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박스터에 718이라는 이름을 앞세웠다. 718 박스터. 1950년대 모터스포츠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뒀던 포르쉐의 대표적 모델이 718이다. 718은 550 스파이더를 베이스로 만든 레이싱카였다. 550 스파이더는 제임스 딘의 차였다. 550 스파이더를 타고 달리던 제임스 딘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끝말잇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포르쉐에 얽힌 스토리가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스터의 이름 앞에 550이 더해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 찬란한 과거를 소환한 차, 718 박스터 GTS를 시승했다.

박스터는 포르쉐 911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무게 배분을 가졌다. 미드십 엔진을 적용해서다. 두꺼운 책 같은 박서 엔진을 뒷차축 안쪽에 넣어 가장 이상적인 구조를 가졌다.

길이, 너비, 높이가 4,380, 1,800, 1,280mm, 휠베이스는 2,475mm다. 이전보다 10mm 낮아졌다. 도로에 더 가까워진 것. 공차중량은 1,450kg이다.

스포츠 에이프런, 앞뒤로 블랙 틴팅 램프, 블랙 컬러 로고, 리어 에이프런 등이 눈길을 끈다. 휠과 테일파이트도 블랙이다. 포르쉐에서 블랙은 최고의 의미다. 알칸타라 가죽으로 덮은 실내는 고급 그 자체다. GTS 마크가 새겨진 버킷시트는 몸을 고정시키고 차와의 일체감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헤드레스트 일체형이어서 몸이 시트와 따로 움직일 일이 없다. 몸이 안정되면 차도 비례해서 안정감을 갖는다. 센터페시아에는 터치식 모니터가 자리했다.

스티어링휠은 2.4회전한다. 스포츠카답게 타이트한 조향비를 가졌다. 조향 반응은 강하고 즉각적이다. 세심하게 다뤄야 했다. 무심코 움직이면 거칠게 대응한다. 품 안에 안긴 순한 고양이지만, 성질 돋우면 발톱 세울 줄도 안다. 능숙한 드라이빙 스킬이 필요한 이유다.

인디비듀얼,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4개의 주행모드는 스티어링 휠에 달린 작은 휠 버튼으로 선택한다. 주행 모드 선택버튼을 굳이 스티어링 휠로 가져온 이유는 알듯하다. 휠에서 손을 떼지 않아도 된다는 것. 주행하는 동안 스티어링 휠을 잡은 채로 모든 조작이 가능하다. 손을 휠에 묶어놓아도 좋을 정도다.

테일 파이프의 배기 사운드도 조절할 수 있다. 훨씬 힘차고 다이내믹한 소리를 즐길 수 있다. 버튼으로 리어 스포일러를 꺼낼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정해진 속도가 되면 날개가 스스로 펼쳐진다.

지붕을 여는 버튼과 닫는 버튼이 다르다. 서로 분리됐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지붕이 열리고 닫힌다. 차가 저속으로 움직이는 중에도 조작할 수 있는 전동식 소프트탑이다. 윈드 리플렉터는 뒤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막아준다. 덕분에 조금 더 차분한 실내가 된다. 지붕 열고 옆창 올리고 윈드리플렉서 올리면 실내는 의외로 아늑해진다.

차가 정지하면 엔진 시동도 꺼진다. 때로 시끄러울 정도로 힘찬 소리는 내뱉던 엔진이 잠들면 실내는 순식간에 적막강산이 된다.

6기통 3.6과 2.7 자연흡기 엔진은 4기통 2.5와 2.0 터보 엔진으로 다운사이징됐다. 배기량을 줄이는대신 터보를 사용하는 다운사이징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과거 718이 4기통이었으니, 그 이름을 오늘에 되살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승차는 2.5 터보 엔진을 얹었다. 최고출력 365마력. 호흡을 맞추는 변속기는 7단 PDK다. 짧은 변속타이밍으로 효율과 성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더블클러치 변속기다. 늘 서쪽으로 달리던 자유로를 버리고 동쪽 중미산을 목표로 잡았다. 미드십 스포츠카를 제대로 즐기려면, 와인딩코스가 제맛이기 때문이다.

지붕을 열지 않았지만 엔진소리는 실내로 마구 들어온다. 조용한 실내가 아니다. 엔진 ‘소리’까지 즐겨야 하는 스포츠카 포르쉐다. 조용한 실내를 원한다면 이 차를 선택해선 안 된다.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릴 때 미소를 지을 수 있어야 이 차를 후회 없이 탈 수 있다.

시속 100에서 rpm은 1,600까지 떨어진다. 놀라운 건, 시속 100km를 유지하며 2단까지 변속기를 낮출 수 있다는 사실. rpm은 6,500까지 치솟는다. 엔진 회전수를 극과 극으로 체험할 수 있다. 2단으로 시속 100km를 넘기는 맛이 짜릿하다. 이런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차는 흔치 않다. 시속 200km로 달리는 짜릿함만 있는 건 아니다. 낮은 속도에서도 이처럼 재미있는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게 포르쉐의 맛이다.

짜릿하고 시원하게 달린다. 심장을 찢어놓는 소리를 내뱉으며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간다. 그럴 수 있는 건, 차체가 안정된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어서다. 저속은 물론 고속에서도 차체의 흔들림이 크지 않다. 불안하지 않다. 빠른 속도에서도 즐겁게 차를 다룰 수 있다. 속도는 빠르지만 속도감은 빠르지 않다. 속도와 속도감의 비대칭이 이 차의 매력.

소리는 자극적이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야생의 사운드가 귀를 자극한다. 끝에 가서 찢어지는 소리가 더해진다. 지속해서 실내로 유입되는 소리가 스포츠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더한다.

서스펜션과 타이어는 노면을 있는 그대로 읽어낸다. 고속에서 탁월한 안정감 주지만 낮은 속도에선 자잘한 충격을 그대로 전한다. 저속에서 불편하고 고속에서 차라리 편하다.

그렇게 잘 달릴 수 있는 건, 강력한 제동 성능을 갖춰서다. 정확한 브레이크 덕분에 호쾌한 엔진 사운드를 토해내는 질주가 가능한 것. 엑셀 오프할 때 들리는 배기 플랩 털어내는 소리는 중독성이 있다. 자꾸 듣고 싶어 가속 후 엑셀 오프를 반복하는 이유다.

365마력의 힘이 끌고 달려야 하는 무게, 공차중량은 1,450kg이다. 마력당 무게비는 3.97kg에 불과하다. 엄청난 효율이다. 큰 힘이 가벼운 몸무게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보여준다. 길만 열려 있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달린다. 공간이 열릴 때 짜릿한 느낌이 함께 온다.


공인 복합 연비는 8.9km/L. 이 차 타고 연비 걱정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연비 걱정은 일단 접어둬야 이 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유명산, 중미산 와인딩 로드를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달렸다. 단단한 하체가 춤을 추듯 고개를 돌아나갔다. 코너를 지나고 난 후에는 조금 더 가속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어김없이 든다. 조금 빠른 듯한 속도에서 차를 던지다시피 코너에 집어넣어도 잘 빠져나간다. 와인딩로드에서 진가를 보여준다. 아주 재미있다.

재미는 위험에 비례하는 법. 다운힐은 특히 재미있다. 미드십 리어 드라이브 박서에겐 더 그렇다. 좌우로 흔들리는 와인딩에서 왈츠를 춘다. 코너에선 박스터다.

판매가격은 1억 1,290만 원. 편의 장비를 더하다 보면 1,000~2,000만 원은 우습게 올라간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차가 멈추고 엔진 시동이 멈춘 상태에서 운전석을 이탈해도 시동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운전자가 시동을 끄지 않아도 운전석에서 내리면 이를 감지하고 완전히 시동이 꺼져야 하는데 시동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즉, 운전석에서 내렸다 다시 탄 뒤에 가속페달을 밟으면 시동이 다시 걸리는 것. 안전하지 않다. 운전자가 일단 운전석을 이탈하면 시동은 완전히 꺼지고, 버튼을 통해서 시동이 걸리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1억을 훌쩍 넘는 가격에 비해 편의 장비는 부족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차선유지 조향보조 장비 등이 없다. 시트는 앞뒤로 슬라이딩은 수동식이고 등받이 조절은 전동식이다. 반수동식인 셈. 달리는데 집중한 차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래도 가격 수준에 걸맞는 편의 장비는 갖추는 게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