 기본적용된다. 앞뒤로는 차간거리를 조절하는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컨트롤, 좌우로는 조향에 직접 개입하는 차선이탈 경고장치가 있고, 긴급제동보조시스템과 오토매틱 하이빔이 더해진다. 이들 4개의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반자율운전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준다. 차간거리 유지는 제법 훌륭하다. 차선을 이탈할 때 경고음을 내며 조향에 개입해 차를 안으로 밀어 넣어준다. 핸들에서 손을 놓고 있으면 잠시 후 핸들을 쥐라는 경고가 뜬다. 반자율 운전에 기대기보다는 운전자의 빈틈을 슬며시 보조해주는 정도로 이해하고 사용하면 딱 좋을 정도다.

2.5ℓ 가솔린 엔진은 178마력, 전기모터는 120마력으로 캠리와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 총 시스템 출력은 218마력으로 211마력인 캠리보다 조금 더 강하다.

가속. 페달은 저항하지 않는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데 걸림이 없다. 정지상태에서 급가속하면 초반에 힘을 끌어모으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차체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 비로소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eCVT를 적용했다. 힘의 끊김이 없는 가속이 인상적이다. 고속주행에 이르기까지 변속 쇼크가 없다. 무단변속기에서 느낄 수 있는 쭉 밀고 올라가는 가속감이 재미있다. 계기판 상의 속도계로 거칠게 시간을 측정한 결과 출발 후 8초 중반대에서 시속 100km를 돌파했다. 나쁘지 않은 가속감이다.

고속주행이 인상적이었다. 앞바퀴굴림이지만 고속에서도 매우 안정감 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여러 요인이 조화롭게 유기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차체가 낮아 도로에 밀착하는 느낌이 강했고, 뒷시트 아래 있는 하이브리드 배터리는 뒷부분의 무게를 늘려줘 앞뒤의 균형을 맞추는 효과를 줬다.

서스펜션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했다. 앞에 맥퍼슨 스트럿, 뒤에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이다. 앞에 많이 사용하는 더블위시본을 뒤에 적용해 좀 더 정밀하게 차의 흔들림을 제어할 수 있게 했다. 특히 1차 충격이 전해진 이후 잔진동을 잡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토요타의 설명이다. 실제로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아주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235/55R 18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타이어는 시종일관 그립을 유지하며 차체를 지지해줬다. 덕분에 실제속도에 비해 훨씬 낮은 체감속도를 즐길 수 있었다.

판매가격은 4,660만원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대형 수입세단으로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경쟁차로 꼽히는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3,993만원, 캠리하이브리드는 4,190만원이다. 조금씩 욕심내다보면, 캠리 보러왔다가 아발론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 아발론을 지나 렉서스 ES로 올라갈 수도 있겠다. 결정장애를 부르는 가격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계기판은 한글지원이 안된다. 영어로 표시된다. 그렇다고 아예 못보거나 정보를 읽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하다. 타케무라 노부유키 사장이 제법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계기판을 통해서도 한글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게 한국 소비자를 존중하는 길이다.
떠 있는 듯 보이는 각진 센터페시아는 노출되어 있다. 안전상 바람직하지 않다. 매립 방식에 비해 노출된 모니터는 아무래도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멋을 부리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승객의 앞부분, 즉 대시보드 디자인에선 안전이 먼저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